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아름다운 단일화?
[경향신문]
‘단일화 후보로 누구를 지지합니까.’ ‘누가 이회창 후보를 이길 후보라고 봅니까.’ 2002년 대선을 한 달 앞두고 정치권을 달궜던 후보 단일화 질문이다.
앞 질문은 노무현 민주당 후보 측이 내세운 문항으로, 단일후보의 지지도 또는 적합도를 묻고 있다. 나중 질문은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 측이 내세운 문항으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에 대한 경쟁력을 묻는다.
얼핏 보면 그게 그것인 것 같지만, 양측은 협상 결렬도 불사하며 문항 선택을 놓고 신경전을 벌였다. 당시 여론조사 결과, 이 후보와 1 대 1로 대결할 경우 정 후보가 노 후보보다 더 경쟁력이 있는 것으로 나왔다. 이를 바탕으로 국민통합21은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노 후보를 역선택하는 것을 막는 방식의 여론조사를 원했다. 20일간 실랑이 끝에 양측은 한 걸음씩 물러나 지지도와 경쟁력, 두 질문을 절충하기로 합의했다. 질문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경쟁할 단일후보로서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 중 누구를 지지하십니까’였다. 이 여론조사에서 노 후보가 승리해 단일 후보가 됐다.
10년 후 2012년 대선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 맞서기 위해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후보 단일화를 시도했다. 문 후보 측은 두 후보 중 단일 후보로 누가 적합하냐는 ‘적합도’를 묻자고 한 반면 안 후보 측은 박 후보와 경쟁해 이길 수 있는 후보가 누구냐라는 ‘경쟁력’ 질문을 내세웠다. 그런데 이 단일화 룰을 둘러싼 협상은 안 후보의 후보직 사퇴로 찜찜하게 끝났다. 단일화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 어정쩡한 상황에서 대선은 치러졌고, 문 후보는 졌다. 아름다운 단일화라야 효과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선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단일화 여론조사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오 후보 측은 ‘야권후보 적합도’를, 안 후보 측은 박영선 민주당 후보와의 ‘경쟁력’을 묻자고 주장하고 있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고 한다. 후보 등록일(18∼19일)을 앞두고 벌어지는 ‘악마의 디테일’ 단일화 룰 싸움의 승자가 궁금하다. 더 궁금한 것은 아름다운 단일화가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윤호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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