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직장인에서 한국 사업가로.. 코로나가 터닝 포인트 됐죠"

김재현 2021. 3. 6.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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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성 흥해앵글 대표
장재성 흥해앵글 대표가 앵글 제품과 시장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재현 기자

앵글은 일반적으로 거칠고 투박한, 공사 현장에서 자주 쓰이는 철제 구조물로 인식되곤 한다. 하지만 최근 앵글 제품은 일반 가정집에서부터 카페 등 각종 다양한 곳에서 그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다. 맞춤 주문으로도 제작할 수 있어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 않으면서도 디자인까지 세련되면서 새로운 인테리어 용품으로 떠오르고 있다. 투박하다는 이미지도 옛날 이야기다.

경북 포항의 흥해앵글 장재성(31) 대표는 "앵글 선반 등은 최근 일반 가정집이나 아파트에서 주문하는 경우가 많다"며 "인테리어용으로 사용할 수 있고, 공간을 많이 차지하 않아 물건을 정리하기에도 안성맞춤"이라고 말했다.


이해하기 쉬운 앵글 제품, "고객의견이 가장 중요"

흥해앵글의 앵글 선반 제작 방식은 고객 상담과 공간 구조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된다. 가장 적절한 방식을 제시를 하지만 최종 결정은 고객이 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또 앵글에 대한 장단점 등을 최대한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한다. 앵글은 작업장에서 원재료를 공수해 직접 자르거나 가공을 하는 방식이다. 볼트와 너트 방식이 있고, 홈에 끼워맞추는 방식도 있다. 앵글은 주로 베란다, 세탁실, 대피실, 방 안 등에 설치된다. 최근에는 주문고객의 90%가 젊은 여성층일 정도로 대중화되고 있다.

흥해앵글의 철칙 중 하나는 '당일상담 당일제작'이다. 현장에서 실측을 하고 제작과 배송까지 최소 2시간이면 가능하다. 장 대표는 "날짜를 힘들게 잡을 필요도 없어 고객들이 가장 만족스러워하는 부분 중 하나"라고 말했다.

장재성 흥해앵글 대표가 작업실에서 주문 받은 앵글 제품을 제작하고 있다. 김재현 기자

작업복장은 금물, 깔끔한 정장은 트레이드마크

장 대표는 상담을 하러 갈 때 항상 깔끔한 정장 차림으로 방문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와이셔츠와 정장, 2대8 머리는 흥해 지역에서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그는 "말끔한 모습에서부터 고객들의 신뢰가 시작된다고 생각한다"며 "작업복장이 편할 수도 있지만 복장부터 갖추는 것이 고객에 대한 예의"라고 말했다.

흥해앵글은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가 함께 운영하고 있다. 이 때문에 모두가 사장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 더 열심히 하게 된다는 후문이다. 최근에는 입소문을 타면서 주문 건수도 늘어나고 있다. 다음달에는 새로운 공간으로 이사해 작업 환경도 새롭게 꾸밀 계획이다. 사무실은 누구나 편안하게 찾아올 수 있는 카페 같은 환경으로 만들어 누구나 찾아올 수 있도록 해보고 싶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하루를 기분 좋게 바꿀 수 있는 방법 중에 가장 간단한 것은 집안을 정리하는 것이라 생각해요. 정리정돈만 잘 돼 있으면 집안이 휴식 공간이 되는 거죠. 앵글 선반은 그 휴식 공간을 만들어주는 좋은 방법 중 하나입니다."

한국으로 귀국하기 전 일본에서 직장 생활을 할 당시의 모습.

가장 싫어했던 일본에서 첫 직장생활을

지금은 앵글에 푹 빠진 청년사업가지만 그가 처음부터 앵글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회복지시가 되는 것이 꿈인 평범한 사회복지학도였지만, 전공과는 정반대로 첫 직장 생활을 일본에서 시작하는 독특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평소 알고 지내던 한 대학 선배로부터 여성가족부가 주최하는 일본 국제청소년교류프로그램 참가를 권유 받았다. 단순히 이력서 한 줄을 위해 가벼운 마음으로 참가했던 이 프로그램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2016년 전국에 있는 대학생들과 함께 한국 친선대사로서 2주 동안 일본을 누비고 다녔다. 그 곳에서 직접 몸과 피부로 느낀 일본은 뉴스나 소문으로만 듣던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한국과 일본의 수많은 친구들을 사귀게 됐고, 덕분에 지금의 아내도 만날 수 있었다. 일본을 가장 싫어했던 나라로 꼽았던 그의 인식에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그는 프로그램 참가를 마치고, 곧바로 일본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했다. 당시 사용할 수 있는 일본어라곤 간단한 인사말 정도 뿐이었지만, 더 넓은 세상에서 많은 것을 경험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앞섰다.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울릉도에 들어가 산책길 공사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밥 먹고 잠자는 시간만 빼고 일본어 공부에 매진했다. 그가 처음 일본에 갔을 때 할 수 있는 말은 "新宿駅の東口はどこですか(신주쿠역 동쪽 출구는 어디인가요)" 밖에 없었다.

배낭 하나만 메고 일본 간사이 지역을 홀로 한 달 동안 여행하기도 했다. 히치하이킹을 시도 했다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고, 길을 가던 한 할아버지와 2시간이 넘도록 수다를 떨었다. 우연히 동방신기의 일본팬을 만나 함께 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짧은 시간 동안 수많은 추억이 쌓였다.

"어느 책에 이런 말이 있었어요. 인생이 책 한 권이라면, 어떤 나라에서 살아보는 것이 책 한 장과 똑같다구요. 평생 한국에만 있었으면 책 한 장 밖에 읽지 못했겠죠. 더 많은 책장을 넘겨보고 싶었습니다."

한국으로 귀국하기 전 일본에서 직장 생활을 할 당시의 모습.

일본 면세점에서 3년 만에 점장으로 초고속 승진

일본 워킹홀리데이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뒤 가장 먼저 마주친 문제는 '취직'이었다. 일본을 다녀왔지만 주변에서는 전공을 살리는 것이 좋지 않겠다는 반응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조금은 다른 인생을 살아보고 싶었다. 치열한 취직 시장에 바늘 구멍을 뚫기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졸업 후 일본 기업에 27차례나 이력서를 냈지만 모두 낙방했다. 오기가 생겼다. 그렇게 마지막 28번째 합격한 곳이 JTC라는 일본 면세점 기업이었다.

대마도와 키타큐슈, 벳부 지역 면세점 등에서 3년여를 근무했다. 점포와 재고, 직원, 인사 업무 등을 담당했다. 보통 점장 승진까지는 5~7년 정도 걸리지만 그는 좋은 실적을 인정받아 3년 만에 점장으로 파격 승진하는 기록을 세웠다.

"목표를 가지고 일했어요. 3년 안에 점장을 달지 못하면 일을 그만두겠다고 선언까지 했을 정도였으니까요. 흩어져 있던 업무를 한데 모아 매뉴얼화했고, 주인의식이 바탕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본 불매운동과 코로나19, 미증유의 사태가 새로운 기회로

일본 불매운동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직면했다. 관광업과 가장 많이 관련이 있는 면세점 역시 타격을 피해가지 못했다. 현지 매장들의 매출이 반토막이 났고, 회사를 떠나는 직원들도 속출했다. 그도 한국 귀국을 심각하게 고민하며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찰나 고향 포항에서 앵글 사업을 하던 아버지로부터 함께 해보면 어떻겠냐는 조심스러운 제안을 받게 됐다.

"앵글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어요. 아버지 그늘에 묻혀 일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거든요. 며칠 동안 앵글에 대해서 책도 찾아보고 공부하면서 돌아가야겠다고 마음을 굳히게 됐죠."

그렇게 그는 지난해 7월 한국으로 귀국했다. 무작정 한국으로 귀국한 것은 아니었다. 귀국 결정에는 확실한 준비와 용기 2가지가 필요했다. 앵글은 2가지 조건을 충족하는 필수 조건이 됐다. 자신감이 없었다면 돌아오지 않았을거라는 그다. 신종 코로나는 그에게 일종의 터닝 포인트가 됐다.

"저에게 JTC는 가장 감사한 곳이에요. 저를 희생해서라도 함께 가고 싶기도 했어요. 하지만 아내와 부모님,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고, 앵글 역시 좋은 기회라 생각했죠. 그래서 귀국하게 된 겁니다."


"일본도 그저 사람 사는 곳 이더라구요"

일본 생활에 대한 후회는 없었을까. 그는 한일 양국의 감정이 좋지 만은 않은 시기였지만 그 곳 역시 사람 사는 곳이었다고 회상했다. 쉽지 않은 시간도 있었다. 일본의 업무가 전산화 돼 있지 않아 느린 처리 속도에 답답하기도 했고, 외국인에 대한 차별도 있었다. 막상 회사를 그만두고 귀국 준비를 할 때는 허무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한 동안 벳부의 한 카페를 줄기차게 다녔다. 한적하게 카페에 들러 책을 보곤 했다. 그런데 그 카페에 조금 특별한 점이 눈에 들어왔다. 전면 유리로 된 창은 마치 손님들에게 바깥 풍경을 바라봐달라고 만들어놓은 듯 했다. 사람들이 반려견과 산책을 하거나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바쁘게 살다 바라본 그 풍경은 생경하게 다가왔다.

"회사를 그만두고 보니 가지고 나올 수 있는 것은 서류 몇 장이 전부였죠. 허무하기도 했어요. 언제 이런 시간이 또 있을까도 생각했어요. 힘든 시간도 있었지만 그것조차 스스로에겐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장재성 흥해앵글 대표와 가족.

정직과 신뢰, 두 가지가 회사의 신조

흥해앵글의 기본 목표는 정직과 신뢰다. 장 대표는 "자영업자들이 성공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좋은 물건을 싸게 파는 것"이라며 "당장에는 마진이 적을 수 있지만, 신뢰가 쌓인다면 성과는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앞으로는 앵글 제작에 그치지 않고 디자인 인테리어를 더 많이 연구해 차박 제품이나 캣타워 등 흥해앵글만의 특별한 커스텀 앵글 제품을 만들겠다는 각오다. 앵글을 통해 인테리어 디자인 업계에도 새로운 자극제가 되는 것이 앞으로 10년의 목표다. 또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경험과 이야기를 전해줄 수 있는 멘토가 되고 싶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사업도 중요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제 이야기를 공유하고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책상 지식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들도 많잖아요. 단순히 취직이 목표가 아닌, 이런 인생도 있다는 것, 다양한 길이 있다는 것 알려주고 싶어요."

김재현 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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