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황금빛 수도꼭지’ 가덕도

박주영 부산취재본부장 2021. 3. 6.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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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부가 가덕도신공항을 만드는데 최대 28조 6000억원의 사업비가 들 것으로 추정해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2021년 2월 24일 오후 부산 강서구 가덕도 대항항 상공에서 드론을 이용해 360도 파노라마 사진으로 찍은 가덕도의 모습/김동환 기자

좀 오래된 우스갯소리다. 40여년 전 아프리카 A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얘기다. 당시 북한과 외교 경쟁을 벌이던 우리 정부는 제3세계에 영향력이 큰 A 대통령에게 무척 공을 들였다고 한다. 최고급 숙소와 산해진미로 ‘국빈 대접’을 했다. 국민을 사랑했던 A 대통령은 귀국하면서 묵었던 호텔 욕실의 ‘황금빛 수도꼭지’를 가져갔다고 한다. 흙탕물 마시고 배탈 나서 고생하는 국민을 구해줄 수도꼭지가 탐났다는 것이다. 대통령궁에 도착한 A 대통령이 수도꼭지를 설치했지만, 맑고 깨끗한 물은 ‘당연히’ 나오지 않았다.

상수도는 수도꼭지가 아니라 시스템이다. 맑은 물을 공급하는 수원(水源)이 있어야 하고, 수도꼭지까지 물을 공급할 관로(管路)가 필요하다. 사회간접자본(SOC)도 같은 이치다. 공항이나 항만은 수도꼭지, 도로와 철도, 지하철은 관로, 인구와 산업은 수원에 해당한다.

최근 신공항 예정지로 논란의 중심이 된 가덕도는 부산 서쪽 끝에 있는 섬이다. 면적 21㎢, 남북으로 9~10㎞가량 길게 뻗어 있는데 신공항은 그 남쪽 끝에 지어진다. 섬 전역이 산지이고 일부 평지에 마을이 있다. 이런 지형과 지리적 특성 탓에 거주자는 1500여 가구, 3600여 명에 불과하다. 주변 자연환경은 ‘해금강급’이다. 부산 강서구의 ‘강서 8경(景)’ 중 두 곳이 가덕도에 있다.

현재 가덕도 길은 대개 좁은 지방도, 소로(小路)다. 육지인 강서구 송정동과 섬을 잇는 통로는 왕복 4차로 가덕대교 하나다. 거가대교와 이어지는 접속도로가 거의 유일한 대로(大路)다. 앞으로 신공항 진출입도로(1.42㎞)는 이 접속도로 중 천성 IC와 이어져 외부와 연결된다. 철도망도 경전선(밀양~광주)이나 마산~부전선에서 빠져나온 가덕도 북쪽 끝 부산신항 남컨테이너 부두 배후 철도를 신공항과 연결하는 노선(6㎞)만 계획돼 있다. 부산시가 추정하는 연간 3800만명이 드나들 ‘제2 관문공항’ 관로로선 너무 옹색하다. 바다와 강으로 둘러싸여 있고, 산지가 즐비한 가덕도에 도로와 지하철, 철도와 KTX 등을 더 촘촘히 깔려면 공사비는 엄청나게 늘어날 것이다. 천혜의 자연환경 훼손 논란도 거세게 일어날 것이다.

인구와 산업은 어떨까? 대구통합신공항이나 새만금신공항 등이 생기면 가덕도 신공항의 잠재적 이용객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가덕도 주변에는 조선·자동차·기계 등 ‘항만형 중후장대 산업’이 밀집해 있지만, 삼성전자·구글·애플 같은 IT업체나 화이자·모더나 같은 바이오 기업 등 ‘공항형 경박단소 산업 생태계’는 미미하다.

결국 7조5000억원(부산시 추산)짜리 ‘황금빛 수도꼭지’를 설치해도 수돗물이 ‘콸콸’ 쏟아지기는커녕 낭패를 볼 수 있다. 몇 년 후 이 사달이 벌어지면 피해는 누가 입고, 책임은 누가 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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