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터뷰]'미나리'가 한예리에게 가져다준 특별한 선물

CBS노컷뉴스 최영주 기자 2021. 3. 6.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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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나리'(감독 정이삭) 모니카 역 배우 한예리 ②
영화 '미나리'에서 모니카 역으로 열연한 배우 한예리. 판씨네마㈜ 제공
※ 스포일러 주의

영화 '미나리'(감독 정이삭)는 선댄스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기점으로 최근 제78회 골든글로브 최우수 외국어영화상까지 휩쓸며 전 세계 77관왕을 기록하고 있다. 평단을 사로잡은 '미나리'는 이제 오스카를 노리고 있다. 미국 매체들도 '미나리'를 유력 후보작으로 예측하고 있다.

'미나리'는 희망을 찾아 낯선 미국 땅으로 이민을 선택한 한국인 가족의 따뜻하고 특별한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어찌 보면 평범한 이 영화에 세계가 열광하는 것은 '미나리' 속에 담긴 보편적인 정서 때문이다.

영화에서 엄마 모니카 역을 맡은 배우 한예리는 '가족'이라는 보편적 이야기를 담담하면서도 아름답게 풀어낸 게 '미나리'의 매력이라고 이야기했다. 최근 화상으로 만난 한예리에게서 '미나리'가 가진 특별함에 관해 들어봤다.

영화 '미나리' 스틸컷. 판씨네마㈜ 제공
◇ 덤덤하게, 아름답게, 진실하게 이야기하는 '미나리'

- 한예리씨도 선댄스영화제에서 '미나리'를 처음 보셨나요? 외국 관객들이 그렇게 열광할 거라 예상하셨나요?

"선댄스에서 처음 봤어요. 그때는 진짜 얼떨떨했어요. 배우가 처음 본인 연기를 볼 때는 잘했나 못했나 보느라 집중을 잘 못 해요. 그런데 보다 보니 영화에 빠져들게 되더라고요. 마지막에는 '뭔지 모르겠는데 왜 좋지?' '뭔지 모르겠는데 왜 아름답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는 관객들이 왜 이렇게 열광하는지 잘 알지 못하는 상태로 선댄스가 마무리된 느낌이었죠.

이후 부산국제영화에서 영화를 다시 봤을 때 저도 영화의 좋은 점들이 보이더라고요. 보편적인 이야기를 굉장히 아름답고 담담하게 잘 표현했구나 싶었어요. 이런 점에 많은 분이 사랑해주신 거고, 특히나 미국의 많은 이민 가정에는 이 영화가 본인들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면서 그제야 더 이해가 갔어요."

- 한예리씨께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미나리'에서 발견한 보편적 감성, 그리고 여느 영화와는 달랐던 차별점은 무엇인가요?

"사실 한국에는 '미나리' 같은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많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나리'가 좋은 건 이런 거예요. 자극적이거나 나쁠 수 있는 부분을 더 두드러지게 만드는 건 오히려 쉬운 선택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반대로 굉장히 보편적인 이야기를 강요하지 않고 덤덤하게, 아름답게 그리고 진실하게 표현하는 건 어려운 일이라고 봐요. 그런 부분이 '미나리'의 매우 아름다운 지점이자 큰 힘이고, 많은 분이 '미나리'를 사랑하는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현실이라는 게 녹록지 않고, 많은 사건이 벌어지고, 하루하루를 잘 버텨내기도 힘든 순간들이 많아요. 그럼에도 어떤 부분은 사진처럼 아름다운 구석이 있는 게 인생이 아닌지, 또 뒤돌아서 생각해보면 추억할 만한 것들이 있을 수 있다고 이야기해주는 거 같아요. 이 영화가 그런 부분을 아름답게 표현해줘서 고맙고, 아이작에게도 되게 감사한 부분이에요."

영화 '미나리' 스틸컷. 판씨네마㈜ 제공
◇ 아름답게 꽃피는 순간이 조금 늦게 찾아오기를

- 미국 영화지만 한국어 대사가 대부분을 차지하는데요. 현장에서 연기하면서 한예리씨가 모니카의 대사를 조금 더 자연스럽게 고치거나 의견을 제시한 부분이 있을까요?

"스티븐, 선생님의 대사도 그렇고 저의 대사도 계속 바꿨어요. 번역해준 여울이라는 친구와 함께 해당 장면에 가장 잘 어울릴만한 단어와 문장을 끊임없이 찾고 찾았어요. 신 바이 신으로 굉장히 디테일하게 대사를 잡아가는 과정들이 있었어요.

그리고 엄마가 처음 왔을 때 감탄사를 하는데 '아이고' 등 제가 좀 더 자연스럽게 구사할 수 있도록 의견을 냈죠. 또 감독님께 드린 의견 중에 저와 제이콥이 서로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첫째를 기준으로 '지영 엄마' '지영 아빠'라고 부르자는 거였죠. 저희 엄마 아빠 세대가 그랬던 거로 기억해요. 그때 당시만 해도 '여보'라고도 잘 안 불렀죠.

대신 창고에서 서로를 찾을 때는 '여보'라는 단어로 부르면 좋겠다고 했어요. 한 번도 부르지 않다가 불렀을 때의 특별함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자동차 신에서도 제 대사는 제가 조금 더 편하게, 모니카를 생각하면서 바꿨어요."

영화 '미나리' 스틸컷. 판씨네마㈜ 제공
- 대선배인 윤여정씨와의 호흡은 어떠셨나요? 함께하면서 어떤 영향을 받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선생님은 이미 레전드이기 때문에 호흡의 문제는 전혀 없었어요. 그리고 연기할 때는 선생님과 같이 호흡해 나가야 하는 상태라 선생님의 연기를 관찰할 수 없었죠. 그래서 오히려 조금 떨어져서 연기가 끝나고 숙소에 왔을 때 선생님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선생님이 그 연세에 타지에 홀로 일을 하러 오신 게 되게 큰 용기라 생각해요. 저도 그런 모습을 보면서 용기 내야겠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어요. 그리고 이 나이 될 때까지도 일하고, 많은 사람이 찾아주는 배우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선생님을 보면서 많이 했어요.

선생님만의 고유한 색깔이 있기에 아직도 많은 감독님이 선생님께 러브콜하는구나, 그렇다면 내가 가진 나의 고유한 것은 무엇일까 많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선생님의 유머 감각은 사실 배울 수가 없어요. 타고난 거니까요. 그런 부분에서 저는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생각해요.(웃음)

진짜 선생님의 연기가 끝나고 난 뒤 모습들을 보면서 더 많은 감명을 받았어요. 나의 어떤 좋은 순간들이 있다면, 제가 가장 아름답게 꽃피는 순간들이나 뭔가 영광의 순간들이 있다면 좀 늦었으면 좋겠다, 좀 더 나중에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선생님만큼의 여유가 있으면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영화 '미나리'에서 모니카 역으로 열연한 배우 한예리. 판씨네마㈜ 제공
◇ 가족을 만나고, 사람을 만나게 해준 '미나리'

- '미나리'를 찍으면서 부모님과 가족에 관해 생각하는 시간도 많았을 거 같습니다. 그리고 그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봤을 거 같은데요. 어떠셨나요?

"'미나리'를 찍고 와서 제가 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를 찍게 됐어요. 신기하다고 생각했죠. 가족에 대한 일들이 계속 있어서 뭐지 싶었어요.

아무래도 부모님 세대를 좀 더 이해하게 됐어요. 일찍 결혼하고 우리 세대보다 이른 나이에 부모가 된 경우가 많잖아요. 꿈을 인정받기도 전에 가정을 이루며 살다 보니 본인들의 성장, 꿈, 자아실현에 대한 것과 아이들을 키우는 것, 아이들의 성장과 같은 부분이 계속 부딪혔을 거 같아요. 부딪힐 수밖에 없는 거죠.

부모의 성장통을 아이들이 겪게 되고, 아이의 성장통 또한 부모가 겪게 되는 쉽지 않은 상황 속에서 내가 자랐었구나 생각했죠. 그들은 그렇게 아이를 길러냈구나, 대단하다, 쉽지 않았겠구나 한 거죠. 정말 지금까지 이렇게 잘 길러주신 것도 감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분들의 희생이 없었으면 이렇게 자라지 못했을 거예요.

그리고 가족의 의미라…. 가족이란 피를 나눴기에 당연한 것처럼 함께 지내고 함께 살고 있지만, 끝까지 숙제처럼 소통하고 노력해야 하는 관계인 거 같아요. 당연하게 만들어졌지만,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관계가 가족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영화 '미나리' 스틸컷. 판씨네마㈜ 제공
- '미나리'가 한예리씨에게 '특별한 영화'라고 하셨는데요. 어떤 의미인가요?

"감독님을 비롯한 선생님, 스티븐, 아이들, 감독님을 도와주러 온 많은 분, 그리고 우리를 도와주러 온 인아 언니, 여울 양 등 다들 되게 좋은 에너지를 갖고 있었어요. 사람을 사랑하고 영화를 사랑하는 그들의 큰마음을 봤어요. 저도 그런 좋은 에너지를 많이 받고 큰 영향을 받았어요. 이 영화로 인해서 굉장히 좋은 일도 많았지만, 저한테는 사람을 얻은 게 가장 큰 행운이에요. 그게 제게 가장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해요."(웃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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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최영주 기자] zoo719@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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