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만물은 모두 평등"..제주의 봄에 담은 '달관'
활짝 핀 매화·동백꽃 속에서
사람보다 큰 새·나비·물고기
"30여 년 제주살이는 극락
사계절 피는 꽃 그리며 행복"
모두가 즐거워 보이는 그림 속에서 걷고 있는 사람에게 '그럴 수 있다. 그것이 인생이다'라고 씌여진 말풍선을 붙어 있다. 5년 만에 여는 개인전 주제도 '그럴 수 있다-A Way of Life'다.
전시장에서 만난 이 화백은 "코로나19와 혼탁한 세상에 충격을 받은 마음을 정리하면서 떠올린 말이다"며 "요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두 이상하다. 부동산 가격도 너무 많이 오르고, 처음 보는 현상이 많다"고 털어놨다.
그는 세상이 하도 험악해서 매화 나뭇가지 위에 집과 자동차, 고기잡이배를 열매처럼 맺게 그리는 등 경계를 허물었다고 한다. 1991년 추계예대 교수직을 내려놓은 후 제주 서귀포에 미술관과 작업실을 짓고 살고 있지만 세상과 담 쌓기는 쉽지 않은가 보다.
작품에 등장하는 이미지들에 대해 그는 이렇게 설명하다. "사랑과 증오는 결합하여 연꽃이 되고, 후회와 이기주의는 결합하여 사슴이 된다. 충돌과 분노는 결합하여 나르는 물고기가 된다. 행복과 소란은 결합하여 아름다운 새가 되고, 오만함과 욕심은 결합하여 춤이 된다."
득도(得道)의 경지와 동시에 어린아이 같은 동심(童心)이 작품에 가득하다. 제주도에서 16년 동안 어린이들에게 무료 강의를 하면서 동심을 지켜오고 있단다. 그래서일까. 그의 그림에서 새와 나비가 사람보다 더 크다.
"인간 중심으로 보면 새는 작지만, 새 입장에서 보면 그들이 최고에요. 새의 마음으로, 나비 마음으로 크게 그려요. 원근법을 사용하면 안돼요. 차별 없이 인간과 모든 만물이 하나가 됨을 보여줍니다."
갤러리 창너머 햇살에 그의 그림들이 유난히 반짝거린다. 금박을 화면에 붙인 효과다. 이 화백은 "재료비는 많이 들지만 금이 좋은 기운을 준다. 좀 더 잘 팔릴까 해서 발악하는 것이다"며 빙그레 웃었다.
그는 한지 장인 장용운이 만든 장지에 그림을 그린다. 캔버스도 시도해봤지만 깊은 맛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천은 삭지만 한지는 1000년을 넘긴다"고 말했다.
지금도 작업실에 들어가면 긴장하는 이 화백은 "3D업종이다. 내 그림은 선(線) 중심이고 채색이 아주 까다로워 누굴 시킬 수 없다"고 했다.
그간 개인전이 뜸했던 이유를 묻자 "이제 늙어서 하면 안된다. 코로나19로 사람도 못 모이는데 무슨 전시를 하느냐고 생각했는데 20여점만 그리면 된다고 해서 결심했다"고 말했다.
"제주에는 줄 서서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여기는 막걸리 한 잔 나눌 만한 벗이 없네요. 역시 제주가 극락이에요. 계절마다 항상 올라오는 꽃을 보고 그려요."
그렇게 말하는 이 화백의 얼굴에서 삶의 희로애락이 동시에 전해왔다. 전시는 28일까지.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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