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참여소득제'에 주목하자

홍기빈 정치경제학자 2021. 3. 6.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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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재난지원금 지급을 거치면서 기본소득이라는 정책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은 것이 되었다. 그런데 기본소득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이들도 그 정책의 파격적인 상상력에 주춤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무엇보다도 아무 대가 없이 지급한다는 ‘무조건성’이라는 기본소득 원칙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고 보인다. 이런 이들에게 기본소득과 무척 닮아있지만, 이 ‘무조건성’의 원칙 대신 ‘사회적 가치를 갖는 활동’이라는 조건을 내건 참여소득제의 개념에 관심을 갖도록 권하고자 한다.

홍기빈 정치경제학자

참여소득제는 기본소득과 대단히 중요한 전제를 공유하고 있다. 아직도 경제학의 금과옥조처럼 돼 있는 ‘완전고용’이라는 것이 사실상 만성적 대량 실업과 극심한 소득 부족으로 대체되어버린 21세기의 현실에서, 사람들의 소득 원천을 노동시장에만 맡겨둘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시장에서 일시적으로 배제된 이들의 소득을 보조하는 기존의 ‘잔여적 복지’를 과감히 넘어서서 노동시장에서 고용되지 않은 이들도 최소한의 소득을 얻을 수 있는 사회의 보장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선 두 정책이 지향하는 바가 일치한다.

하지만 참여소득제는 그 대가로 소득을 얻는 이들이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는 활동을 해야 한다는 의무를 부과한다. 참여소득을 얻기 위해서는 돌봄, 학습, 마을공동체 기여, 생태위기를 경감시키는 활동같이 사회적으로 가치 있다고 인정되는 활동을 해야만 한다. 그냥 무작정 주는 돈은 아니라는 것이다.

최초에 이 개념을 세상에 제기했던 이는 지금은 고인이 된 영국의 사회정책 연구 대가 리처드 앳킨스였다. 1996년에 발표한 글에서 그는 기본소득의 개념과 방향에 크게 공감하지만, ‘모든 이들에게 무조건 돈을 퍼준다’는 생각에 대해 대중들의 반감이 거셀 것이며 이 때문에 정치적으로 순탄히 용납되기 힘들 것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이러한 정치적 난점을 최대한 넘어서면서 기본소득 정책에 접근하기 위한 일종의 중간적 형태로서 참여소득을 이야기했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참여소득은 기본소득으로 가는 매개물을 넘어서 그 자체로 독자적인 의미를 갖는 정책일 뿐만 아니라, 그 근간을 이루는 상상력에 있어서 기본소득과 결정적인 차이를 갖는다는 점에 최근의 연구자들은 착목하고 있다.

첫째, 참여소득은 시장가격으로 나타나는 시장가치를 넘어서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활동의 대가라는 독자적 근거를 갖기 시작했다. 세상엔 사회적으로는 너무나 소중하고 가치있는 재화와 서비스이지만 시장가격으로는 전혀 반영되지 않는 것이 많다. 폐지 줍는 어르신들이 창출하는 가치가 과연 고물상 주인들이 내어주는 1000원짜리 몇 장뿐일까? 그 액수는 고물상 주인의 영리 활동의 비용 계산에서 나온 것일 뿐, 어르신들 덕에 깨끗해진 동네 환경과 노인 문제 완화 등의 사회적 가치는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 내 숙모님께서는 거동을 전혀 못하는 시어머니의 배설물 처리부터 식사 후 커피 한잔까지 정말로 알뜰하게 돌보셨다. 동네의 목사님들과 스님들 중에는 엇나가기 십상인 청소년들을 붙잡고 좋은 길로 인도하려고 불철주야 애쓰는 분들이 많다. 이러한 활동이 시장에서 가격으로 가치가 계산되지 않지만, 우리 세상이 굴러가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될 너무나 소중한 사회적 가치임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참여소득은 바로 이러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활동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기본소득은 그 밑에 자유지상주의라고 불리는 개인주의 가치관을 깔고 있는 반면, 참여소득은 개인이 아닌 ‘사회’라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기본소득은 국가와 사회가 모든 개개인에게 일정한 소득을 ‘무조건적’으로 주는 책임을 이야기할 뿐, 그 돈을 개인들이 어떻게 쓰고 활용하는지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개인의 재량에 맡기자고 한다. 반면 참여소득은 어떤 활동이 사회적으로 유용한 것인지 또 그 활동의 가치, 즉 참여소득의 액수를 어떻게 계산할 것인지 제반의 문제를 사회라는 실체가 결정할 문제라고 본다.

백신 접종이 시작됐지만, 코로나19로 망가진 노동시장과 경제가 언제 회복될지는 기약이 없다. 그리고 2019년 상태도 사실 그닥 좋은 것이 아니었다. 대안적인 사회정책과 노동시장 정책의 논의가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다. 기본소득, 고용보장제, 참여소득, 사회연대경제 등 새로운 선택지가 다양하게 열리고 있다. 기본소득에 회의적인 분들은 참여소득에 관심을 가져보시기를 강력히 권하고 싶다.

홍기빈 정치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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