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이 뭐길래..눈물의 파도로 번뇌를 삼키다

한겨레 2021. 3. 6.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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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양선아의 암&앎][토요판] 양선아의 암&앎
(6) 항암 2주차 탈모
항암 2주차에 빠지기 시작한 머리카락
불가에서는 '번뇌와 망상'이라지만
내겐 열정 불태운 청춘의 상흔 같아
가족 없는 병실에서 슬픔 실컷 토하고
민머리 깎은 사진 보내니 아이들 반응
"괜찮아 빡빡 민 엄마 모습 더 예뻐"
"둥글둥글 약간 도라에몽 느낌 있어"
너무 기뻐하거나 슬퍼할 필요 없지만
기쁨 슬픔 흠뻑 느끼는 게 맞을 수도
나만의 특별한 경험 지금도 계속된다
일러스트레이션 장선환

“2주차 접어드니 머리가 숭덩숭덩 빠져서 펑펑 울었어요.”

“저도 피해갈 수는 없더군요. 14일째 되니 진짜 머리가 빠지더라고요.”

 유방암 환우 카페에 올라온 항암 후기를 보면, 환우들은 첫 항암을 한 뒤 2주차가 되면 머리카락이 뭉텅이로 빠진다고 전했다. 주치의도 100% 탈모를 피해갈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도 내 마음 한구석에는 ‘혹시 모르지, 나는 머리카락이 덜 빠질지도 몰라’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 마음을 더 부채질한 것은 남편과 아들이었다. 남편과 아들은 “당신은 머리카락 안 빠질 것 같아. 봐봐. 전혀 기미가 없잖아~”, “엄마, 가발까지 샀는데 엄마 머리카락 안 빠지면 헛고생한 건데~ 돈만 쓰고 저 가발 필요 없으면 어떡해?”라고 말하곤 했다. 그런 얘기들을 들으면 ‘0.00001%라는 예외도 존재하니까, 혹시 내가 그런 사람?’ 하는 마음이 슬며시 고개를 들곤 했다.

탈모가 시작되다

 첫번째 항암 주사를 맞은 지 사흘째 되던 날, 나는 집 근처 미용실에 가 어깨까지 내려오던 머리카락을 짧게 잘랐다. 환우들이 “머리카락이 빠질 때 두피가 땅기고 많이 아프니 미리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라”고 조언했기 때문이다. 헤어스타일을 한번 바꾼 뒤 삭발하니 상실감을 덜 느꼈다는 사람도 있었다.

 싹둑싹둑. 내 머리가 잘려나갔다. 뒷머리가 없으니 단출하니 가벼웠다. 의외로 커트 머리도 내게 잘 어울렸다. 이날 남편도 같은 미용실에서 머리를 짧게 잘랐다. 미용사는 날씨도 춥고 남편에게는 짧은 헤어스타일이 안 어울린다고 한사코 반대했지만 남편은 이렇게 말하며 나와 미용사를 감동하게 했다.

 “제 머리카락이야 금방 자랄 거지만, 이 사람은 상당 시간 고생해야 하잖아요. 저도 그 시간만은 짧게 머리 자르고 함께하고 싶어서요. 잘라주세요. 내가 괜찮다는데 뭘요~.”

 나는 쇼트커트 헤어스타일에 빠르게 적응했다. ‘커트 머리를 왜 한번도 안 해봤지? 너무 편하다~ 머리 감기도 편하고 의외로 잘 어울리고~’ 잘 지내다 항암 후 13일째 되던 날 탈모 징조가 보이기 시작했다. 손가락으로 살짝 잡아당기면 머리카락이 힘없이 쑥쑥 빠졌다.

 “엄마~ 탈모가 시작된 것 같아…. 오늘부터 조금씩 빠지네…. 베개에 수건을 깔고 자야겠어요….”

 “그래? 100%라고 했잖아, 의사 선생님이. 치료 끝나면 다시 날 머리카락인데 뭐. 머리카락엔 신경 쓰지 말고 오로지 몸에만 신경 쓸 생각 해. 잘 먹고 치료 잘 받고 오로지 네 몸에만 신경 써.” “그래야지….”

 친정어머니와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잠자리에 누웠는데, 어디서 훌쩍훌쩍하는 소리가 들린다.

 “민규야~ 울고 있는 거야? 이불 뒤집어쓰고 뭐 하고 있어? 왜 울어~ 엄마 머리카락 빠진다고 우는 거야? 아이고~ 내 새끼…. 울지 마~ 엄마 머리카락 또 자라~ 잘 치료받고 끝나면 또 나니까 울지 마~.”

 친정어머니가 아들 쪽을 향해 말한다. 친정어머니와 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아들이 말없이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고 있었다. 우는 아들 때문에 또 한번 마음이 울컥했다. 엄마 머리카락을 만지며 자는 아들, 엄마에게 긴 머리 스타일 말고 단발머리가 어울릴 것 같다며 유난히 엄마의 헤어스타일에도 관심 많던 아들. 그런 아들에게 엄마의 머리카락이 몽땅 사라진다는 사실이 큰 상실감을 주는 모양이었다. 아들의 눈물에 나도 또 눈물이 나와 훌쩍이다 잠들었다.

 이튿날 일어나 머리를 감는데, 머리카락이 우수수수 떨어졌다. 개수대에 빠진 머리카락을 모으니 한 움큼이었다. 기분이 묘했다.

 가족이 떠나자 슬픔이 도착했다

첫 항암 뒤 지독한 변비와 속쓰림으로 보름 가까이 고생한 나는 2차 항암을 앞두고 양한방 통합병원에 입원하기로 했다. 친정어머니가 나를 집중해서 돌보느라 너무 지친 상태인데다 나 역시 너무 지쳐 의료진의 보살핌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2박3일 입원해 나는 면역치료 등을 받고, 친정어머니는 고향 집에 다녀오기로 했다. 아이들은 남편이 보살피기로 했다. 병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 차창 밖을 보는데 말없이 눈물이 흘렀다.

 “왜… 눈물이 나와? 머리카락도 빠지고 그러니 눈물이 나오는 거야?” 친정어머니가 조심스럽게 말한다. “응…. 괜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네…. 오늘은 기분이 좀 다운되네….” “그럴 수 있지… 머리카락은 또 나잖아… 치료에만 집중하자….”

 챙겨 온 짐들을 병실까지 옮겨주고 남편과 친정어머니는 용산역으로 향했다. “치료 잘 받고 뭐든지 잘 먹고 잘 생활해. 엄마 다녀올 때까지!” “응…. 걱정 마세요….” 친정어머니를 꼭 껴안았다. 옆에 있던 남편도 꼭 껴안았다. “애들 밥도 잘 챙겨 먹이고, 아이들 잘 챙겨~ 여보~.” 남편이 나를 꼭 껴안아주는데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내가 눈물을 보이자, 결혼 뒤 거의 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던 남편이 눈시울을 붉히며 한쪽에서 훌쩍였다. 화장실에 다녀온 친정어머니가 울고 있는 우리 둘을 보자, 마음이 아픈지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이고~ 한달도 아니고 일년도 아니고 2박3일 헤어지는데 왜 울고들 난리여~ 안 서방~ 얼른 가세~.”

 남편과 친정어머니가 떠나자 ‘슬픔’과 ‘상실감’이 도착했다. 나는 또 울었다. 그런 날이 있다. 수도꼭지 틀어놓은 것처럼 눈물이 계속 나오는 날. 멈추고 싶어도 잘 멈춰지지 않는 그런 날. 머리카락이 뭐길래, 그렇게 눈물이 멈추지 않았던 걸까.

 불가에서 스님들은 머리카락을 번뇌나 망상의 상징으로 본다. 그래서 출가를 할 땐 삭발을 한다. 그런데 당시 내겐 숭숭 빠지는 머리카락이 열정을 불태웠던 내 청춘의 상흔처럼 느껴졌다. 암 치료가 본격화됐다는 신호탄과 함께 앞으로 불가능한 게 많아질 거라는 예고탄이 내 앞에 떨어진 것 같았다. 내 눈물을 안타까워할 이도, 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아이들도 없는 병실에서 그날 나는 실컷 울었다. 슬픔을 실컷 토해 눈물의 파도로 번뇌·집착·미련·애착을 모두 삼켜버리겠다는 태세로.

 한바탕 마음에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때문이었을까. 태풍이 지나고 난 하늘은 먼지 하나 없이 맑듯, 이튿날 내 마음의 날씨도 나쁘지 않았다. 오전에 치료를 받고, 오후에 병원에서 ‘무료 셰이빙’을 해준다는 미용실로 혼자 향했다. 민머리로 머리를 밀겠다고 하자 남편이 오기로 했다. 시간이 됐는데 어찌 된 일인지 소식이 없다.

 “안녕하세요~ 어떻게 해드릴까요?” 미용사가 물었다. 아직 머리카락이 많이 남아서인지 커트를 하러 온 줄 알았나 보다. “확 밀려고요.” “아~ 전체 다 미신다는 거죠?” “네~.”

 미용사는 금방 끝난다며 바리캉으로 뒷머리부터 머리카락을 밀었다. 진동 소리와 함께 머리카락이 잘려나갔다. 순식간에 그나마 두피에 남아 있던 머리카락이 사라졌다. 머리카락을 다 밀어가는데, 남편이 미용실에 도착했다.

 “벌써 다 밀었어? 차가 좀 막혀 좀 늦었어~.” “응. 예약 시간이 돼 왔어~ 나 어때?” “오~ 양선아~~ 그런데 이쁘다~. 자, 사진 좀 찍자~ 나 좀 봐봐~ 괜찮아~ 괜찮아~ 머리 다 밀어도 이쁜데?” 미용사가 옆에서 한마디 거든다. “표정도 밝고 머리도 둥글둥글 예뻐서 환자분 예뻐요. 두분 함께 기념사진 찍어드릴까요? 제가 찍어드릴 테니 한번 서보세요.”

 남편과 나는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었다. 기념할 만한 사진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인생에 언제 이렇게 머리를 빡빡 밀어보겠는가’라는 생각을 하니 기념사진을 찍어놔야 할 것만 같았다. 남편은 사진을 몇컷 찍더니 가족 단톡방에 내 사진을 올렸다. 아들과 딸, 친정어머니가 사진을 보고 부리나케 연락이 온다. 아들이 제일 먼저 전화가 왔다.

 “엄마! 엄마 머리 잘랐어?” “응…. 민규야…. 어때?” 엄마 머리카락 때문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던 아들이다. 사진 보고 또 울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어? 엄마 예쁜데? 더 이쁜 것 같아~.” “정말? 괜찮아?” “응. 의외로 괜찮아. 빡빡 민 게 예뻐~.” “민규가 그렇게 말해주니까 엄마 기분 좋다. 민규가 이쁘다고 하면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아. 치료 끝나면 머리카락은 다 나는데 뭘. 민규도 엄마 머리카락 없다고 걱정하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 “응~.”

 아들의 반응에 나도 남편이 공유한 사진을 용기를 내 쳐다봤다. 환자복이 스님 옷 색깔과 비슷해서인지, 영락없이 비구니 같다. 얼굴도 동글동글, 머리 모양도 동글동글. 사진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나온다. 보기 흉하지 않다. 사진을 보고 있는데 친정어머니 카톡이 온다. “오메~ 이쁘다~.”(역시 엄마의 사랑은 바다보다 깊고 하늘보다 넓다.)

 머리카락 빠진다고 울고불고하다, 불과 며칠 만에 또 머리카락 한올도 걸치지 않은 내 두상을 보며 나는 웃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 학원 다녀온 딸이 카톡을 보내왔다.

 “생각보다 예쁜데?” “ㅋㅋㅋ 민지도? 그럼 성공! 헤헤. 엄마 머리가 둥글둥글해~ 예전에 교련 수업에서 붕대 감기 시험 볼 때 친구들이 서로 엄마 머리로 하려고 했다니까~~ ㅋㅋㅋ” “ㅋㅋㅋ 도라에--~몽 느낌==약간 익-숙-평-온-한 느낌(?) 안 이상한데?” “하하하하 도라에몽? 민지 밥 맛있게 먹어~~.”

 창조적이고 독창적인 생각을 하는 내 딸 민지. 딸이 내 머리를 보고 ‘도라에몽’을 떠올린 순간, 나는 또 한번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도라에몽은 아이들과 내가 너무 좋아하는 캐릭터이고, 그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떠올린 순간 심지어 기분이 좋아졌다. 도라에몽 사진을 찾아서 비교해보니, 정말로 도라에몽과 비슷한 느낌도 있었다.(아니면 말고.)

 머리카락 빠지는 문제로 며칠 동안 부대끼면서 인생이 새옹지마라는 걸 새삼스레 느꼈다. 살다 보면 슬프고 힘든 일이 있다가도 또 웃을 일이 생기고 즐거운 일도 생긴다. 그래서 너무 슬퍼할 필요도 또 너무 기뻐할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또 기쁠 땐 제대로 기뻐하고 슬플 땐 제대로 슬퍼하는 게 맞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했다.

 머리카락이 다 빠지면 그 상실감으로 힘들 것이라고 미리 걱정했는데 의외로 그렇지 않았다. 머리카락이 없으니 아침에 세수하고 머리 감는 시간이 너무 단축돼 편리했다. 머리를 말리거나 헤어스타일 고민할 필요 없이 비니나 모자만 쓰면 되니 간편했다. 또 기분 따라 가발로 헤어스타일을 손쉽게 바꿀 수 있어 재밌었다. 원래 나는 모자도 좋아하는데 다양한 색깔의 모자를 써보는 기회도 가질 수 있었다. 더운 여름엔 비니만 간편하게 쓰고 시원하게 보내고, 겨울엔 가발로 따뜻하고 다채롭게 보냈다. 다른 사람 시선 신경 쓰지 않고 ‘이것 또한 내가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라고 생각하니 마냥 슬프지만은 않았다. 그렇게 일년을 보내고, 이제는 새롭게 움튼 머리카락을 보며 또 다른 기쁨과 재미를 느낀다. 항암제 공격으로 두피 세포들도 힘들었는지, 머리카락이 꼬불꼬불 자란다. 며칠 전, 일년 만에 미용실을 찾아 제멋대로 자란 뒷머리와 옆머리를 다듬었다. 그리고 가발과 모자를 벗어던지고 산책에 나섰다. 상쾌하고 통쾌했다. “겨울을 견디기 위해 잎들을 떨구었던” 겨울나무들이 “더 크고 무성한 훗날의 축복”을 예고하며 내게 반갑게 인사했다.(이재무 시, ‘겨울나무로 서서’ 일부 인용) 봄이 오고 있다.

▶ 2020년 연말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8년 국가암등록통계를 보면, 암 치료를 받고 있거나 완치 판정을 받은 ‘암 유병자’가 2018년 기준 200만명을 넘어섰다. 국민 다수가 자신 또는 가족이 암 환자가 되는 경험을 한다. 2019년 말 암 진단을 받고 치료 중인 <한겨레> 사회정책팀 양선아 기자(anmadang96@kakao.com)의 체험기를 격주로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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