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썰] 지지율 반토막 난 윤석열, 중립성 걷어차고 '정치 직행'

손원제 2021. 3. 6.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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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유의 현직 검찰총장 '중도 사퇴 및 정치 선언' 논란
지지율 반토막 난 윤석열, 중립성 걷어차고 ‘정치 직행’ 한겨레TV

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사임했습니다. 7월 임기 만료를 4개월 앞두고 전격적으로 사퇴한 겁니다. 그의 사퇴문은 날선 표현들로 가득했습니다. “헌법정신과 법치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며 자신이 몸 담았던 문재인 정부와 여권을 맹비난했습니다. 요 며칠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여권의 ‘중대범죄수사청’ 추진에 대해 “법치 말살”이라고 극단적으로 비난해온 것의 연장선입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사퇴 의사를 밝히고 있다. 한겨레TV

“앞으로 어떤 위치에 있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다”라는 말도 했습니다. 사실상의 정치 선언입니다. 앞으로 보수 야권 소속으로 차기 대선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라고 봅니다.

그렇잖아도 마땅한 차기 대선 주자가 눈에 띄지 않는 보수 야권에선 최근 차기 주자로 윤 총장을 호출하는 목소리가 계속해서 나왔습니다. 윤 총장이 사퇴로 호응한 셈입니다. 자신의 정치적 색깔도 분명히 드러냈다고 봐야 합니다.

윤 총장 사임은 당장 4월7일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습니다. 보수 야권에 유리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데 반드시 그럴 것이라고는 보기 어렵습니다. ‘반문 세력’이 결집하는 만큼, 윤 총장의 정치 행보에 대한 반감이 커진 여권 지지층도 위기감을 갖고 결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검찰 중립’ 내세우다 ‘정계 진출’은 이율배반

윤 총장의 사퇴와 정치 선언이 앞으로 우리 정치 지형에 어떤 변화를 몰고 올지는 시간이 지나면서 가시화할 겁니다. 지금은 먼저 윤 총장이 선보인 이런 식의 정치 행보가 적절한지에 대해 평가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현직 검찰총장이 중도 사퇴하고 정치에 뛰어든 건 우리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아시다시피, 윤 총장은 지난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징계 추진에 반발해 직무배제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습니다. 서울행정법원은 윤 총장의 손을 들어주면서 ‘검찰총장 2년 임기제는 검찰총장을 비롯한 검사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인 만큼 징계 확정 전에 직무배제를 해선 안 된다’는 취지의 결정문을 내놨습니다. 이렇게 정치적 중립성 원칙에 힘입어 자리를 지켜놓고, 정작 자신은 중도 사퇴하면서 정치로 직행한 겁니다. 스스로 중립성의 원칙을 걷어찬 이율배반적 행위라고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사실 윤 총장은 임기 중에도 이미 중립성의 원칙을 저버리고 정치적 행보를 걷는 듯한 모습을 줄곧 드러내왔습니다. 논썰에선 윤 총장이 이른바 ‘살권수’, 살아 있는 권력 수사를 내세워 정권을 대상으로 한 선택적 수사에 집중하며 ‘반문 세력’의 호응을 기대하는 듯한 행보를 보여왔다고 여러차례 지적한 바 있습니다. 최근 윤 총장이 보여온 중수청 반대 움직임 또한 그가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낳았습니다. 결국 윤 총장은 사퇴와 정치 선언으로 이 모든 의구심이 기우가 아니었음을 스스로 입증한 셈이 됐습니다. 현직 검찰총장이 ‘정치적 중립’ 의무를 무시한 끝에 결국 정치로 직행한 것은 그가 이끌던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뿌리째 흔드는 일입니다. 윤 총장이 지휘해온 정권 수사는 물론 중수청 반대 움직임조차 정치적 의도 아래 이뤄진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습니다. 국민은 물론 검찰을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흘 만에 ‘사퇴·정치 선언’…사전 각본 있었나?

윤 총장의 사퇴와 정치 선언은 그가 ‘중수청 반대’를 공개 표명한 지 불과 사흘 만에 나왔습니다. 이 모든 게 ‘정치 직행’을 위해 잘 짜여진 각본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민주당에선 ‘중대범죄수사청’, 중수청을 만들어 검찰의 6개 분야 직접 수사권을 떼내는 ‘기소-수사 분리’ 방안을 ‘검찰개혁 시즌2’의 핵심 입법 과제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특위의 일부 의원들은 3월에 법안을 발의해, 상반기 중 당론으로 국회를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청와대가 ‘속도조절론’을 제기했고, 시민사회와 학계에서도 충분한 검토와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어서 현재로선 좀더 신중하게 추진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바로 이 중수청 설치 방안이 제기되자, 윤 총장은 다급하게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윤 총장은 지난 2월25일 각 지방 검찰청에 중수청에 대한 검사들의 의견을 취합해 보고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런데 미처 의견이 취합되기도 전에 자신이 먼저 치고 나왔습니다. 윤 총장은 지난 2일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중수청 신설은 민주주의의 퇴보이자 70여년 형사사법 시스템을 파괴하는 졸속 입법”이라고 강하게 여권을 공격했습니다. 윤 총장은 “법치 말살” “헌법 정신 파괴” “검찰 해체” 등 현직 검찰총장의 말이 맞나 싶을 정도의 과격한 표현을 서슴없이 쏟아냈습니다. 국회의 입법 사안에 대해 기자회견이나 공식 입장문 발표를 통해 정돈된 의견을 밝힌 게 아니라 특정 언론과의 인터뷰 형식으로 정제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언어로 거칠게 반발한 겁니다.

윤 총장은 3일에도 <중앙일보> 인터뷰를 통해 중수청 반대 입장을 거듭 밝혔습니다. 또 직원 간담회를 위해 대구고검을 방문하는 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의 완전 박탈)은 결국 부패가 마음 놓고 완전히 판치게 하는 소위 ‘부패완판’”이라고 여권에 대한 공격을 이어갔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월18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추미애 법무부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과의 갈등과 관련해 “윤석열 총장에 대한 여러 평가가 있지만,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밝혔다. 한겨레TV

윤 총장은 지난 연말 추미애 법무부 장관 교체와 1월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을 계기로 여론의 관심에서 급격히 밀려났습니다. 당시 문 대통령은 “윤 총장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는 말로 ‘추미애-윤석열 충돌’의 여파를 가라앉혔습니다. 검찰과의 소모적인 충돌을 피하는 동시에 윤 총장도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으로서 중립성을 벗어난 정치적 행보를 걸어선 안 된다는 경고를 함께 보낸 것입니다. 이후 윤 총장의 지지율은 빠지고 존재감 또한 ‘추-윤 충돌’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왜소해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윤 총장의 과격한 발언이 언론 인터뷰로 터져나온 겁니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윤 총장이 다시 전면 등판한 건 무었 때문이었을까요? 두가지 측면을 살펴봐야 합니다.

먼저 ‘검찰주의자’ 총장으로서 중수청에 대한 본인과 검찰 내부의 우려를 전한 측면이 있습니다. 윤 총장을 포함해 검사 대다수는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검찰에 남겨진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산업·대형참사 등 6대 범죄의 직접 수사권까지 중수청으로 넘어가면, 검찰은 영장 청구와 기소권만 가지는 쭉정이 기관으로 전락한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특수통 출신인 윤 총장은 자신의 경험으로 볼 때 지능화·대형화하는 중대 범죄에 대응하려면 수사와 기소가 한몸처럼 움직여야 한다고 믿는 것 같습니다. 이 문제는 앞으로 차분히 논의해서 검찰권력을 분산하면서도 반부패 수사역량을 훼손시키지 않는 최적의 방안을 찾아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윤 총장의 이런 행보를 두고는 특수통 검찰주의자의 입장 표출로만 보기엔 지나친 구석이 적지 않다는 의문이 제기됩니다. 단지 검찰 조직의 수장으로서 ‘중수청 반대’를 표명하는 것이라면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쓰고 법치를 말살” 같은 극단적인 정치적 수사를 쓰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공식적 의견 표명 대신 인터뷰 방식을 택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인터뷰 말미에 “국민들께서 졸속 입법이 이뤄지지 않도록 지켜보시길 부탁드린다”처럼 국민을 언급한 것도 행정부 공직자의 언어로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윤 총장은 행정 책임자 아닙니까? 검찰총장 아닙니까? 그런데 어제 하시는 걸 보면 정치인 같아요. 행정과 정치는 분명히 문화도 다르고 그것을 실행하는 방법이나 내용도 달라야 되는데 마치 정치인이지 이게 그냥 평범한 행정가나 공직자의 발언 같지가 않아요.”(정세균 국무총리 3일 ‘김어준의 뉴스공장’)

윤 총장이 행정부 소속 공직자가 아니라 정치인의 행보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는데요, 결국 윤 총장의 정치 선언으로 이런 의심이 사실일 가능성이 커진 셈입니다.

바람 빠진 지지율, 왜소해진 정치적 존재감

리얼미터가 지난 1월 1~2일 실시한 ‘차기 대선 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윤석열 총장은 30.4%로 오차범위 밖에서 1위를 차지했다. 한겨레TV
지난달 25일 발표된 여론조사(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공동 조사)에서 윤석열 총장의 지지율이 7%까지 추락했다. 한겨레TV

윤 총장의 거친 표현이나 인터뷰라는 방식 못지않게, ‘타이밍’ 또한 윤 총장이 계획된 정치적 행보를 보인 것 아니냐는 의심을 키운 요인입니다.

윤 총장은 ‘추-윤 충돌’ 와중에서 차기 대선 주자로서의 존재감을 드라마틱하게 각인시켰습니다. 그러나 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이후 사회적 관심이 식으면서 정치적 존재감도 쪼그라들었습니다.

리얼미터가 <와이티엔>(YTN)의 의뢰로 지난 1월 1~2일 실시한 차기 대선 주자 선호도 조사(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에서 윤 총장은 30.4%로 오차범위 밖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윤 총장은 30% 안팎의 지지율로 이재명 경기지사, 이낙연 민주당 대표 등을 밀어내고 단독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그러나 두달 만인 3월1일 발표된 리얼미터 조사(95% 신뢰수준에 ±1.9%포인트)에선 이재명 1위(23.6%), 이낙연·윤석열 공동 2위(15.5%)로 나타났습니다. 지지율이 반토막 난 겁니다. 지난달 25일 발표된 조사(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에선 아예 한자릿수인 7%까지 추락했습니다.

윤 총장의 지지율 바람이 빠진 것을 두고, 애초 윤 총장이 ‘추-윤 충돌’ 효과로 ‘반문 진영’의 기대가 모인 ‘반사 이익’을 누린 것에 불과했으며 이제 그 거품이 꺼지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바로 이런 시점에서 윤 총장이 다시 정치적 존재감을 부각시키기 위해 중수청을 고리로 여권과 정면 충돌하는 승부수를 띄운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는 겁니다.

일부에선 윤 총장이 자리에 계속 머물면서 여론전을 이어갈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총장으로서 각종 ‘정권 수사’를 지휘하면서 여권과 강하게 맞서는 게 ‘반문 세력’의 결집을 끌어내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판단할 가능성도 있었다는 겁니다.

그러나 윤 총장은 결국 사퇴를 선택했는데요, 다음과 같은 점을 고려했기 때문일 겁니다. 이미 검사장급과 중간간부 인사까지 이뤄진 상황이고, 정권을 대상으로 한 원전 수사나 울산 선거개입 의혹 수사도 이미 동력이 상당히 떨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등에 대한 김학의 출국금지 관련 의혹도 공수처로 넘겨놓은 상황입니다. 후임 검찰총장으로 거론돼온 이성윤 지검장에게 피의자 낙인을 찍어둔 만큼, 중도 사퇴해도 ‘윤석열 사단’이 당장 불이익을 볼 가능성은 낮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지금 중수청 반대를 명분 삼아 총장직을 사퇴하면서 본격적으로 정치에 나서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커보입니다. 지금 사퇴하면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판도에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보수 야권 입맛에 맞는 선택으로 정치의 첫발을 뗌으로써 이후 보수층의 지지를 확보하는 좋은 기회라고 계산하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윤 총장이 이런 계산을 했더라도, 민심이 과연 그의 기대 대로 움직일까요. ‘반문 세력’이야 일단 결집하겠지만, 중립성을 박찬 검찰총장의 정치 직행을 국민 다수가 용인할지는 미지수입니다. 윤 총장의 행보에 민심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논썰에서 함께 계속 주시하도록 하겠습니다.

자세한 내용, 지금 영상으로 확인하시죠.

기획·출연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연출·편집 조소영 피디 azu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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