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만큼 연기도 중요한 발레, 밸런스 유지 과제"

박성준 2021. 3. 7.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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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발레협회 '프리마 발레리나상' 수상한 유니버설발레단 손유희
'오네긴' 주역 '타티아나' 맡아 평단 호평
국내 공백기 불구 뜻밖의 상 받아 감사
엄마 무용수로 남편·모친 큰 도움 받아
6월 정기공연 '돈키호테' 연습 곧 시작
발레협 '신인무용상' 받은 후배 서혜원
2017년 입단 샛별.. 피지컬·근성 강점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된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공연된 전막 발레는 딱 두 편. 그중 하나가 드라마 발레 명작 ‘오네긴’이다. 주역 ‘타티아나’는 영화 주인공처럼 소녀에서 여인으로 성숙해지며 사랑의 설렘과 격정, 그리고 사랑을 선택하지 못한 회한을 한 작품 안에서 모두 보여줘야 한다. 춤만큼 연기가 중요한 작품으로 모든 발레리나가 무용수 인생에서 한 번쯤 맡아보길 소망하는 배역이다.

3년 만에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리게 된 유니버설발레단은 간판스타인 강미선과 함께 미국 털사발레단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다 돌아온 손유희에게 ‘타티아나’를 맡겼다. 선택은 옳았다. 손유희는 자신만의 해석으로 만들어낸 타티아나로 객석이 주인공 감정선을 따라가게 이끌었다. 평단 호평에 이어 한국발레협회는 최근 손유희에게 지난해를 빛낸 최고 여성 무용수로서 ‘프리마 발레리나상’을 수여했다. “국내 활동 공백기도 있었는데 뜻밖의 상을 받게 돼 너무 놀랐고 감사했습니다. 털사발레단에서 운 좋게도 타티아나를 연기할 수 있어서 배역을 배우고 경험한 게 도움이 됐습니다. 국내 무대 복귀 무대여서 준비를 많이 했는데 그만 한 성과가 나와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타티아나로 무대에 서는 어려움에 대해 손유희는 최근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연기가 중요한데 연기에 치우치면 안 되고 동작이 굉장히 까다롭다. 쉬운 테크닉이 아니어서 역할에 몰입하는 게 어려웠다. 또 역할에 너무 몰입하면 몸을 챙길 수 없어서 그 밸런스를 유지하는 게 과제”라고 설명했다.

올해 38세인 손유희 발레 경력은 다채롭다. 8세 때 시작한 발레를 위해 1997년 열네살 때 러시아 페름발레학교로 홀로 유학간다. 발레 명문인 이곳을 우등졸업한 후 다시 프랑스에서 발레 공부를 이어간 끝에 2004년 유니버설발레단에 입단했다. 이후 더 넓은 무대를 경험하고 싶어 2013년 미국 털사발레단에 시니어 수석무용수로 입단해 2017년까지 활약하다 귀국했다. 그리고 유니버설발레단 시절 만나 결혼해 털사발레단에서 시니어 수석무용수로 함께 활약한 남편 이현준과 사이에서 낳은 쌍둥이 엄마가 된 손유희는 다시 2020년 유니버설발레단에 수석무용수로 재입단했다.

‘엄마 발레리나’로서 흔치 않은 성공사례를 보여주기 위해 원래도 ‘연습장 귀신’소리를 들었던 손유희는 무던히 애를 썼다. 무대 복귀를 위해 최상의 기량을 끌어 올렸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가 닥쳤다. “1차 대유행 때문에 갑자기 발레단 연습장 문이 닫혔을 때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요. 이런 경험이 없어서 막막하고…. 집에서 스트레칭은 해도 발레 클래스(연습)를 해본 적은 없었거든요. 그런데 정말 감사한 게 위기를 통해서 배운 게 있어요. 비록 공간은 작지만 어떻게 내 몸을 관리해야 하는지, 또 온라인이라지만 좋은 선생님의 클래스도 들을 수 있었고, 어떻게 보면 더 값진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이제 생후 29개월이 된 아들·딸 쌍둥이를 돌보며 무용수로서 기량을 보전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아기들이 낮잠이라도 자면 정말 편하게 훈련할 텐데 쌍둥이라 그런지 절대 낮잠을 안 자더라고요. 그래서 밤 열두시에 훈련하기도 하고…. 너무 걱정이 많이 됐어요. 컴백하려고 열심히 만들어 놓은 몸인데 후퇴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죠.” 같은 무용수로서 어려움을 함께 극복할 수 있는 남편은 물론 간호사 출신으로 손유희의 발레 인생을 후원해준 모친 도움이 컸다. 수상식에선 “이 상은 엄마꺼”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페름에 유학 간 지 넉 달 만에 외환위기가 닥쳐서 달러값이 네 배로 뛴 거예요. 계속 유학할 수 있겠나 싶었는데 어머니가 저를 믿고 버텨주셨죠. 미국에 간 동안은 또 산후조리원 실장으로 일하시다 당신 딸이 낳은 쌍둥이 산후조리를 끝으로 은퇴하셨어요. 지금 발레단에 출근할 수 있는 것도 어머니가 쌍둥이를 맡아주신 덕분이죠.”

인터뷰한 날은 마침 3차 대유행을 피해서 한동안 닫혔던 유니버설발레단 연습실 문이 모처럼 다시 열린 첫날이었다. 오랜만에 동료들과 함께 발레 클래스를 마치고 온 손유희는 신작 안무 연습을 했다. 돈키호테 공연을 위한 연습도 곧 시작할 계획이다.

유니버설발레단은 6월 ‘돈키호테’를 시작으로 12월 ‘호두까기인형’까지 다양한 작품을 올린다. 가장 기대되는 작품이 무엇인지 묻자 손유희는 “그저 무대에 올라갔으면 좋겠다. 공연 준비하는 시간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사실 미국에선 공연 일정이 너무 많아서 굉장히 힘들고 정신적으로 지쳐있었어요. 그래서 공백기도 거치면서 정말 무대 다시 서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났는데 코로나19 위기가 온 거죠. 이제 캐스팅 욕심은 옛날보다 덜해요. 그저 무대에 서는 게 너무 행복하고 어떤 역할인지는 따지지 않아요.”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손유희와 드미 솔리스트 서혜원(왼쪽). 2020년을 빛낸 최고의 여성 무용수에게 주어지는 한국발레협회 프리마 발레리나상과 신인무용상을 각각 받았다. 이재문 기자
인터뷰에는 손유희와 함께 ‘한국발레협회 2020 신인무용상’을 탄 서혜원도 중도합류했다. 2017년 유니버설발레단에 입단한 샛별이다. 딱 10년 전 손유희가 같은 상을 탄 인연이 생겼다. 서혜원은 “인정받은 느낌이다. 사회에 막 나온 직장인인데 ‘내가 잘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손유희는 “저도 많이 배울 정도로 ‘피지컬’이 좋다”면서도 ‘근성’을 후배의 강점으로 꼽았다. 컨디션이 항상 좋을 수 없는 만큼 되던 동작이 안 되기도 하는데 거기서 낙심하지 않고 될 때까지 반복하는 근성이 후배에게서 보였다는 설명이다. “근성이 약하면 잘될 때는 잘된 거로 만족하고, 안 되면 ‘에잇. 내일 하면 되겠지’ 하고 마는, 요즘 그런 친구들이 많은데 혜원이는 될 때까지 하더라고요.” 그러면서도 “신인상은 미래가 기대된다는 상이다. 지금 잘했다는 게 아니라 앞으로 주목하겠다는 의미”라는 충고를 잊지 않았다. 서혜원은 “지난 1년 정말 최대한 몸을 사렸다. 집밖에는 쓰레기 버리러만 나갔을 정도다. 집에서 연습한다지만 혼자 무얼 한다는 게 정말 힘든 거라는 걸 깨달았다. 무대 못 서는 게 제일 힘든데 올해는 정말 무대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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