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출신은 걸러라? 올 시즌 그들의 역습이 시작될까

장민석 기자 2021. 3. 7.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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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스 수베로 한화 감독은 남미 출신으로는 첫 KBO리그 사령탑이 됐다. / 한화 이글스

남미는 축구의 대륙이다. 축구가 곧 종교인 브라질은 월드컵 최다 우승(5회)을 자랑하고, 마라도나와 메시의 아르헨티나는 브라질과는 죽고 못 사는 라이벌이다. 월드컵 초대 챔피언 우루과이도 축구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나라다.

남미축구연맹엔 10개국이 소속돼 있다. 그 중 월드컵 본선에 나가지 못한 나라는 딱 하나다. 베네수엘라는 남미에서 유일하게 야구가 축구를 이기는 나라다.

시애틀 매리너스의 특급 에이스 펠릭스 에르난데스는 베네수엘라를 대표하는 야구 스타다. / 조선일보DB

◇ 미겔 카브레라와 킹 펠릭스의 나라

야구 강국답게 베네수엘라 출신의 메이저리그 레전드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현역 중엔 미겔 카브레라(38·디트로이트 타이거스)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올스타에 11번 선정된 카브레라는 아메리칸 리그 MVP 2회, 실버슬러거 7회, 아메리칸리그 홈런·타점왕 각각 2회, 타격왕 4회를 자랑하는 천재 타자다. MLB닷컴은 “카브레라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뛰어난 우타자 10명 중에 한 명일 것”이라며 “향후 명예의 전당 입성이 확실하다”고 전했다.

2017년 아메리칸리그 MVP 호세 알투베(31·휴스턴 애스트로스)도 베네수엘라 출신이다. 아메리칸리그 타격왕 3회, 실버슬러거 5회에 빛나는 알투베는 사인 훔치기 논란에 휩싸이며 명성을 잃었다.

‘킹’으로 불린 펠릭스 에르난데스(35) 역시 베네수엘라를 대표하는 선수다. 현재 볼티모어 오리올스 산하 마이너리그 소속인 그는 왕년엔 시애틀 매리너스의 특급 에이스였다. 2010년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을 받았고, 2012년 8월엔 퍼펙트게임을 달성했다. 현 시점에서 메이저리그 마지막 퍼펙트게임이다.

에르난데스는 빅리그 통산 169승을 거두고도 ‘가을 야구’ 무대에 한 번도 서보지 못한 비운의 투수이기도 하다. 참고로 추신수(SSG)는 에르난데스를 상대로 메이저리그 데뷔 안타를 뽑아냈다.

은퇴 선수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베네수엘라의 명 유격수 계보를 반드시 언급해야 한다. 가장 먼저 나올 이름은 루이스 아파리시오(87)다. 아파리시오는 한국 야구로 따지면 박찬호와 같은 선구자다.

1956년부터 1973년까지 시카고 화이트삭스, 볼티모어 오리올스, 보스턴 레드삭스를 거치며 2677안타 791타점 506도루를 기록했다. 13회 올스타에 뽑힌 그는 골드글러브와 도루왕을 각각 9회씩 차지했다.

그의 등번호 11번은 화이트삭스의 영구 결번.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 뛰던 1966년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끼었다. 1984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데이비드 콘셉시온(73) 역시 9차례 올스타, 5차례 골드글러브에 빛나는 전설적인 유격수다. 1970년부터 1988년까지 신시내티 레즈에서만 뛴 ‘원 클럽 맨’으로 그의 백넘버 13번도 영구 결번됐다. 레즈 왕조를 이끌며 두 번 월드시리즈 챔피언에 올랐다.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수비형 유격수 오마 비스켈(54)도 베네수엘라 출신이다. 비스켈은 골드글러브를 11회 수상했다.

베네수엘라 하면 ‘출루 머신’ 바비 아브레우(47)와 사이영상을 두 번 받은 요한 산타나(42)도 떠오른다.

2009시즌 LG의 중심타자로 활약했던 로베르토 페타지니. / 조선일보DB

◇ KBO리그에서 이어진 베네수엘라 잔혹사

그렇다면 KBO리그는 어떨까. 안타깝게도 한국 프로야구 무대에선 베네수엘라 출신 선수들이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호라시오 에스트라다(한화)와 로베르토 페레즈(롯데), 에디 디아즈(SK·한화), 에드윈 후타도(LG), 에두아르도 리오스(롯데), 다윈 쿠비얀(SK), 라몬 라미레즈(두산), 페르난도 니에베(두산), 루이스 히메네스(롯데), 아롬 발디리스(삼성), 요한 피노(KT), 펠릭스 듀브론트(롯데), 카를로스 아수아헤(롯데), 리카르도 핀토(SK) 등이 KBO리그에서 뛴 베네수엘라 선수들이다.

딱 명단만 봐도 눈에 확 띄는 이름은 없다. 부진 끝에 중도 퇴출된 선수가 많다. 태업성 플레이를 펼친 선수도 있었다. 한때 베네수엘라 출신들은 걸러야 한다는 말이 나온 이유다.

특히 펠릭스 호세와 틸슨 브리또, 야마이코 나바로, 아킬리노 로페즈, 라울 알칸타라 등 한국 무대에서 성공한 선수들이 제법 많은 도미니카공화국과 비교가 된다. 이강철 KT 감독은 지난해 윌리엄 쿠에바스가 자신의 고집대로 직구 일변도의 투구를 펼치자 “베네수엘라 선수들은 다루기 어렵다”고 말했다.

베네수엘라 출신으로 KBO리그에서 가장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선수는 로베르토 페타지니(LG)다. 2008시즌 도중 합류해 타율 0.347을 기록한 그는 2009시즌엔 타율 0.332, 26홈런 100타점으로 LG 타선을 이끌었다. 작년 38홈런을 때린 로베르토 라모스 이전에 LG에서 가장 성공한 외국인 타자였다.

지난해엔 SK 선발 핀토가 6승15패로 부진하며 ‘베네수엘라 잔혹사’를 이어가는가 했지만 딕슨 마차도(롯데)와 쿠에바스는 나름 쏠쏠한 활약으로 재계약에 성공했다.

롯데의 고민이었던 유격수 포지션을 꿰찬 마차도는 2020시즌 타율 0.280, 12홈런 67타점을 기록했다. 마차도의 진가는 수비에서 드러났다. 144경기에 모두 나서 실책은 10개에 그치며 수비율 98.4%로 롯데 내야를 든든히 지켰다.

KT 쿠에바스는 지난해 기복 있는 피칭을 선보였지만, 10승(8패)을 달성하며 재계약에 성공했다.

딕슨 마차도는 지난 시즌 리그 최고의 유격수 수비로 롯데 팬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 연합뉴스

◇ 수베로가 베네수엘라 야구의 자존심을 지킬까

2021시즌엔 KBO리그에 베네수엘라 바람이 더욱 거세게 불 전망이다. 한화의 지휘봉을 잡은 카를로스 수베로(49) 감독이 바로 베네수엘라 출신이다. 2019 프리미어12 당시엔 베네수엘라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그는 마이너리그 감독 시절 각각 포수와 내야수였던 켄리 잰슨과 페드로 바에스(이상 LA 다저스)를 투수로 전향시켜 큰 성공에 이르게 한 ‘육성 전문가’다. 밀워키 브루어스 더블A 팀 사령탑으로 있을 땐 7명을 한꺼번에 메이저리그로 승격시켰다.

수베로와 함께 작년 최하위 한화도 변화하고 있다. 물론 연습 경기이지만, 지난 5일과 6일 키움을 상대로 6-0, 8-0으로 연승을 따냈다. 25안타를 때렸고, 실점을 허용하진 않았다.

무엇보다 눈에 띈 것은 수비와 주루였다. 수베로 감독은 현란한 시프트 작전으로 키움의 타선을 봉쇄했다. 그는 “타구가 갈 확률이나 속도를 보고 야수들을 그 길목에 배치했다”며 “정규시즌에도 시프트를 자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평소 “한 베이스를 더 가려다 아웃돼도 그 시도를 높게 평가하겠다”는 지론을 가진 수베로의 팀답게 한화 선수들은 적극적인 주루 플레이를 펼쳤다. 한화 팬들은 수베로가 가져온 변화에 대해 기대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수베로 감독은 최근 본지 인터뷰에서 한화 팬들의 열정에 대해 아느냐는 질문에 “베네수엘라 리그 팬들처럼 열광적이라고 들었다”며 “다만 결과에 따라 극과 극을 오가는 베네수엘라 팬들과 달리 한화 팬들은 조금 더 미래를 보고 기다려줬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그는 베네수엘라의 야구 인기에 대해 “남미 북부에 위치한 베네수엘라는 남미 나라 중 미국에 가장 가까운 편이라 그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실제 베네수엘라는 1941년 쿠바 아바나에서 열린 세계선수권 결승에서 쿠바를 꺾으며 야구 인기가 폭발적으로 늘었다고 한다. 경제 사정이 매우 어려운데도 베네수엘라 야구 리그인 VPBL은 지난 시즌에도 열렸다. 8팀의 연고지가 모두 북부 쪽에 몰려 있는 것이 특징이다.

기존 마차도와 쿠에바스 외에도 올 시즌엔 윌머 폰트(SSG)와 앤더슨 프랑코(롯데·이상 투수), 호세 피렐라(삼성·타자)가 베네수엘라 출신으로 KBO리그에 도전장을 던진다. 30명의 외국인 선수 중 17% 가량인 5명이 베네수엘라 선수다.

그중 폰트가 큰 기대를 모은다. 이창섭 메이저리그 칼럼니스트는 유튜브 ‘이광용의 옐카3’에서 “폰트의 구위는 현 KBO리그 투수 중 1등”이라며 “메이저리그 통산 9이닝당 탈삼진이 8.90에 달했다. 지난해 한국에서 뛰어난 탈삼진 능력을 보인 스트레일리와 플렉센의 메이저리그 시절보다 9이닝당 탈삼진 숫자가 더 많다”고 말했다.

베네수엘라 출신의 알바로 에스피노자 키움 코치(왼쪽). / 키움 히어로즈

◇ “베네수엘라엔 야구의 전통이 살아있다”

키움 히어로즈에도 베네수엘라 출신이 있다. 알바로 에스피노자(59) 수비 코치다.

에스피노자 코치는 1984년부터 1997년까지 메이저리그에서만 942경기에 출전했다. 1989년부터 1991년까지는 명문팀 뉴욕 양키스의 주전 내야수로 뛰기도 했다. 작년 11월 단장 특별 보좌로 키움에 합류한 그는 올 시즌 수비 코치로 보직을 바꿨다.

내야 전문가인 에스피노자 코치는 “좋은 내야수가 되기 위해선 기본기를 잘 갖춰야 한다”며 “실수를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도록 선수들을 지도하겠다”고 말했다.

에스피노자 코치는 베네수엘라의 야구에 대해 “이미 오래전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한 아파리시오와 콘셉시온 등 스타 선수들의 역할이 컸다”며 “많은 국민들이 그 스타 선수들을 보며 자연스럽게 야구를 좋아하게 됐고, 후배들은 그 선배가 닦아놓은 길을 따라갔다. 그런 자연스러운 과정 속에서 야구가 베네수엘라의 넘버원 스포츠가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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