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인가 사고인가.. 국내 산업현장 '초비상'

권가림 기자 2021. 3. 6.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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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년 12월25일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 일어난 폭발 사고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경찰, 소방, 고용노동부 조사 요원들이 사고 현장으로 진입하고 있다. /사진=뉴스1


①시설 노후화·외주화·안전 시스템의 부재 



# ‘쾅!’ 크리스마스이브인 2019년 12월24일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선 굉음과 함께 검은 연기가 수십미터 상공까지 솟구쳤다. 페로망간공장(철과 망간을 조합해 쇳물 성분을 조절하는 부재료 생산시설) 옆 시험발전 설비에서 5분 간격으로 두차례 폭발이 일어나면서다. 지름 1m짜리 부속품 등 잔해가 공장 인근 이순신대교까지 날아가 교통이 마비됐다. 매년 발생하는 제철소의 폭발사고에 지역 주민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 지난해 8월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5만톤급 유조선의 청수탱크(물탱크)에 화재가 발생했다. 유증기에 의해서다. 이 사고로 탱크 내부 밀폐공간에서 페인트칠 작업을 하던 하청업체 직원 1명이 숨졌다. 현장 직원들은 “예고된 인재”라고 입을 모은다. 2017년 골리앗 크레인과 타워크레인이 충돌해 하청노동자 6명이 숨지고 25명이 크게 다쳤던 당시 고용노동부는 ‘밀폐구역 폭발 위험 없는 환기팬·조명등·전기설비 설치’ ‘밀폐구역 작업 시작 전·중 산소농도 측정’ 등 폭발사고 관련 위반사항을 적발했지만 후속조치가 이뤄지지 않아 발생했다. 

현대重 5년 연속 산재 사망자 발생 

제조업 가운데 조선과 철강업은 건설 다음으로 사고사망자 수가 많이 발생하는 업종으로 꼽힌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조선산업 사업장 수는 7351개, 근로자 수는 14만3999명이다. 2018년~2020년 9월 업무상 사고 사망자 수는 58명이다. 지난해 기준 조선산업 업무상 사고 재해율은 0.67%로 제조업 평균 업무상 사고 재해율(0.59%)보다 높았다.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 국내 조선 3사를 비교해 보면 현대중공업의 사망사고 비중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중공업에선 ▲2016년 5명 ▲2017년 2명 ▲2018년 3명 ▲2019년 3명 ▲2020년 4명의 직원이 근무 중 사망하면서 ‘5년 연속 산재 사망자 발생 사업장’이란 오명을 얻었다. 

현대중공업 노동자의 산재 신청 건수는 2016년 297건에서 지난해 653건으로 크게 늘었다. 지난해 발생한 사고를 살펴보면 추락·협착·과로사 등 중대재해 현장에서 발생하는 모든 종류의 산업재해가 복합적으로 발생했다. 

지난해 2월엔 하청업체 근로자가 액화천연가스(LNG)선 탱크 내 작업용 발판 구조물을 작업하던 중 21m 높이에서 추락해 숨졌다. 같은해 4월엔 일주일 새 2명의 근로자가 산업재해로 소중한 목숨을 잃었다. 5월에도 하청업체 근로자가 용접 가스에 질식해 사망했다. 

지난해 삼성중공업에선 사망사고 1건이 발생했고 대우조선해양은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대우조선은 현재 산업은행의 관리·감독 아래에 있다”며 “대우조선에 안전문제가 생기면 정부가 질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다른 민간기업보다 안전에 더 신경을 쓰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사망사고 다음날 또 쓰러진 근로자 

철강업계에서도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최근 3년 동안 업계 1위 포스코에선 19건의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해에만 6명의 근로자가 숨졌다. 지난해 7월 광양제철소 직원이 코크스 공정 설비 점검 중 숨진 데 이어 11월 광양제철소 배관 폭발로 직원 1명과 협력사 직원 2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12월에도 협력업체 직원이 집진기 배관 공사 중 5m 아래로 추락한 후 숨졌다. 25톤 덤프트럭에 깔려 직원이 숨지는 사고도 같은달 발생했다. 

동국제강 부산공장에서도 유압기를 수리하던 직원 1명이 1월 사망했다. 

올해 들어서도 연초부터 조선소와 제철소에서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1월 동국제강 포항공장에서 식자재 납품업자가 화물 엘리베이터에 끼여 숨진 데 이어 부산공장에서도 6.3톤 코일에 끼인 직원이 사망했다.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도 협착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2월5일 현대중공업에서 발생한 사고 역시 협착사고다. 선박 구조물(블록) 지지용 받침대 위에 놓인 철판 위치를 조정하던 직원은 흘러내린 철판에 끼어 목숨을 잃었다.

‘노동집약’ 조선·철강 외주 비중 2배 

조선소와 제철소에서 대형 사고가 빈발하는 원인으론 ▲시설 노후화 ▲하청·재하청 구조 ▲종합적 사고 대응 시스템의 부재 등이 지적된다. 

주요 조선소와 제철소는 설립된 지 40년 이상이 지났다. 하지만 크레인 등과 같은 중후장대한 시설은 교체 주기가 길어 중간 유지보수 작업을 통해 사용하고 있다. 

아울러 조선과 철강은 노동집약 산업으로 사내하청이나 외주업체의 사용비율이 높다. 조선소와 제철소의 외주 근로자는 직영 생산직의 약 2배다. 이들은 주로 도장작업 등 위험성이 높은 업무를 맡는다. 그만큼 하청업체에 대한 안전 관리가 필수다.

하지만 원청은 안전관리 등 핵심 업무를 하청업체에 떠넘기거나 현장의 위험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하청업체도 안전사항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적은 인력으로 단시간 내 작업을 마무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주변이 온통 쇠고 철판 등 위험 시설물을 옮겨야 해 다른 업종보다 작업환경이 위험하다”며 “기계 자동화도 아직 갈 길이 멀다. 용접의 경우 기계가 직선 용접은 수행하지만 곡선 용접까진 응용하지 못하고 있다. 큰 구조물을 만드는 만큼 자동화 개발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월5일 울산시 동구 현대중공업에서 40대 근로자가 철판에 머리를 다쳐 사망해 노사 관계자들이 사고 현장을 확인하고 있다. /사진=현대중공업 노조


②안전대책·투자 내놓지만… 수년째 겉돌기만 



“안전을 최우선 핵심가치로 철저히 시행해야 한다.” (최정우 포스코 회장)
“안전은 우리에게 선택이 아닌 필수사항이 됐고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최근 중요한 키워드가 됐다.” (안동일 현대제철 사장)
“올해도 사고 예방을 위한 안전문화 정착에 최선을 다하겠다.” (한영석 현대중공업 사장) 

‘안전’은 올해 주요 조선·철강업계가 신년사에서 강조한 공통 키워드다. ESG경영이 기업 이미지 제고와 수주 경쟁력 향상을 위한 핵심 전략이 된 가운데 이르면 내년부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근로자 50인 이상 기업에 적용되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은 안전경영을 강화하기 위해 향후 3년간 총 3000억원을 투자한다. 안전인증기관·교수 등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안전혁신자문위원단을 확대 개편해 안전 시스템을 점검할 계획이다. 근로자가 작업장에서 위험요소를 발견하면 즉시 작업을 중지할 수 있도록 전 작업자에게 ‘안전개선요구권’도 부여했다. 아울러 현대중공업은 안전위기관리팀을 신설해 작업장에서 상시 점검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 문제점을 조기 발견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포스코는 작업환경 개선에 1조원을 투자한다. 이와 별개로 포스코는 지난 2018년부터 3년 동안 중대 재해 발생 가능 장소·시설물의 안전장치 보완 등 안전 분야에 1조1050억원을 투자해왔다고 밝혔다. 포스코는 안전관리요원도 2배 늘리고 철강부문장을 단장으로 한 비상 안전방재 개선단을 운영한다. 이 밖에 ▲노후·부식 대형 배관과 크레인·컨베이어벨트 등 대형 설비의 전면 신예화 ▲구조물 안전화를 위한 콘크리트·철골 구조물 신규 설치 및 보강 ▲제철소 공정위험관리 전문가 300명 육성 등도 실시한다. 

“근로자 떠넘기기 대책” VS “시설투자만 답이 아냐”

기업들은 지난 수년간 이 같은 안전 대책과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있지만 현장에선 “큰 변화는 없었다”고 토로한다.

현장에서 가장 크게 바뀐 것은 ‘CCTV 추가 설치’라고 한다. 포스코 노조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현재까지 광양·포항제철소에 약 6202대의 CCTV가 추가 설치됐다”며 “금액을 단순 계산해보니 25억원 상당이었다. 작업장 내 조명 등 기본 안전장치 개선도 시급한데 사고 발생 시 책임 규명을 하기 위해 카메라 설치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고 설명했다.

포스코가 윤미향 의원(더불어민주당·비례대표)에게 제출한 ‘2018~2020년 포스코 현장 안전 작업환경 개선 예산 집행 내역서’에 따르면 ▲포항제철 제강부 4연주 운전실 내 휴게공간 마련에 20억원 ▲수작업 공정의 자동화 설비 설치에 8억원 ▲후판부 1후판 냉각대 냉풍기 설치에 2억원 등을 사용했다. 

윤 의원실 관계자는 “포스코는 작업환경 개선에 1조원, 안전시설 개선에 1조원을 각각 투자하기로 했지만 안전시설 개선 관련 투자 내역은 포스코 측에서 공개하고 있지 않다”며 “작업환경개선 투자도 기존에 지급했던 마스크와 귀덮개 구매 등을 비용으로 넣어 산출한 것이라고 노조에게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 2019년 7월1일 포스코 광양재철소 1코크스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사진=뉴스1
기업이 내놓은 대책이 현장과 동떨어지거나 직원에게 책임을 전가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대중공업 노조 관계자는 “작업중지권 이행을 강조하지만 이는 본래 산업안전보건법을 통해 이미 보장된 내용”이라며 “안전관리감독도 전문성이 있는 인력이 아니어서 지적만 할 뿐 대책 마련은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정부의 특별감독도 대안이 안 된다. 대우조선해양 노조 관계자는 “고용부의 현장감독은 미리 고지되기 때문에 불안한 설비 등을 숨기거나 직원이 감독자를 둘러싸 이를 못보게 한다”며 “감독도 사고가 발생한 후에야 실행되는 데다 감독관의 전문성이 떨어져 수박겉핥기 식 관리에 그친다”고 꼬집었다. 

기업들은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란 입장이다. 안전 관련 투자를 하고 있지만 현장 직원이 안전을 준수하지 않으면 잠깐 사이에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한영석 현대중공업 사장은 “사고가 일어나는 유형을 보니 실직적으로 불안전한 (작업장) 상태와 작업자의 행동에 의해 많이 일어난다”며 “불안전한 상태는 안전 투자를 해서 개선할 수 있지만 불안전한 행동은 상당히 어렵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당장 생산직 중 60%에 이르는 하청업체를 직고용으로 바꾸기도 어렵다. 조선은 비용에서 인건비 비중만 20%에 달한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수주가 적을 때도 많을 때도 있어 외주가 많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가뜩이나 수주도 불안정한데 인건비를 늘리고 이익을 줄이면 입찰 시 경쟁력이 악화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기업-현장 목소리 교류 우선돼야 

안전 대책 마련에 현장 근로자의 참여가 활성화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각 기업이 안전 태스크포스(TF) 팀을 꾸려 투자와 대책을 설계하지만 여기에 정작 현장직의 참여가 빠져 있다는 지적이다. 
최정우 포스코 회장과 안동일 현대제철 사장, 한영석 현대중공업 사장의 2020년 신년사. /그래픽=김은옥 기자
정부의 전문성부터 키워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는 “선진국 법과 비교해 국내 산안법상 도급인의 의무는 도급인에게 어떤 조치를 해야 할지에 대한 행동기준을 전혀 제시해 주고 있지 못해 실효성과 규범성이 크게 떨어진다”며 “그런데도 정부와 정치권은 어떤 문제가 있는지 인식조차 없다”고 말했다. 

이어 “사고가 발생하면 기업에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대책을 내놓으라고 지시하니 당연히 실효성 없는 대책이 나올 수밖에 없다”며 “정부부터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과 현장 상황을 분석해 ‘사후처벌’이 아닌 ‘예방’을 위한 법·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기업이 공사의 공기 기간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병두 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부장은 “선박이나 제품을 제작할 때 적정 공기가 확보돼야 야간작업이나 돌발작업 등이 줄어든다”며 “공기 기간이 늘어나면 결국 제품에 가격이 전가될 수 있다. 소비자가 비용을 더 지불하더라도 근로자 안전이 우선이란 사회적 공감도 필요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근로자에게도 회사의 안전체계 주체가 우리란 인식이 확보돼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최고경영자의 ‘생산보다 안전’이란 철학이 중요하다. 회사 구성원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경영자도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포스코 노조 관계자는 “원가절감이 인건비에서 시작되는데 공기 확보를 위해선 인원 충원이 현실적 대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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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가림 기자 hidde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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