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에 맞서, 여성 외치다..그런 시대, 그런 세상에 '한 방'

글 김보미·이혜리 기자·그래픽 이아름 기자 2021. 3. 7.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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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여성들은 외쳤다. 우리는 사람이며, 생각하는 존재이며,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일하는 사회의 일원이라고.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 아니라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며 ‘불편’의 문제가 아니라 ‘범죄’를 처벌해달라는 것이라고. 세상은 ‘빵과 장미’를 요구하는 여성들에게 침묵을 요구했지만 외침은 멈추지 않았다. 성별에 따라 기울어진 운동장, 보이지 않는 힘이 만드는 성폭력의 구조, 여성의 역할에 한계를 긋는 잣대가 드러나게 된 것은 여성들의 목소리가 켜켜이 쌓인 결과물이다. 3월8일 세계 여성의날을 맞아 역사의 굽이마다, 또 평범한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소리를 냈던 여성들의 외침을 돌아봤다. 수백, 수십 년 전 여성들의 외침 중에는 지금까지 유효한 구호들도 남아 있다.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라.”

자신이 하는 일에서 최고의 경력을 쌓은 여성이 있다. 생각은 거침없이 말하고 소신은 상대에 따라 바꾸지 않는다. 그런 여성에게 한 남성이 “설치고, 떠들고, 말하고, 생각하고, (남자가 싫어할) 모든 걸 갖췄다”고 말한다. 성 고정관념에 기댄 성차별 발언이 여과 없이 방송을 통해 흘러나왔다. 여성들은 ‘그렇다면 앞으로 더욱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겠다’고 선언했다. 여성의 주관과 욕망, 더 나아지려는 욕구를 숨겨야 한다는 통념에 대한 분노를 상징하는 외침이 됐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여성이 갖는 생각과 욕구는 가정사 혹은 사적인 문제로 축소됐고, 삶에 대한 불안과 일상의 불만 역시 개인적인 경험과 불행일 뿐이었다. 1960~1970년대 여성들이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고 규정한 것은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와 성차별 문화가 만든 결과를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구조를 선명하게 하려는 외침이었다.

“불편한 용기가 세상을 바꾼다.” 2018년 서울 혜화역 광장으로 쏟아져 나온 여성들은 불법촬영을 포함한 디지털성범죄가 여성 개인이 ‘운이 나빠’ 겪은 경험이 아니라고 외쳤다. 범죄를 용인해 온 사회 구조를 지목한 이들의 ‘불편한 용기’는 앞선 여성들의 외침과 닮았다.

“걸스 온 탑”

거친 울프컷 머리와 갱스터 빈티지룩. 남성 댄서 등에 올라타 팔을 크게 휘젓는 퍼포먼스. 2005년 가수 보아는 “걸스 온 탑”을 외치며 여성을 향한 사회의 시선에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여자 연예인을 쉽게 성적 대상화하고 ‘소비하는’ 존재로 인식했던 당시 대중문화계에 충격을 준 장면이었다. 귀여운 외모, 다정한 말투, 애교로 상징되는 여자 아이돌의 전형적인 모습이 깨지기 시작한 순간이기도 하다.

“현장의 꽃은 여배우라고 한다. 여배우는 왜 꽃이 되어야 하나? 여배우가 아닌 그냥 배우로 불리고 싶다.”

배우 엄지원씨가 인스타그램에 쓴 이 글은 영화계 힘의 구조를 환기시켰다. 사생활 문제가 불거져도 연기력으로만 평가받는 남자 배우와 달리 여자 배우는 연기가 아닌 다른 기준으로 ‘능력’을 인정받기 일쑤다. 여자 배우에게 ‘꽃’이 되길 바라는 현장의 요구는 힘든 촬영 일정 속에서 분위기를 띄울 수 있도록 ‘미소 짓는 여성의 역할’이었다.

일반 대중의 의식 변화는 문화로 가장 먼저 알아차린다. 성인지 감수성이 높아지고 여성의 시각으로 풀어낸 이야기를 원하는 요구가 많아지면서 방송과 음악, 영화 전반에서 이전과 다른 시선이 담긴 작품들이 늘어나고 있다. ‘투캅스’ 대신 ‘걸캅스’가 범인을 쫓고, ‘배트맨’뿐만 아니라 ‘원더우먼’도 세상을 구한다.

“빵과 장미를 달라.”

“우리가 행진하고 행진할 때 수많은 여성이 죽어갔네. 그 옛날 빵을 달라던 여성들의 노래로 울부짖으며, 고된 노동을 하는 여성의 영혼은 예술과 사랑과 아름다움을 잘 알지 못하지만 그래, 우리가 싸우는 것은 빵을 위한 것. 또 장미를 위해 싸우기도 하지.”

1911년 12월 미국의 시인 제임스 오펜하임은 시 ‘빵과 장미’로 열악하고 위험한 섬유공장에서 장시간 저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현실을 그린다. 일하면서도 굶주림에 시달리던 여성들은 노동자로서의 생존권을 위해 빵을, 남성과 동등한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위해 장미를 요구했다. ‘여성 일자리’에서 노동권 보장과 노동 환경 개선은 더디고 더뎠다. 1857년 뉴욕에서 처음 거리로 나왔던 직물과 방직 공장의 여성 노동자들은 50년이 지난 1908년 미국 뉴욕 러트거스 광장에서도 1만5000명이라는 전례 없는 대규모 시위를 열어 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10시간 준수,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 보장을 요구하며 끊임없이 “빵과 장미”를 외쳤다.

‘산업 역군’으로 불렸던 한국의 여성 노동자들도 ‘벌집’이라고 불리는 쪽방에 살며 고된 노동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978년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노동절 행사. 동일방직 ‘여공’ 76명이 일제히 일어나 품속에 숨겼던 플래카드를 펼쳐들었다. “똥을 먹고 살 수 없다.” 여성 노조원들을 탄압하기 위해 여성들에게 실제로 똥을 뿌렸던 동일방직 남성 노동자들과 사회를 향한 외침이었다.

1987년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되기까지 뉴욕의 여성들이 ‘빵과 장미’를 요구했던 것처럼 한국의 여성들도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요구했다. 남성과 다른 정년과 해고 기준, 혼인·임신·출산을 퇴직 사유로 인정하는 근로계약은 불법이라고 외쳤다.

“어찌하여 신체가 남자와 같은데
압제를 받아 세상형편을 모르고
죽은 사람 모양이 되리오.”

1898년 조선. ‘이천만 동포 형제’가 구습을 타파하고 신식을 좇는 시절에 여성들만 ‘옛날식 규방만 지켜야 하는’ 현실을 비판하며 두 여성이 이렇게 외쳤다. 이소사와 김소사가 발표한 ‘여권통문’은 여성이 남성과 같은 인간이라는 선언이었다. 여성도 학교에서 교육을 받아 여자아이들이 ‘재주를 배우고 규칙과 행세하는 도리를 배워’ 사회에 진출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외침이었다. 선언은 행동으로 이어졌다. 여성들은 ‘찬양회’를 만들고 회비를 모아 1899년 국내에서 여성들이 만든 최초의 학교인 순성학교의 문을 연다.

여권통문은 미국 여성들이 뉴욕에서 ‘빵과 장미’를 외쳤던 것보다 10년이나 앞섰지만 조선 여성들의 현실은 공고한 가부장제와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고난까지 겹쳐 개화기를 맞이한 후에도 억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여성이 스스로 해방하는 날 세계가 해방될 것이다. 조선 자매들아 단결하라.” 1927년 여성운동단체 ‘근우회’의 창립 선언에 적힌 여성들의 외침은 그래서 더 결연하다. ‘미처 청산되지 못한 구시대의 유물’이 오히려 강력하게 남아있고 그 위에 ‘현대적 고통이’ 더해졌을 때 여성들은 “앞길이 험악할지라도 우리는 일천만 자매의 힘으로써 우리의 역사적 임무를 수행하려 한다”고 했다. 100년 전 한반도에서 울려 퍼진 여성들의 외침은 세상을 놀라게 했으며 다른 여성들을 각성시켰다.

“섹스 애니멀 고 홈!”

“조선 남성의 심사는 이상하외다.”

여성 인권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였고 한국의 첫 여성 서양화가이기도 했던 작가 나혜석은 1930년 발표한 ‘이혼고백서’에서 이렇게 외쳤다. 본인은 정조 관념이 없지만 배우자를 포함한 여성들에게 정조를 요구하는 모순을 넘어 남의 정조까지 뺏으려 하는 남성들에 대한 일침이다. 개화된 세상에서도 여전히 공고하게 유지되는 가부장 사회에 대한 반기이기도 했다. 글과 그림으로 자신을 ‘여자’가 아닌 ‘사람’으로 봐주길 원했던 나혜석이 지적한 ‘조선 남자’의 모순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섹스 애니멀 고 홈!” 1973년 이화여대 학생들이 김포공항에서 들고 있던 피켓 구호다. 섹스관광을 하러 입국하는 일본인 관광객들을 상대로 내보였던 이 문구는 “기생관광을 멈추라”는 한국 정부를 향한 외침이었다. 성매매는 불법이었지만 ‘잘 살아 보자’는 지상과제 앞에 정부는 1970년대 ‘관광’과 ‘외화벌이’의 이름으로 성을 파는 정책을 장려했다. ‘국력’을 명분으로 성매매는 국책 사업이 됐다.

“남아선호의 고정관념을 깨뜨리기 위해
부모 성을 함께 쓰고자 한다.”

1997년 3월9일. 세계 여성의날을 기념해 열린 한국여성대회에서 170명의 여성을 대표해 이이효재 선생은 이렇게 선언했다. 선언문은 “수백 년 동안 지속되어온 남성 중심의 가족제도가 변해야만 여아 태아를 살해하는 행위가 사라질 수 있을 것”이라며 끝을 맺는다. 저술가 박정희는 저서 <이이효재>에서 여자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죽는 상황을 왜 부모 성 함께 쓰기 운동으로 끊어 내려는지 당시 사정을 언급한다. 이이효재 선생은 한의사였던 제자 고은광순에게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아들 낳는 약을 지으러 병원을 찾아오며, 그 가운데는 태아 성 감별로 스무 번이나 임신중절을 한 여성도 있다는 사실을 듣는다.

“평등사상 실현을 막는 장애.” “가장 먼저 없어져야 할 제도 중 하나.”

부모 성 함께 쓰기를 시작한 여성들은 1999년 호주제 폐지운동본부를 결성하며 외친다. 결혼을 동등한 두 사람의 결합으로 보지 않은 호주제는 부부의 불평등한 관계를 호적으로 증명했다. 할아버지에서 아버지, 아들, 손자에게로 이어지는 호적은 남자의 역사로 가족을 기록하는 문서였다. 이 서류 안에 여자는 남자에게 종속된 사람으로만 존재했고, 가족의 대를 이어야 한다는 명목으로 1990년대 후반까지 연간 3만명이 넘는 여아가 임신중절 수술로 ‘살해’됐다.

호적이 사라지고 가족관계등록부가 도입됐지만 ‘자녀는 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른다’는 민법의 부성우선주의로 남성을 ‘디폴트’로 놓는 가부장제의 기본 틀은 유지되고 있다. 2020년 부성우선주의 원칙을 폐지하는 민법 개정안과 차별 없이 성과 본을 쓸 수 있도록 민법과 가족관계등록법을 고치는 법안이 발의됐으나 2021년 3월까지 논의가 진전되지 않았다.

“여자는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일본어로 ‘구두(靴)’와 ‘고통(苦痛)’은 모두 ‘구쓰’라고 발음한다. ‘구쓰’에 성폭력을 고발하는 ‘미투’를 합쳐 ‘#KuToo’(구투)가 됐다. 2019년 일본 배우 이시카와 유미가 “여자도 남자와 마찬가지로 편한 신발을 신고 일해야 한다”며 구투 운동을 시작하자 여성들은 여자 직원에게만 하이힐 착용을 강제하는 회사의 복장 규정, 까지고 피가 난 발꿈치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공유하며 이 규칙의 부당함을 고발했다.

“어리고 연약한 발을 흰 천으로 싸맨 후 잠을 잘 때도 풀지 못하게 한다. 살이 문드러지고 뼈가 뒤틀려도 상관하지 않는다.” 중국의 잔다르크로 불리는 여성 혁명가 추근(秋瑾)은 ‘2억 중국 여성에게 고함’이라는 글에서 ‘세계에서 가장 불공평한’ 중국 여성들의 처지를 말했다.

“여자는 여자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여자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제2의 성>에서 프랑스 철학가 시몬 드 보부아르는 ‘인간’으로 정의되는 남자와는 달리 ‘여자’로 정의되는 현실의 모순을 드러낸다. 여성의 존재는 언제나 남성과의 관계로 규정되는 타자에 머물러 남자의 시각에서 평가를 받았다. 남자라는 성별을 세상의 중심으로 설정해 사고하는 프랑스 가부장 사회. 그 세계에서 누가 권력을 가졌는지 정의했던 보부아르의 외침은 전족에서 여성을 해방하려고 투쟁했던 추근의 외침, 굽이 없는 편한 신발을 신을 수 있는 여성 노동자들의 권리를 요구하는 ‘구투’의 외침과 다르지 않다.

※더 많은 이야기는 ‘플랫’ 인터랙티브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인터랙티브] 여성, 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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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보미·이혜리 기자·그래픽 이아름 기자 bomi8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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