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전문가도 "타짜다!" 경탄..LH 'K사장' 나무보상 신공

함종선 입력 2021. 3. 6. 15:46 수정 2021. 3. 7.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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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밭 갈아엎고 왕버들나무 잔뜩 심어
찾는 이 거의 없는 희귀수종,시세도 없어
나무 보상 관련 정보 자료는 LH가 작성
"땅값보다 나무 관련 보상비가 더 클 수도"
주민들에게 K사장이라 불린 LH 직원이 매입한 경기 시흥시 무지내동 땅.오른쪽 부분에 왕버들나무가 빽빽하게 심겨있다. 뉴스1

"K사장님이요? 아유 사람 좋아요. 가끔 배추도 주고 고구마도 주고. 직장을 다닌다는데 여기서는 직접 농약통을 메고 다녔어요. 아마 작년인가 밭을 갈아엎고 그 자리에 나무를 잔뜩 심었는데 왕버들 나무라고 하더라고요."

LH 직원 K씨 소유의 경기 시흥시 무지내동 토지 인근에서 만난 한 주민의 얘기다. K씨는 2017년부터 다른 LH 직원들과 함께 광명·시흥의 땅 42억원 어치를 매입했다. 이 땅들은 모두 광명시흥신도시 후보지로 최근 지정됐다. K씨는 LH에서 오랫동안 토지보상업무를 한 간부다.

토지보상 전문가인 K씨는 왜 멀쩡한 밭에 이름도 생소한 왕버들나무를 심었을까. 현장 동영상과 사진을 본 조경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보상 관련 최고수 '타짜'의 솜씨"라고 말했다. 현장에는 1㎡의 땅에 25주가량의 나무(180~190㎝)가 심겨 있는데 제대로 키우려면 한 평(3.3㎡)에 한 주가 적당하다는 것이 조경업자들의 얘기다.

나무끼리 서로 엉킬 정도로 촘촘하게 심겨 있다. 함종선 기자

조경업자들 사이에서도 왕버들은 생소하다. 조경업체 대표 이모씨는 "30년 동안 이 일을 했는데 나는 단 한 번도 왕버들 나무를 취급해 본 적이 없다"며 "수변 공원 조성할 때 아주 가끔 사용되는 것 같은데 찾는 사람이 거의 없는 희귀수종이다 보니 시세 자체가 형성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한 조경업체 관계자는 "100% 보상을 노린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LH 관계자는 "희귀수종이라고 해서 보상을 더 많이 받을 수는 없다"라면서 "나무 평가액으로 보상하는 게 아니라 이식비용을 보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식비용 2배 보상…이식비용만 6억대

실제 나무 보상은 주당 이식비용의 2배를 우선 보상한다. 나무를 뽑는데 드는 비용과 다른 곳에 심어야 하는 비용을 계산해서다. 그런데 이렇게 빽빽하게 나무가 심겨 있으면 이식비용만도 엄청나다. 희귀수종일 경우 이식비용 책정액에 따라 비용이 더 커질 수 있다.

조경회사의 한 관계자는 "이식비용은 평가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이런 나무는 보통 주당 1만원(5000원X2)은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LH 직원 K씨의 경우 2500㎡가량의 땅에 왕버들을 심었는데 1㎡당 25주를 심었다고 할 경우 이식비용만 6억2500만원이다. 여기에 이식할 때 죽는 나무 보상비가 더해진다. 나무를 옮겨 심을 경우 통상 5~10%의 나무가 죽기 때문에 이를 현금으로 보상해주는데 보상 기준은 나무 감정가액이다.


나무 수치 어떻게 재느냐에 따라 보상가 큰 차이

나무 보상 업무를 잘 안다는 조경업체의 한 관계자는 "나무 보상가는 토지 보상가와 함께 감정평가사가 책정하지만, 나무 종류, 나무 수, 나무 크기 등 나무 감정과 관련한 정보는 LH가 주변 조경업자들을 불러 조사해 감평사에 전해준다"며 "조경 전문가들도 잘 모르는 희귀수목이라면 감평사들이 LH의 자료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왕버들의 경우 나무 수치를 어떻게 재느냐에 따라 보상가가 크게 차이 난다"고 덧붙였다. 평가하는 사람의 주관에 따라 평가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나무 보상의 기준이 되는 조달청 수목 단가에 따르면 높이 3m근원직경(지면과 닿은 곳의 지름) 6㎝짜리 왕버들 나무의 가격은 6만원이다. 키는 같지만, 근원직경이 8㎝가 되면 가격은 12만원으로 훌쩍 뛴다. 높이가 4m가 되면 한 주당 45만원까지 올라간다. 만약 보상가가 맘에 들지 않으면 땅 주인은 보상을 거절하고 10개월 후 재감정을 받을 수 있다. 왕버들은 1년에 1m 이상 키가 크는 속성수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감정가가 높아진다.

조경업체의 한 관계자는 "보상하는 사람과 보상받는 사람이 짜고 쳐도 걸리기 어려운 희귀 속성수를 고른 것"이라며 "조경전문가들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기발한 방법으로 LH 직원이 보상가를 높이려 했다는 것이 조경업계의 분석"이라고 말했다.

함종선 기자 ham.jongs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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