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의 벽돌책] 오늘날을 만든 네 개의 사상
요즘 안토니오 그람시의 말을 자주 떠올린다. 낡은 것은 죽어 가는데 새로운 것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을 때가 위기이며, 그때 병적 징후가 다양하게 나타난다고. 지금이 그런 때 아닌가 생각한다. 한국도, 세계도.
죽어 가는 낡은 ‘것’은 무엇이고, 우리가 맞아야 할 새‘것’은 어떤 모습일까, 막연하게 상상만 한다. 여기서 ‘것’은 단순히 법률이나 제도, 문화를 가리키는 말이 아닌 듯하다. 어떤 사상, 최소한 치밀한 담론 정도는 돼야 하지 싶다. 그런 고민을 하던 중에 732쪽짜리 벽돌 책 ‘현대의 탄생’(책세상)을 만났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단히 흡족한 독서였다. 그 만족의 상당 부분은 명쾌함에서 왔다. 박학다식한 두 저자, 스콧 L. 몽고메리와 대니얼 치롯은 현대가 네 가지 사상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 마르크스주의, 진화론, 그리고 현대 민주주의. 오늘날 세계 질서를 구성하는 심오한 신념 체계들이다.
이 생각들은 모두 근대의 발명품으로, 탄생부터 지금까지 여러 학파를 낳았고 상충되는 해석이 있어 왔다. 내적 한계나 모순도 있었고 악용되기도 했고 때로 끔찍한 부작용도 일으켰다. 저자들은 1부에서 애덤 스미스, 칼 마르크스 등 사상의 창시자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삶과 야심, 본래의 텍스트, 이후의 영향과 비판점을 살핀다.
이 사상들은 이제 ‘낡은 것’일까? 책의 2부는 이런 계몽주의적 자유주의 기획에 반발했거나 현재 충돌 중인 반동 사상들을 다룬다. 파시즘, 내셔널리즘, 근본주의 종교 등이다. 그런데 그 뿌리와 철학적 근거를 살필수록 이 반계몽주의 사상들이 ‘새것’이 될 수 없음은 명확해진다.
결론에서 책은 인문학이 왜 중요한지를 강조하는데, 여태껏 수없이 들어온 같은 내용의 주장 가운데 가장 설득력 있었다. 우리에게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는 사상들의 근거와 배경을 공부해야 그걸 비판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고, 세계의 많은 부분을 비로소 제대로 이해하게 된다. 저자들은 종종 이성을 악의 원천쯤으로 여기고 계몽주의를 거부하려는 듯 보이는 최근 인문학의 경향에 대해서도 짧지만 쓰게 한 소리 한다. 장강명·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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