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지도 않을 사진을 왜 그렇게 많이 찍나

김성민 2021. 3. 6. 12:15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윤명희의 수필 〈버려진 사진〉을 보면 화자(話者)가 친구 고물상을 찾아갔다가 문득 쓰레기더미 속에서 쏟아져 나온 오래된 사진을 자신도 모른 채 밟고 있는 사실에 깜짝 놀란다.

자신이 없는 세상에 남은 사진이 떠돌아다니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물론 〈버려진 사진〉의 저자처럼 어느 날 세상을 떠난 이후 자신이 찍힌 사진이 누군가에게 소홀히 대해지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것이 싫어서 사진을 정리할 수 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형동, ‘2019년’, 대구의 한 재개발 지역.

윤명희의 수필 〈버려진 사진〉을 보면 화자(話者)가 친구 고물상을 찾아갔다가 문득 쓰레기더미 속에서 쏟아져 나온 오래된 사진을 자신도 모른 채 밟고 있는 사실에 깜짝 놀란다. 누군가의 얼굴 위에 서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화자는 자신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남은 사진’을 가족들이 정리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이후 그는 자신의 모습이 카메라 프레임 안에 들어가는 것을 원치 않게 된다. 자신이 없는 세상에 남은 사진이 떠돌아다니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다가 문득 ‘우리는 왜 사진을 찍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우리는 자신에게 소중한 무엇인가를 기억하기 위해 혹은 누군가 ‘나’를 기억해주길 원하면서 사진을 찍는다. 지방의 한 광역시 공무원들에게 사진 교육을 하던 도중 수강생들의 카메라 메모리 카드를 모두 걷어서 찬찬히 훑어본 적이 있다. 몇몇 수강생의 메모리 카드 안에는 길게는 5년 전 해외여행에서 촬영한 사진까지 수천 장이 들어 있었다. 다음 날 궁금해서 ‘사진을 한번 정리해봤냐’고 수강생에게 질문하니, 여행지에서 보고 그냥 놔뒀다고 했다. 나는 사진의 분류 및 정리, 그리고 데이터 백업의 중요성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보지도 않을 사진을 뭘 그렇게 많이 찍었냐’는 이야기는 차마 꺼내지 못했다.

손안에, 주머니 안에 휴대할 수 있는 ‘스마트폰’이라는 요물만 있으면 수많은 사진을 찍어낼 수 있다. 너무 쉽게 사진을 찍고 공유할 수 있는 과잉 이미지 시대다. 그래서 그런지 너무 쉽게 찍고, 쉽게 지우고, 너무 쉽게 잊어버린다. 자신이 SNS에 공유한 사진의 존재조차 잊을 때가 많다. 물론 〈버려진 사진〉의 저자처럼 어느 날 세상을 떠난 이후 자신이 찍힌 사진이 누군가에게 소홀히 대해지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것이 싫어서 사진을 정리할 수 있다. 사진을 무작정 찍어두고 방치하는 무관심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이는 사진에 대한 적극적인 자기 의사 표현이기 때문이다.

박제가 된 사진을 아시오?

대구에서 공무원 시절부터 퇴직 이후까지 꾸준히 사진 작업을 해온 작가가 있다. 대구의 재개발 지역에서 오랫동안 사진을 찍은 분이다. 〈버려진 사진〉을 읽다가 문득 그의 사진 한 점이 떠올랐다. 철거를 기다리는 빈집에 남겨진 가족사진을 촬영한 작품이다. 가족사진들은 액자가 된 채 그대로 벽에 걸려 있거나 심지어 바닥에 버려져 있었다. 부부의 결혼, 자녀의 돌잔치, ‘리마인드 웨딩’ 등 옛 거주자들의 중요한 인생의 순간들을 담고 있었다. 그곳에서의 모든 기억을 ‘철거’와 함께 깨끗하게 지워버리고 싶었던 것일까? 각자 사정이 있었겠지만, 폐허 속에 남겨진 액자 속 사진을 보면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롤랑 바르트가 이야기한 것처럼, 사진은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데스마스크’ 같은 존재다. 사진에 찍힌 순간은 프레임 안에 갇히면서 박제가 된다. 그래서 사진은 언제나 ‘과거형’이다. 하지만 사진으로 박제된 과거는 그 사진을 보는 ‘현재의’ 우리에게 여러 가지 감정을 던진다. 과거의 한순간이 타임머신을 타고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 마음 속 깊은 곳을 찌르고 들어온다. 하지만 사진 속 주인공이 버리고 간 ‘사진’이 다른 누군가의 사진 속에 담기면서 새 생명을 얻어 우리에게 다시 말하기 시작한다는 것은, 여전히 수수께끼다.

사진 속 버려진 사진이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나를 기억해!”

김성민 (경주대학교 교수) editor@sisain.co.kr

싱싱한 뉴스 생생한 분석 시사IN (www.sisain.co.kr) - [ 시사IN 구독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