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OO파 출신' 내걸고 장사.. 사장님의 '슬기로운 조폭생활'
유튜브로 가게 홍보하고 조직원들 MT도
“식당 안에서 서빙 중인 남자 사장님 보이시죠? 저분이 수원 XX 파 조폭이에요.”
지난 1일 경기도 수원시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A씨는 저녁 손님맞이에 한창인 맞은편 가게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약간 앳돼 보여 기자가 대학생 같다고 하자 A씨는 손사래 치며 “온몸에 문신한 동료들과 모여 있으면 영락없는 조폭”이라고 했다. 종종 해당 식당에서 건장한 남성 수십명이 단체로 회식하며 모임을 갖는데, 그럴 때마다 A씨는 쳐다만 봐도 겁이 난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이곳뿐 아니라 길 건너 휴대전화 매장, 노래방, 옷가게 등 일부 업주들은 자신이 ‘어디파 누구’ 식의 조폭 출신을 내세워 영업 홍보에 나선다”고 말했다.
A씨 가게가 있는 상권 내 한 유흥주점은 “대표 중 한 명이 OO파 행동대원 출신”이라고 주변에 알려져 있다. 대표의 소셜미디어만 살펴봐도 가게 홍보 글과 함께 타 조직원과 어울려 단체행동을 한 사진들을 올려놨다. ‘젊은 시절 내가 좋아 OO 파를 했다’ ‘건달이 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누가 우리를 이길 수 있느냐’ 등의 글을 전체공개로 올라와 있다. 인천의 한 폭력조직원 B씨는 “조폭이라고 돈을 누가 공짜로 주는 것도 아니고 우리도 밖에 나가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한다”며 “‘어디파 누구'라고 알리는 것은 일종의 마케팅 수단과도 같다. 그래야 나를 함부로 건들지 않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흔히 조폭은 위계와 서열이 강하고 의리로 뭉치며 은밀한 뒷 일을 봐주는 이미지가 강하다. 집단 패싸움, 흉기로 사람을 협박, 불법 사업 시행 등 생활 전반이 무자비하다는 인상이 있다. 하지만 지금의 조폭은 수사기관의 꾸준한 단속과 관리로 문화가 많이 바뀌었다. 집단 패싸움 문화는 사라지는 대신 유튜브를 운영하며 구독과 좋아요를 부탁하거나 자영업자로서 영업홍보수단으로 폭력조직을 이용한다. 일종의 지역향우회나 동문회처럼 친목회 성격으로 단체가 변해가고 있다. ‘조직을 위해 네가 대신 징역생활을 해야겠다’는 현실에서 찾기 어렵다. 경찰 관계자는 “90년대 전까지만 하더라도 집단으로 둔기나 흉기로 다투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없는 이야기”라며 “싸움 대신 모임 성격이 짙다”고 말했다.
◇품앗이가 돼버린 조폭문화
광주광역시의 한 폭력조직원 C씨는 타 조직원 경조사나 모임에 꼬박꼬박 참석한다. 기자에게 술자리와 단체 MT 등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면서 “일종의 사회생활”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폭력조직의 활동은 흔히 패싸움 등이라 생각하는데 현실은 모임 참석이 주된 활동이다”며 “깡패끼리 싸움을 해본 지 20년도 넘었다”고 덧붙였다. 타 조직원 경조사에 부지런히 참석해야 앞으로 있을 자신의 행사에도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또한 같은 조직원의 가게에 물건을 팔아주면 다른 조직원들이 내 영업장에서 매출을 올려주는 것을 기대한다. 휴대전화 매장을 운영하는 수도권의 한 폭력조직원 D씨는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다른 매장에서 샀다가 걸리기만 해라’는 식으로 협박성 글을 종종 올리기도 한다. D씨는 “나도 같은 조직원 가게에 가서 술을 마시고 옷을 산다”며 “최소한 내 가게에서 휴대전화를 개통해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 아니겠느냐”라고 서운함을 표시했다.
◇패싸움? 후배양성? 밥벌이가 우선
과거 조폭들은 조직의 세를 키우고자 10대 때 중·고등학교 ‘일진’을 포섭하는 방식으로 후배를 양성했다. 운동부 출신 중 조폭이 된 선배가 후배에게 단체 가입을 권하거나 혹은 싸움 잘한다는 이들을 모아 ‘숙소생활’을 시키며 양성교육을 했다. 하지만 숙소생활 문화는 근래 들어 사라졌다. 누군가 후배 양성을 위해 돈을 지원해야 하는데 이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없어서다. 회원 가입도 보통 술자리를 통해 이뤄진다. 특정 선배 조직원과 알게 되고 가입 희망을 밝힌 이후 각종 행사에 따라다니며 얼굴을 알리는 것이 조직폭력배 생활의 시작이다. D씨는 “산악회 회원 받듯 단체 가입이 이뤄진다”며 “싸움을 잘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조직원 집합의 경우 현실적으로 돈 걱정부터 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한 조직원이 누군가와 시비가 붙을 경우 후배들에게 ‘몇시까지 어디로 집합하라’고 통보하는 경우가 종종 벌어진다. 얼마 뒤 조직원 열댓 명이 한꺼번에 모이지만 대치가 끝난 이후에는 집합 당사자가 모인 후배들에게 용돈을 주거나 술을 사는 등 포상을 반드시 해야 한다. 폭력조직원 D씨는 “돈 없으면 후배들을 단체로 부르지도 못하기 때문에 함부로 시비를 걸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 ‘범죄도시’ 등에서 일부 묘사됐듯 과거에는 경쟁 조직이 관리하는 상권이 있을 경우 패싸움을 통해 쟁취하고자 불꽃 튀는 싸움을 벌였다. 유흥업주들에게 조직원을 직원으로 채용해 월급을 달라는 방식으로 협박해 자금을 모았다. 그러나 현재는 범죄 조직을 체계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자금줄이 사라지면서 지금의 조직폭력배 문화로 바뀌었다는 분석이다. 특히 인천 길병원 사건, 수원 역전·남문파 등 과거 조폭 간 집단 패싸움을 수사기관에서 엄하게 다루자 이후 이 같은 폭력 문화가 사라졌다는 분석이다.
◇돈만 되면 불법이든 합법이든 다한다
인천 출신의 조폭이라 홍보하는 유튜버 E씨는 16만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조폭을 콘셉트로 각종 영상을 생산한다. 포털사이트에 자신을 ‘온라인 콘텐츠 창작자’라고 소개했다. 지역에 교도소를 콘셉트로 술집을 내 운영하고 있다. 광주광역시 출신의 조폭 F씨도 마찬가지다. 10대 때 광주에서 두 손가락 안에 들 만큼 싸움을 잘했다고 스스로 밝힌다. 조폭 출신임을 알리는 것이 오히려 돈을 모으는 수단이 된다. 폭력조직원 B씨는 과거 중고차 매매업에 뛰어들며 경쟁 업체들에 ‘인천 어느 식구 소속’이라고 알렸다고 했다. 최근 지역화폐 구매 비용이 액면가보다 10% 저렴한 점을 노려 유령업체를 차린 뒤 수십억원을 허위결제 해 차액을 챙긴 일부 조폭이 경찰에 검거되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영화 신세계처럼 체계화 된 범죄 조직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며 “이제는 조폭도 이합집산하며 자신만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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