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의 아이콘 '중고차시장', 허위매물에 성능 조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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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B씨는 수입 중고차를 산 당일 운행 중 엔진오일 경고등이 켜져 점검받은 결과 피스톤 및 실린더 헤드를 교체해야 한다는 진단에 따라 사업자에게 연락했다. 그러나 매매업자와 성능점검업자가 서로 책임을 전가했다.
#3 C씨는 중고차를 구입하면서 매매업자로부터 주행거리가 5만7000㎞로 적힌 성능·상태점검기록부를 교부받았다. 그러나 자동차등록증을 살펴보던 중 주행거리가 21만8000㎞인 것을 확인해 계약해제를 요구했다.
한국소비자원에 그동안 접수된 수많은 불만 사례 중 일부지만 많은 이가 공감하고 우려하는 가장 흔한 내용이기도 하다. 중고차는 말 그대로 누군가 쓰던 제품인 만큼 그 이력과 상태를 제대로 알 수 없는 데다 전문가가 아닌 이상 문제점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2013년 중고차매매업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서 완성차업체 등 국내 대기업은 시장에 새로 진출하거나 사업을 확장할 길이 없었다. 관련 업계에서는 이 결정이 화를 키웠다고 보고 있다.
현재는 대기업 진출을 바라는 소비자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져가고 있다. 대기업에 반감을 갖는 이들이 많음에도 중고차시장만큼은 적극 환영하는 분위기다. 2019년 11월6일 동반성장위원회는 소비자 편익 측면에서 중고차매매업을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하는 것이 ‘부적합’하다는 의견을 중소벤처기업부에 제출했다. 중기부가 적합 여부를 심의하고 있으나 6개월 기한은 이미 오래전에 지났다.
중고차 시장은 연간 거래대수를 비롯해 정확한 업계 종사자 수 등 시장 규모를 파악하는 게 쉽지 않다. 전국의 중고차 관련 전산망도 하나로 통합되지 않았고 국토교통부가 집계하는 자료에는 파는 것과 사는 것 모두가 거래실적에 포함된다.
중고차 시장이 과연 생계형 업종일까. 통계청에 따르면 자동차판매업으로 등록된 업체 수는 2013년 5288개에서 2018년 6361개로 20.3% 늘어난 데 비해 매출은 같은 기간 5조2063억원에서 12조4216억원으로 138.6%나 급증했다. 중고차업계에선 연관 종사자를 약 30만명으로 추정하지만 정작 통계청에 등록된 해당 업체 종사자 수는 약 3만여명에 불과하다. 자동차 판매업과 함께 함께 생계형 업종으로 검토된 건 꽃집과 자판기업종이다.
중고차 시장은 그동안 주어진 기회를 살리지 못한 채 불신의 아이콘이 됐다. 나름대로 자정 노력을 하는 곳도 있지만 여러 논란이 끊이지 않으면서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기에는 이미 늦었다는 평이다. 곪을 대로 곪았다는 것.
지난해 중고차 거래대수는 387만대로 전년 대비 7.2% 증가했다. 신차가 192만대 등록된 것과 비교하면 시장 규모를 가늠할 수 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중고차 관련 피해구제 신청은 ▲2016년 300건 ▲2017년 244건 ▲2018년 172건 ▲2019년 149건 ▲2020년 110건 등 점차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성능·상태 점검 관련 피해 비중은 오히려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까지 소비자원에 접수된 피해구제 신청 유형을 살펴보면 ‘성능·상태 점검내용과 실제 차 상태가 다른 경우’가 632건(79.7%)으로 가장 많았고 ▲제세공과금 미정산 34건(4.3%) ▲계약금 환급 지연·거절 17건(2.1%)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성능·상태 점검내용과 실제 차 상태가 다른 경우’의 세부 내용으로는 ‘성능·상태 불량’이 가장 많았고(572건, 72.1%) ▲주행거리 상이(25건, 3.2%) ▲침수차 미고지(24건, 3.0%) 등이 뒤이었다. 게다가 피해구제 신청 사건의 52.4%만 사업자와 합의가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자지향성 ‘빨간불’ 중고차시장
지난해 중고차 시장은 2017년 대비 점수가 소폭 하락(0.6점↓)한 77.7점으로 ▲신뢰성(2.3점↓) ▲비교용이성(1.6점↓)이 크게 하락해 해당 문제의 개선이 시급하다고 소비자원은 지적했다. 중고차시장은 신뢰도가 낮고 비교도 어려워 꺼리게 된다는 것으로 분석된다.
내부에서도 곪은 부분은 과감히 도려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중고차업계 한 관계자는 “중고차업계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며 “여전히 개선되지 않은 일부의 문제가 전체의 문제로 여겨지는 상황은 안타깝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자동차업계에선 중고차 시장이 성숙하려면 일정 부분 진통이 필요하다고 보면서도 수질관리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양인수 마이마부 대표는 “중고차 시장은 여전히 감춰진 부분이 많은데 이를 투명하게 만들어야 소비자 피해가 줄어들 수 있다”며 “완성차업체의 진출은 시장에 새로운 긴장을 낳고 기존 시장과 경쟁하며 결과적으로 시장이 성숙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업계 관계자는 “조금이라도 더 저렴하게 사려는 게 소비자의 일반적 모습이지만 중고차는 인증 중고차는 물론 차 검수 등에 돈을 더 쓰는 행동을 하고 있다”며 “대기업 진출을 무조건 막을 게 아니라 서로의 강점과 특성을 살릴 생각부터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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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차업계 양대산맥인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한국연합회)와 전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전국연합회)는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에 사활을 걸었다. 1인 시위를 비롯해 릴레이 시위와 청원 등 다각도로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중고차업계는 부적합 의견서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생계형 적합업종을 지정하는 심의위원회에서 의견서가 중대한 역할을 하는 만큼 대기업 진출을 막기 위해선 사실상 마지막 방안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각 지역 연합회가 날마다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을 위한 시위를 벌이고 있어 앞으로 단체행동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중기부는 마지막 심의 기구인 심의위원회가 법적인 독립 기구인 데다 민간으로 구성된 만큼 의견서 공개는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중기부 관계자는 “자료가 먼저 공개될 경우 여론이 형성돼 심의위원회의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며 “이런 이유로 동반성장위원회의 의견서는 비공개가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상생 없다” 협약 거부하는 중고차업계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정부와 여당의 주재로 대기업과 중고차업계의 상생안을 마련하기 위해 ‘상생협약기구’를 발족하려 했지만 중고차업계가 돌연 참석을 거부했다.
한국연합회 관계자는 “소상공인은 오래된 차만 팔고 대기업에서 알짜매물을 가져가는 게 상생의 방법인지 반문하고 싶다”며 “오히려 반대로 오래된 매물을 대기업에서 인증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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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차업계와 현대·기아자동차가 중고차 시장 진출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정부는 사실상 대기업 진출을 대비하는 분위기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은 2월22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토부 업무보고에서 “완성차 기업이 시장에 진출하고 상생을 위해 협력한다면 중고차 사업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며 “(상생)조건 마련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게다가 중소벤처기업부도 완성차업계와 중고차업계 사이에서 상생 방안 마련을 위해 중재를 서는 상황이다. 이에 비춰볼 때 정부도 현대차의 중고차 진출을 허가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중고차매매업이 이제는 소비자 중심으로 가야 할 때”라며 “그동안 대기업 진출을 막으면서까지 보호해왔지만 소비자 피해만 늘었다. 대기업 진출을 막을 명분이 없다”고 진단했다. 김필수 교수는 그동안 중고차업계의 입장을 대변해 현대차와 정부에 상생안을 제안하는 중재자 역할을 맡아온 인물이다.
그는 이제는 오히려 중고차 시장에 대기업이 진출해 소비자 권리가 회복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중고차매매업이 6년 동안 중소기업 적합업종에 포함되면서 대기업 진출을 막고 자생의 노력을 기대했지만 소비자 권리가 여전히 침해받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 챙기는 정부
이는 그동안 중고차 시장에 대한 소비자의 불신이 여전히 작용하고 있어서다. 김동욱 현대차 전무는 지난해 국회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중고차 사업은 완성차기업이 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중고차 구매 경험이 있는 소비자의 70~80%가 품질과 가격산정 등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즉 자동차에 대해 잘 아는 제작사가 이 시장에 진출해 품질 제고와 투명한 거래를 목표하겠다는 논리다.
실제로 국민 4명 중 3명은 중고차 시장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중고차시장 소비자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의 76.4%가 국내 중고차시장이 불투명하며 혼탁 낙후됐다고 지적했다.
◆내 차 가치가 평가절하됐다
소비자가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반기는 이유는 또 있다. 완성차 기업의 진출이 오히려 소비자에 이롭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KAMA에 따르면 현대차의 2017년형 제네시스 G80는 2020년 30.7% 감가율을 보인 반면 벤츠의 E클래스는 25.5%, 벤츠GLC는 20.6%로 현대차와 비교해 5~10%포인트까지 감가율을 방어하고 있었다. 이런 높은 감가 방어율은 제조사가 직접 중고차 거래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중고차 인증을 통한 품질과 성능 보장 서비스 제공 등으로 잔존가치가 향상되는 까닭이다.
실제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참여가 자유로운 미국의 경우 2017년식 아반떼와 폭스바겐 제타의 감가율을 비교해보면 각각 34.8%로 똑같다. 2017년형 쏘나타의 평균 감가율은 43.3%로 폭스바겐 파사트의 43.9%와 유사했다. 중고차시장에 자유롭게 참여하는 업체의 제품이 잔존가치를 높게 평가받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국내 완성차 기업과의 역차별일 뿐 아니라 소비자의 재산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게 업계의 해석이다.
이외에도 해마다 큰 폭의 성장을 이어가는 중고차매매업에 대기업 진출을 막는 것이 오히려 성장을 방해하는 행위라는 해석도 나온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거래된 중고차 수는 역대 최대인 387만여대로 전년과 비교해 7.2% 증가했다. 이는 국내 신차 시장보다 2배 이상 규모가 큰 수준이다.
정만기 KAMA 회장은 “대기업의 중고차 진출은 철저한 품질 관리와 합리적인 가격 산출 등 객관적인 인증절차를 거친 중고차 제품 공급을 보장해 소비자가 안심하고 중고차를 거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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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규 기자, 지용준 sta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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