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터 에그, 어디까지 찾아봤니

김태훈 기자 2021. 3. 7.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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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적외선 카메라로 촬영한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 왼쪽 상단에 희미하게 뭉크가 써놓은 글씨가 보인다. /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미술관


“해가 지고 있었고 구름은 피처럼 붉은색으로 변했다. 나는 자연을 뚫고 나오는 절규를 느꼈다.”(<죽기 전에 꼭 봐야 할 명화 1001점>에서 재인용)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는 핏빛 하늘 아래 절규하듯 인상적인 표정을 짓는 인물이 등장하는 그림으로 유명하다. 사실 뭉크 본인이 한 위의 표현대로라면 작품 속 인물은 오히려 자연의 절규를 피하고 싶어 귀를 막은 모습이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할 것 같기도 하다. 이 작품은 한쪽 구석에 숨겨진 글귀로도 유명하다. 캔버스의 왼쪽 위에 “미친 사람만이 그릴 수 있는”이라는 문장이 연필로 쓰여 있기 때문이다.

보일 듯 말 듯한 크기의 이 글을 누가 썼는지를 두고 미술계에선 오랫동안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명확한 결론은 최근에 와서야 내려졌다. 해당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미술관의 큐레이터 마이브리트 굴렝은 지난 2월 23일 “그 글은 의심할 여지 없이 뭉크 자신의 것”이라고 밝혔다. 뭉크가 남긴 일기장과 편지 속 자필 글씨와 해당 문장을 면밀히 비교한 끝에 결국 미스터리의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뭉크가 남긴 작품 속 한마디

이전까지 작품에 낙서를 남긴 주인공이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은 탓에 전시 중 관객이 작품을 훼손하는 낙서를 남긴 것이라는 등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해당 작품이 1994년과 2004년 두 차례나 도둑맞았다가 되찾은 전력이 있기 때문에 억측은 더 무성했다. 게다가 1893년 첫 작품이 탄생한 ‘절규’는 모두 4연작으로, 네 작품이 각기 다른 소재와 화법으로 완성됐지만, 작품 속 인물과 배경의 구도는 모두 흡사해 혼동을 일으킨 점도 있었다. 오슬로 국립미술관은 뭉크가 이 작품을 완성한 1893년 이후 해당 문장을 덧붙인 것으로 보인다며 아마 작품이 처음 전시된 1895년 쓰였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밝혔다. 작품이 전시됐을 때 뭉크의 정신상태가 건강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한다는 평가가 나왔고, 뭉크는 이러한 평가에 대응해 작품에 이 문장을 써넣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뭉크의 ‘절규’에 숨겨진 글귀를 확대한 모습 /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미술관


어찌 됐든 뭉크의 ‘절규’ 속 문장 역시 작가 본인의 것임이 분명해지면서 일종의 ‘이스터 에그’라는 점도 확실해졌다. 직역하면 ‘부활절 달걀’로 읽히는 이스터 에그는 게임이나 소프트웨어, 영화, 책, 광고 등 각종 매체에 숨겨진 메시지나 기능을 의미하는 쪽으로 뜻이 바뀌었다. 원래는 기독교 문화권에서 부활절을 맞으며 달걀을 미리 보물찾기하듯 숨겨두고 아이들에게 찾으라고 한 풍습에서 유래했다. 이스터 에그라는 표현을 적용할 수 있는 최초의 사례로 꼽히는 아타리의 1977년 출시 게임 ‘스타십 1’에서는 특정 방식으로 게임을 작동하면 개발자가 숨겨둔 문구가 드러난다.

게임 개발사 아타리의 이스터 에그가 워낙 유명해진 탓에 이후부터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작품 속에 숨겨진 메시지를 통틀어 이스터 에그라고 부르게 됐다. 특히 IT 분야에서 개발자들이 재치있는 메시지를 장난삼아 숨겨둬 이용자들에게 작은 재미를 안겨주기도 한다.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는 대표적인 예를 들면 구글에 접속한 뒤 ‘askew’를 검색하면 검색 결과 화면이 기울어져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또는 인터넷 연결을 일시 중단한 상태에서 구글 검색화면이나 구글의 웹브라우저 크롬에서 검색을 시도하면 간단한 게임을 즐길 수 있게 해놓은 이스터 에그 역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뭉크의 예만 봐도 알 수 있듯 이스터 에그란 말이 있기 전부터 미술에서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이스터 에그를 숨겨두는 창작활동이 활발했다. 가장 많이 회자되는 피터르 브뤼헐의 1568년작 ‘교수대 위의 까치’에선 왼쪽 아래 귀퉁이에 대변을 누는 사람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작가가 활동하던 당시 네덜란드에서 통용되던 ‘교수대에 똥 눈다’(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생리적 욕구가 더 급하다는 의미)란 속담을 반영한 것이라지만 해석은 분분하다. 연상되는 속담을 통해 당시 네덜란드에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던 스페인을 풍자했다는 등 다양하게 풀이되기 때문이다.

■오래된 미술작품부터 최신 애니메이션까지

미켈란젤로나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르네상스 시대 거장들의 작품들 역시 이들이 ‘천재’라고 칭송받는 만큼이나 여러 해석을 낳을 수 있는 숨겨진 코드가 적지 않다. 특히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 장식된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는 조물주가 첫 인간인 아담을 창조하는 신화의 내용을 표현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힘차게 오른손 검지를 뻗어 아담의 손에 닿으려 하는 조물주의 뒤편으로 펼쳐진 배경이 다름 아닌 인간의 뇌를 상징한다는 해석도 있다. 두뇌의 단면 해부도를 천사들과 그들을 둘러싼 천이 펄럭이는 모양으로 표현한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아담을 창조하는 장면 외에도 ‘천지창조’ 벽화의 곳곳에 인간의 신체 부위 곳곳의 해부도를 숨겨뒀다.

오랜 옛날부터 조형 이미지에 메시지를 담아 표현해온 역사가 있는 미술 분야의 특성상 이스터 에그는 명확한 기원을 찾기도 어렵고, 또 이를 지칭하는 용어조차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전문가들은 각각의 작품에 메시지나 코드를 숨겨두는 작가의 활동도 시대상이 반영돼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한다. 홍경한 미술평론가는 “특히 르네상스 시대에 뒤이은 바로코·로코코 시대까지 미술작품은 작가가 그저 창작하고 싶다고 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 교황이나 권력가, 유력 후원자들의 요구로 만들어진 것이기에 때때로 작가들은 표면적인 메시지 대신 자신이 진심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교묘히 숨겨두곤 했다”고 말했다. 보다 다양한 소재나 매체를 활용하는 현대미술에 와서는 오히려 어디부터가 공공연한 메시지이고, 어디까지가 숨은 의미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스터 에그 자체가 작품활동 깊숙이 녹아드는 변화가 나타났다.

최근의 대중적인 문화예술 콘텐츠 가운데 이스터 에그를 찾는 재미가 쏠쏠한 작품은 픽사의 애니메이션 <소울>이 대표적이다. 작품 속 등장 캐릭터 ‘22’의 비밀 아지트 벽면 한쪽에 붙어 있는 세계 각국 사람들의 이름표에는 공자나 마하트마 간디, 넬슨 만델라 등 역사책에 나오는 유명 인물들의 이름도 걸려 있다. 또한 역대 모든 픽사 영화에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이스터 에그로 유명한 ‘A113’이라는 기호가 <소울>에서도 나온다. <토이 스토리>, <벅스 라이프>, <라따뚜이> 등의 연출가들이 공통적으로 캘리포니아 예술학교 출신이어서 학교의 A113 강의실 이름에서 따온 이스터 에그이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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