영화 속 공포는 그대로, 구마의식의 웅장함은 두 배로
[경향신문]
2015년 서울, ‘12형상’이라고 불리는 열두 악령 중 하나가 한국에서 발견된다. 이 악령은 한 고등학생 소녀의 몸속에 자리 잡았다. 가톨릭교회 소속인 두 명의 신부는 악령을 물리치기 위해 구마의식을 시행한다. 이 같은 내용의 영화 <검은 사제들>은 오컬트 무비(악마나 악령, 엑소시즘 등 초자연 현상을 소재로 한 영화)로서는 이례적으로 544만여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했다.
영화 <검은 사제들>이 6년 만에 뮤지컬로 재탄생했다. <그림자를 판 사나이>와 <호프: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 등을 제작하며 창작 뮤지컬 ‘맛집’으로 알려진 알앤디웍스가 제작을 맡았다. 스산하고 괴기스러운 영화의 분위기를 뮤지컬이 어떻게 구현해냈을까. 지난달 25일부터 서울 대학로 유니플렉스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검은 사제들> 공연을 지난 4일 관람했다.
뮤지컬은 원작의 스토리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김 신부는 구마의식을 함께 할 보조 사제를 수소문한다. 라틴어·중국어 등 여러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데다가 영적으로 민감한 기질을 지닌 호랑이띠인 최 부제가 합류한다. 뮤지컬은 영화 속 주요 대사들을 그대로 가져와 영화의 느낌을 살렸다. 악령이 들린 소녀 영신의 “신부님, 제가 (악령을) 꽉 붙잡고 있을게요”라거나, 신부가 악령에게 일갈하는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우리 인간은 인간을 긍정한다” 등의 대사다. 콕콕 박혀있는 영화 속 명대사들을 다시 듣는 재미가 있다.
영화 속 공포 장치들은 무대에서 색다르게 구현됐다. 영화에서는 소녀 몸에 들어간 악령의 형체가 별도로 나오지 않으나, 뮤지컬에서는 악령(마귀) 역할을 여러 명의 배우가 맡아 연기한다. 악령은 괴기스러운 표정과 몸동작을 보이며 영신의 주변을 맴돌고, 영신을 조종한다.
악령, 무당, 수사 등 1인 다역을 해내는 앙상블 배우들의 연기가 탄탄해 극의 몰입을 돕는다.
하이라이트는 후반부에 있는 구마의식이다. 영화에서는 악령으로 인한 공포감이 지배적인 부분이었다면, 뮤지컬에서는 신부 두 명이 빚어내는 성스럽고 웅장한 분위기가 돋보인다. 구마의식에 사용하는 ‘성 프란치스코의 종’과 연기가 나오는 향로 등의 소품을 활용해 성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두 명의 신부가 주고받듯 노래하며 호흡을 맞춘다.
<검은 사제들>은 뮤지컬 팬이라면 이미 잘 아는 ‘대학로 스타’들이 주요 배역을 맡았다. 최 부제 역은 김경수·김찬호·조형균·장지후가, 김 신부 역은 이건명·송용진·박유덕이 맡았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공개 오디션을 통해 발탁된 이영신 역의 박가은·김수진·장민제의 연기도 훌륭해 주목할 만하다. 공연은 5월30일까지다.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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