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제주문화](5) "영등할망 오신다" 봄기운 돋우는 바람의 신

변지철 2021. 3. 7.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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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2월 보름간 생명의 씨앗 전하는 영등신 "새봄 열어"
세계가 인정한 제주의 소중한 문화유산 칠머리당영등굿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겨울에서 봄으로 계절이 바뀌는 전환기에 제주를 찾는 바람의 여신 영등신.

"영등신이여! 어서 오소서" (제주=연합뉴스) 바람의 신(神)인 '영등신'이 들어오는 길목인 제주시 한림읍 일대에서 영등바람 퍼레이드 행사가 펼쳐지고 있다. 영등바람축제는 꽃샘추위와 함께 풍요를 가져다주는 영등신을 맞이하고 보내는 제주의 민속 제례 '영등굿'에 내재한 생명과 복원의 의미를 되새기고 공유하는 축제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제주에선 영등신이 올 때마다 환영제와 송별제를 하며 봄을 반겼다.

영등신의 옷차림, 영등신이 누구와 함께 제주에 오느냐에 따라 한해 일기와 운수를 점치기도 하는 등 새봄을 맞는 제주의 중요한 세시풍속 중 하나다.

영등신과 세계가 인정한 제주 문화유산 칠머리당영등굿을 알아보자.

제주서 벌어지는 바람의 축제

"영등할망(영등할머니, 영등신)이 오신다!"

엿새 앞으로 다가온 음력 2월 초하룻날(올해 3월 13일)이 되면 해마다 바람의 신(神)인 '영등할망'은 아득히 먼 바람의 궁전에서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제주를 찾는다.

구름치마를 휘날리며 바람을 몰고 온 영등할망은 보름 동안 제주 섬 곳곳에 풍요와 생명의 '씨 뿌림'을 한다.

경작지에는 곡식 씨앗을, 바닷가에는 소라·전복·우뭇가사리·미역 등 씨앗을 뿌리고 복숭아꽃·동백꽃을 피워 봄기운을 돋운다.

제주의 1만8천에 이르는 무수한 신들과 조우한 영등할망은 열닷새째 우도를 거쳐 자신이 사는 곳으로 돌아간다.

2018 영등바람 퍼레이드 (제주=연합뉴스) 2018 영등바람축제의 일환으로 축제 첫날 바람의 신(神)인 '영등신'이 들어오는 길목인 제주시 한림읍 일대에서 영등바람 퍼레이드 행사가 펼쳐지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영등할망이 찾은 제주의 음력 2월은 찬 바람이 몹시 불어 마치 겨울로 돌아간 듯한 추운 날씨를 보이는데 이러한 계절 현상을 '꽃샘추위'라 한다.

하지만 제주 사람들은 '영등할망이 바람을 몰고 와 땅과 바다에 씨를 뿌리고 갔기 때문'이라고 상상했다.

영등할망이 몰고 온 신바람을 통해 비로소 겨울이 가고 새날 새봄이 열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주의 음력 2월을 '영등이 드는 달'이라고 해서 '영등달'이라고 일컬었다.

영등달에 부는 바람은 '영등바람', 영등바람을 맞아 마을의 신당에서 벌이는 굿이 '영등굿'이다.

제주에선 예부터 꽃샘추위와 함께 풍요를 가져다주는 영등할망을 위해 환영제와 송별제를 하며 봄을 반겼다.

2월 초하루부터 영등이 떠나가는 보름까지 제주에서 펼쳐지는 영등굿은 바람의 섬 제주에서 벌어지는 바람의 축제다.

제주의 영등굿을 대표하는 제주시 건입동의 본향당 '칠머리당'에서는 음력 2월 1일 '영등환영제'를 하고, 14일에 '영등송별제'를 한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예방하기 위해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환영제(3월 13일), 송별제(3월 26일) 모두 비대면으로 진행된다. 다만 영상을 통해 일반인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풍어와 안전을 비나이다" (제주=연합뉴스) 제주시 건입동 사라봉 칠머리당에서 영등굿이 봉행 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영등굿을 할 때 본향신을 청하는 '본향듦', 용왕과 영등신을 청하는 '요왕맞이', 해산물의 씨앗을 바다에 뿌리는 '씨드림', 영감차림을 한 도깨비들이 한바탕 난장을 펼치는 풍자놀이굿인 '영감놀이' 등을 함께 시연한다.

또 제주의 전통 배인 떼배(뗏목배, 테우)를 말 모양으로 만들어 타고 바다 밭에 씨를 뿌린 민속놀이인 '떼몰놀이'(약마희)를 하기도 했다.

제주 고유 전통이 고스란히 남은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은 1980년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로 지정됐으며, 2009년 9월에는 세계무형유산 대표목록으로 등재됐다.

신들의 고향이라 일컬어지는 제주의 독특한 문화유산을 세계가 인정한 셈이다.

올해 영등신은 어떤 옷을 입고 올까

제주에선 영등신의 옷차림, 영등신이 누구와 함께 오느냐에 따라 한해 일기와 운수를 점치는 속신(俗信, 민간에 전하는 미신적인 신앙 관습)이 있다.

민속학자 문무병 박사에 따르면 비옷을 입은 영등신이 오면 비가 많이 오고, 두터운 솜 외투를 입은 영등신이 오면 그해 영등달엔 눈이 많이 오며, 차림이 허술한 영등신이 오면 영등달에 유독 날씨가 좋다고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시기에 비가 내리면 "영등신이 우장(雨裝, 비옷)을 하고 왔으니 비가 내리는 것이지"라 말하고, 날씨가 따뜻하면 "아이고! 헛 영등이 왔구만"이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헛 영등'이 온다는 말은 진짜 영등은 바람의 신이기 때문에 독한 바람을 몰고 오는데, 헛 영등은 허술한 차림으로 오기 때문에 날씨가 따뜻해 바람에 대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신(神) 바람 축제' 제주 영등퍼레이드 (제주=연합뉴스) 제주시 한림읍 한수리 바닷가에서 '영등 퍼레이드'가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또 영등신을 대표하는 '영등할망'은 제주에 올 때 여러 식솔을 거느리고 찾아온다.

영등할망의 식솔은 영등하르방, 영등대왕, 영등별감, 영등좌수, 영등호장, 영등우장 등이다.

영등할망은 가끔 딸이나 며느리를 데리고 오기도 한다.

할망이 딸과 함께 올 때는 어머니와 딸 사이가 좋아 따뜻한 날씨가 이어진다고 하고, 며느리와 함께 올 때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갈등이 많아서 날씨도 변덕스럽고 궂은 날씨가 이어진다고 사람들은 여겼다.

제주 전해오는 영등신화

제주에는 영등신과 관련해 2가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하나는 중국 강남천자국에서 제주를 찾는 영등신의 이야기다.

음력 2월이 되면 영등신이 중국 강남천자국에서 산구경, 물구경을 하러 제주로 오는데 맨 먼저 제주 한림읍 귀덕리 '복덕개' 그윽한 바다 기슭에 첫발을 디딘다.

한라산에 올라가 설문대할망의 아들 오백장군에게 문안 인사를 드리고 난 뒤 제주 곳곳을 여행하며 생명의 씨앗을 뿌리고 돌아간다는 이야기다.

다른 이야기는 외눈박이 나라로 표류한 제주 어부들을 도운 영등신의 이야기다.

옛날 제주 한림에 사는 어부들이 고기잡이하러 먼 바다로 나갔다가 폭풍우를 만났다.

어부들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지만 엎친 데 덮인 격으로 사람을 잡아먹는 외눈박이 거인이 사는 나라로 표류했다.

2018 영등바람 퍼레이드 (제주=연합뉴스) 바람의 신(神)인 '영등신'이 들어오는 길목인 제주시 한림읍 일대에서 영등바람 퍼레이드 행사가 펼쳐지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외눈박이 거인들에게 잡아먹힐 뻔한 어부들은 영등신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고향으로 돌아가게 됐다.

하지만 거인들이 어부들을 도운 영등신을 세 토막 내어 죽였다.

이후 어부들은 영등신의 은혜에 감사하며 영등제를 지내기 시작했고, 영등신을 해상사고를 방지해주는 수호신으로 모셨다는 것이다.

구전으로 전해오는 제주신화의 특성상 시간이 흐르면서 내용이 덧붙여지거나 생략되기도 하는 등 변형이 이뤄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혹자는 두 번째 이야기의 경우 후대에 재창조된 것으로 보인다는 견해를 내기도 한다.

2개의 신화를 짧게 줄여 설명했지만, 기회가 된다면 전체 이야기를 읽어보는 것도 좋다.

[※ 이 기사는 '제주칠머리당영등굿'(국립문화재연구소), '남국의 신화'(진성기 저) 등 책자를 참고해 제주신화를 소개한 것입니다.]

bj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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