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었던 후배에게 배신을 당했을 때..홈랜드의 '탈리스커'

이혜운 기자 2021. 3. 6.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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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운 기자의 드라마를 마시다]
/넷플릭스

※이 글엔 넷플릭스 드라마 ‘홈랜드’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아내보다 믿었고, 자식만큼 아꼈다.

미국 드라마 ‘홈랜드’의 백악관 안보수석보좌관 사울 베렌슨(맨디 파틴킨)에게 CIA(미국 중앙정보국) 후배 캐리 매티슨(클레어 데인즈)은 그런 존재였다. 모두가 캐리를 러시아와 손잡은 반역자라며 손가락질할 때 사울은 “그녀를 감옥에 넣으려면 나부터 잡아가야 할 것”이라며 온몸으로 막았다.

그런 캐리가 배신했다. 사울은 집으로 돌아와 서재에 앉아 모차르트 레퀴엠을 틀고 위스키 한 잔을 마신다. 탈리스커 10년 산이다.

스코틀랜드 싱글몰트 위스키인 탈리스커는 1830년 매카스킬 형제가 멕레오드 가문으로부터 땅을 빌려 증류소를 세우면서 시작됐다. ‘탈리스커(Talisker)’라는 이름은 ‘경사진 암벽’ 또는 ‘돌의 땅’이라는 의미. 증류소가 세워진 지형적 특성을 반영했다. 그 뒤로 주인이 여러 번 바뀌었고 현재는 주류그룹 디아지오 소속이다.

진득한 캐러멜 색에 훈연향과 피트(병원)향, 요오드향 같은 바다 냄새가 올라온다. 맛은 후추, 칠리 같은 매운맛이 느껴진다. 개성 강한 맛들이 전체적으로 조화롭게 어우러져 마시기 부담스럽지 않다. 가격도 6~8만원 선. 평생을 공무원으로 청렴하게 살아온 사울에게 적당한 가격이다.

캐리가 아버지보다 의지하는 멘토 사울의 뒤통수를 친 이유는 단 하나다. 전쟁을 막고 미국을 지키며 세계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이는 사울의 목표이기도 하다. 둘은 같은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지만, 방법이 달랐다. 서로 소중하게 생각하는 게 다르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미국 케이블 채널 쇼타임에서 2011년 시작한 드라마 ‘홈랜드’는 초반엔 이스라엘 드라마 ‘전쟁포로’를 원작으로 이라크에서 돌아온 전쟁 포로 니콜라스 브로디(대미언 루이스)와 캐리의 관계가 중심이었다. 그러나 브로디가 사망한 시즌 4부터는 캐리와 사울의 사제 관계에 더욱 힘이 실린다.

두 사람의 삶은 결이 닮았다. 평범하고 행복한 개인의 삶보다 미국의 안전과 세계 평화라는 대의를 쫓는다. 그렇게 살다 보니 가족과 동료와 친구 모두를 잃고 외톨이가 됐다. 그렇게 다 떠나도 저런 선후배 한 명 있으면 외롭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깊은 관계다. 한국 드라마의 찐득함이 아닌 미국 정치 드라마의 묵직함이다. 그런 그들이 처음으로 어긋나는 장면이다. 여기서 사울이 부드러운 블렌디드 위스키를 마시는 것도 어색했을 것 같다.

그러나 방식은 달랐어도 뜻이 같으니 결말은 한 곳으로 향한다. 힌트는 이 장면에서 흐르던 모차르트의 레퀴엠으로 알 수 있다. 돈에 쪼들리고 심신이 지쳐 있던 말년의 모차르트가 신원 미상의 사람에게 의뢰받아 만들기 시작한 진혼곡(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기 위한 합창곡). 그러나 모차르트는 이 곡을 작곡하던 중 사망하고, 그의 제자인 쥐스마이어가 모차르트가 남긴 스케치를 토대로 곡을 완성했다. 홈랜드 시즌 8 마지막 장면에서 캐리는 스승 사울에게 그 뜻을 이어가겠다는 화해의 메시지를 가장 그 다운 방법으로 보낸다.

☞몰트바 배럴 :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위스키바. 다양한 싱글몰트 위스키를 합리적인 가격에 즐길 수 있다. 테이스팅 코스로 주문하면 탈리스커의 다양한 제품이나, 다른 피트향 위스키들을 비교해가며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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