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 직원들 땅투기 사건 졸속처리 우려..비리수사 경험 많은 검찰 빼고, 국토부 등 합조단이 '셀프조사'

이상빈 기자 2021. 3. 7.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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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LH 땅투기 사건에 檢수사 배제
총리실·국토부 주도 전수조사…"제 식구 봐주기식 조사 우려"
경찰 국수본은 대형 경제범죄 경험 없어…비리규명에 의구심
윤석열 전 검찰총장 "LH사건, 즉각 대대적인 수사 돌입해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광명·시흥 3기 신도시 투기 의혹과 관련해 정부가 국무총리실 주도로 합동조사단을 꾸려 조사에 들어갔지만, ‘고양이에게 생선 맡기는 꼴’이란 지적이 나온다. 공직자가 내부 정보를 빼돌려 투기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사건에, 강제 수사가 아니라 부처 공무원들과의 면담 등에 의존한 ‘셀프 조사’로 대응하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지난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1·2기 신도시 비리 사건이 터졌을 땐 검찰이 주도한 대대적인 조사로 비리 공무원 100여명을 구속하는 등 비위 사실을 규명했는데, 이번 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땅투기 사건에서는 이런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한 검찰개혁으로 이 같은 비리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권한이 크게 위축됐고, 경찰이 주도하는 국가수사본부는 대규모 경제비리 사건에 대한 수사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의 부처 중심 셀프조사 방침에 대해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법무연수원으로 좌천당한 한동훈 검사장을 투입해 수사하면 이틀 만에 모든 비리사실이 규명될 것"이라는 비판적인 글도 올라오고 있다.

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이 제기된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땅에 묘목이 심어져 있다./연합뉴스

◇ 검찰 빼고, 자기 직원 두둔하면서 ‘철저한 조사’ 하겠다는 정부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7일 열린 부동산 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해 이와 관련해 "국민께 깊은 마음으로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사태와 관련해 정부의 합동 조사가 진행 중인 만큼 부동산 투기가 확인될 경우 수사의뢰·징계조치 등 무관용 하에 조치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정부는 지난 5일 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예정지역 투기 의혹과 관련해 합동조사단을 구성한다고 밝혔다. 합동조사단은 국무조정실을 중심으로 국토교통부, 행정안전부, 경찰청, 경기도, 인천시가 참여한다. 그러나 비리 수사 경험이 많고 수사 능력이 큰 검찰청은 제외됐다.

합동조사단의 조사 대상은 현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3기 신도시 6곳(고양 창릉·광명 시흥·남양주 왕숙·부천 대장·인천 계양·하남 교산)과 과천지구·안산 장상지구 등 총 8곳이다. 조사 대상은 국토교통부와 LH 등 신도시 조성에 관여한 공기업 직원, 3기 신도시 지역인 경기도와 인천시 등 자치단체 8곳의 신도시 담당 부서 공무원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이번 사건에 대해 "철저한 조사"를 약속했지만,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홍 부총리 기자회견이 끝나자 마자 이번 사건 의혹을 제기한 참여연대와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감사원 감사와 강제수사를 요구하는 성명을 냈다. 참여연대와 민변은 "정부의 전수조사 결과에 대한 전 국민적인 신뢰를 높이기 위해서는 정부 합동조사단 조사와 별개로 수사기관의 강제수사나 감사원 감사 등이 병행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합동조사단의 한 축을 이루는 국토부 수장인 변창흠 장관은 오히려 땅 투기했던 LH 직원들을 두둔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을 가중시키고 있다. 변 장관은 앞서 직원들의 투기 의혹이 제기된 후 "이들이 개발 정보를 알고 땅을 미리 산 것은 아닌 것 같다", "신도시 개발이 안 될 것으로 알고 샀는데, 갑자기 신도시로 지정된 것 같다", "전면 수용되는 신도시에 땅을 사는 것은 바보짓이다" 등의 발언을 했다. 변 장관은 국토부 장관이 되기 전 LH 사장 자리를 거쳤다.

◇ 1·2기 신도시 비리 때는 검찰 수사 성과… 이번엔 ‘정권 반기 든’ 감사원도 빠져

정부 조사와 별개로 경찰이 경찰이 국가수사본부 취임 이후 첫 특별수사단을 만들어 대응에 나선다고 하지만, 비리 구조 등을 제대로 규명하기 힘들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경찰은 대규모 경제비리 사건 수사 경험이 부족하고, 무엇보다 검경 수사권 조정을 거치며 경찰 조직에 힘을 실어준 현 정권이 불편할 수 있는 수사 결과를 낼 수 있을 지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정부 조사와 국수본 수사는 지난 1·2기 신도시 수사에서 성과를 올렸던 검찰이 빠지기 때문에 ‘제 식구 봐주기’ 또는 ‘꼬리 자르기’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과거 검찰이 주도했던 1·2기 신도시 수사에서는 대규모 비리가 적발되는 성과가 있었다.

1989년부터 일산과 분당 등 1기 신도시를 만든 노태우 정부는 1990년 2월 합수부를 설치하고 공무원들의 불법 토지 거래 등을 수사했다. 당시 합수부는 투기 사범 1만3000여명을 적발, 987명을 구속했다. 금품수수와 문서위조 등 혐의로 공직자 131명과 부정 당첨 공무원 10명도 적발해 일벌백계했다.

2003년부터 김포와 검단, 동탄 등 2기 신도시 건설에 착수한 노무현 정부도 마찬가지다. 이들 지역에서 부동산 투기가 극성을 부리자 검찰은 2005년 합동수사본부를 설치했다. 당시 검찰은 공무원 27명이 포함된 대규모 투기 사범을 적발했다. 뇌물을 받고 기획부동산업체에 개발제한구역 정보를 넘겼거나, 허위로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발급해준 혐의였다. 일부 공무원들은 직무상 알게 된 개발 예정지 정보를 이용해 땅을 집단으로 매입하기도 했다. 이번에 문제된 LH직원들의 사례와 같은 내용이다.

이번 조사단엔 공무원 및 공공기관의 비리를 적발·처벌하는 감사원도 빠져있다. 최재형 감사원장이 이끄는 감사원은 월성원전 1호기 가동중단 등으로 정부와 대립각을 세웠던 적이 있다.

이에 친여 성향의 참여연대와 민변까지도 이번 3기 신도시 땅투기 사건의 정부 조사와 관련, 축소·소극조사에 대한 의구심이 있다며 "정부 합동조사단 조사와 별개로 수사기관의 강제 수사나 감사원의 감사 등도 병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 부패 공직자 수사하려고 ‘검찰개혁’ 했는데, 수사 공백 우려에 정치쟁점화

검찰이 이번 LH 수사에서 빠지게 된 것은 올해 1월부터 시행된 검찰·경찰 수사권 조정 때문이다. 이로 인해 검찰이 직접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사건은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등 6대 범죄에 한정돼 있다.

이 때문에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이 LH사건 수사에 역할을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검사 출신인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과연 이번 3기 신도시 투기의혹사건에 대해 검찰이 직접 수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 있다면 그 범위는 어느 정도인지 검토해 보았다"며 "현재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는 행위자의 신분(주체), 범죄 내용상 ‘검사의 수사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의 6대 중요범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사퇴를 표명한 윤석열 검찰총장이 2021년 3월 4일 직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을 나서고 있다. /김지호 기자

검찰이 이번 수사에 참여하지는 못하는 것 자체가 정치쟁점화 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왜 민주당은 ‘철저 조사’를 외치면서도 LH 비리를 감사원에 맡긴다든지, 검찰 수사를 요구한다든지, 국정조사에 나서지 않는 걸까"라며 "윤석열이 사라진 세상, 검찰이 사라진 나라, 도둑놈들 마을에 평화가 찾아왔다"고 밝혔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도 전날 조선일보와의 통화에서 "공적 정보를 도둑질해서 부동산 투기하는 것은 ‘망국의 범죄’"라며 "즉각적이고 대대적인 ‘수사’를 해야 하는 사안"이라고 말했다.그는 "총리실, 국토부 조사처럼 LH나 청와대 직원 상대로 등기부만 보면서 땅 샀는지 안 샀는지 말로 물어보는 전수 조사를 할 게 아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신도시 개발계획과 보상 계획을 정밀 분석해 돈이 될 땅들을 찾아 전수조사해야 한다. 거래된 시점, 거래된 단위, 땅의 이용 상태를 분석한 뒤 매입 자금원 추적을 통해 실소유주를 밝혀야 한다"면서 "미공개정보이용 금융 사건 수사와 비슷하다. 실명보다 차명 거래가 많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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