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희의 영화 같은 하루] [8] 한 명만 더 구하게 하소서

황석희 영화 번역가 2021. 3. 6.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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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p me get one more
영화 '핵소 고지'(Hacksaw Ridge·2016). 감독 멜 깁슨.

1945년, 미군과 일본군의 격전이 이어지던 오키나와 우라소에 부근 핵소 고지(Hacksaw Ridge). 위생병 데즈먼드 도스 이등병은 소총 한 자루 없이 전장을 누비며 부상병들을 찾는다. 그러고는 부상병들을 끌고 와 활톱처럼 깎아지른 듯 가파른 절벽에서 밧줄로 묶어 한 명씩 내린다. 이렇게 혼자서 구해낸 부상병이 자그마치 75명. 더 놀라운 것은 적군 부상자까지 치료해 절벽 밑으로 내렸다는 것이다. 영화 ‘핵소 고지'(2016)의 한 장면이다.

영화적 과장이 지나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지만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게다가 관객들이 비현실적이라며 믿지 못할 것을 우려하여 오히려 데즈먼드의 활약을 실제보다 축소했다.

데즈먼드는 안식교인의 의무이자 살인에 반대하는 개인적 신념을 들어 집총을 거부하고 의무병으로 자원한 병사였다. 집총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훈련 내내 전우들의 비아냥과 괴롭힘을 견뎌야 했지만 정작 전장에서 가장 큰 용기로 그 전우들 목숨을 구한 것은 데즈먼드였다.

“이상은 평화롭지만, 역사는 폭력적이지(Ideals are peaceful, history is violent).”

영화 ‘퓨리'(Fury·2014)에서 워대디가 한 대사로, 앳돼 보이는 독일군을 공격하지 못해 아군을 죽게 한 노먼에게 한 말이다. 역사는 폭력적이고 그 폭력을 주도하는 것은 전쟁이다. 피 튀기는 전장에서 이상이란 것은 이렇게 허울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영화조차 이러할진대 현실의 데즈먼드는 그 폭력적 역사의 한복판에서 자신의 이상을 지켜냈으니 그야말로 비현실적인 인물이다. 때로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도 있는 법이다.

데즈먼드는 한 명을 치료해 절벽 밑으로 내린 후, 도망치고 싶은 다리를 붙들고 포화가 쏟아지는 전장으로 다시 뛰어들며 되뇐다.

“한 명만…. 한 명만 더 구하게 하소서(One more…. Help me get one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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