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연이 빙의됐나.. '펜트2' 최예빈도 똑같은 범죄 저지르는 건

정덕현 칼럼니스트 입력 2021. 3. 6. 16:05 수정 2021. 3. 6.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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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에서 굴러 쓰러진 채 피를 철철 흘리는 인물은 예상대로 배로나(김현수)였다.

SBS 금토드라마 '펜트하우스2'는 그 비극의 주인공이 누구인가 하는 궁금증으로 문을 열었다.

청아예술제에서 배로나는 갖가지 난관들을 뚫고 결국 대상의 주인공이 되지만, 그 엄마가 겪은 비극을 똑같이 겪게 됐다.

물론 이러한 대물림되는 비극의 안타까움과 분노는 '펜트하우스'라는 판타지의 세계 속에서는 심지어 죽은 자를 되살려서라도 반드시 복수를 통한 응분의 대가를 치르는 과정으로 그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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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트2' 그 부모에 그 자식, 이건 유전 문제가 아니다

[엔터미디어=정덕현] 계단에서 굴러 쓰러진 채 피를 철철 흘리는 인물은 예상대로 배로나(김현수)였다. SBS 금토드라마 '펜트하우스2'는 그 비극의 주인공이 누구인가 하는 궁금증으로 문을 열었다. 물론 그 인물이 누구인가는 이 드라마가 그려내는 방식을 생각해보면 어느 정도는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 드라마는 자식이 그 부모와 마치 '평행이론'이라도 보여주는 듯, 비슷한 모습으로 변해가는 걸 보여줬으니 말이다.

배로나를 그 계단 위에서 밀어버린 인물은 다름 아닌 천서진(김소연)의 딸 하은별(최예빈)이다. 따라서 이 끔찍한 장면은 천서진이 벌인 두 가지 범죄들과 겹쳐져 있다. 비 오는 날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 아버지를 그대로 방치한 채 달아나 죽게 했던 범죄가 그것이고, 다른 하나는 날카로운 청아예술제 트로피로 배로나의 엄마 오윤희(유진)의 목을 그어 다시는 노래를 부를 수 없게 만들고 그것이 자해였다고 거짓으로 꾸민 범죄가 그것이다.

청아예술제에서 배로나는 갖가지 난관들을 뚫고 결국 대상의 주인공이 되지만, 그 엄마가 겪은 비극을 똑같이 겪게 됐다. 다음 회 예고편에는 배로나가 수술을 받는 장면과, 분노하는 오윤희의 모습 그리고 이 사건을 계기로 하은별의 아빠인 하윤철(윤종훈)이 오윤희와 겪게 될 갈등과 대립이 예고됐다.

그런데 거의 미칠 지경이 되어 정신적으로 흔들리던 천서진이 그 같은 패륜과 범죄를 저지르게 된 원인이 부모의 지나친 경쟁에서의 압박이었던 것처럼, 하은별도 청아예술제를 앞두고 기상천외한 방법까지 동원해 훈련시키는 천서진의 압박을 견뎌내야 했다. 결국 자신을 그런 인간으로 만들어버린 부모의 모습을 천서진 또한 똑같이 하은별에게 강요함으로써 이들은 닮은 꼴의 범죄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런데 '펜트하우스'에서 그 부모에 그 자식의 모습을 보여주는 건 천서진과 하은별만이 아니다. 잔혹하기 이를 데 없는 주석경(한지현)은 아빠인 주단태(엄기준)를 고스란히 닮아, 천서진의 약점을 잡고 협박을 일삼는다. 등장하자마자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민설아(조수민)처럼 그의 친엄마인 심수련(이지아)도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다. 나서지는 않지만 학교폭력에 늘 가담해 자신밖에 모르는 이민혁(이태빈)은 그의 아버지 이규진(봉태규)을 쏙 빼닮았고, 한때 배로나를 괴롭히는 일진들과 한패였지만 이제는 그와 절친이 된 유제니(진지희)는 역시 오윤희를 괴롭히던 헤라팰리스 사람들과 한패였다 지금은 그와 가까워진 그의 엄마 강마리(신은경)와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이처럼 그 부모에 그 자식의 삶이 반복되는 걸 보여주는 건, 단지 유전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닐 게다. 그것보다는 죄를 짓고도 벌을 받지 않고 버젓이 살아가는 부모의 모습이 고스란히 자식의 그 악한 면들을 똑같이 끄집어낸다는 걸 말해주려는 것이다. 그래서 좀 더 바르게 정의롭게 살아가려는 이들이 오히려 비극을 맞이하고, 그 비극 역시 대물림 되어 나타나는 이야기는 더욱 큰 안타까움과 분노를 이끌어낸다.

물론 이러한 대물림되는 비극의 안타까움과 분노는 '펜트하우스'라는 판타지의 세계 속에서는 심지어 죽은 자를 되살려서라도 반드시 복수를 통한 응분의 대가를 치르는 과정으로 그려질 것이다. 그것이 '펜트하우스'가 가진 힘이니 말이다. 하지만 과연 현실에서는 어떨까. 못 가진 자의 비극은 비극으로 대물림되고, 가진 자의 처벌받지 않는 죄들은 그 후대로도 이어지는 게 우리네 안타까운 현실은 아닐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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