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와 성찰] 우리는 서로의 스승입니다

금강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2021. 3. 6.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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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돌아가신 큰스님과 행동이 같아”
어릴 적 들은 말이 큰 울림이 돼
티베트 스님들이 환생한 스승 찾아
번갈아가며 가르침을 주고받듯
가까이 있는 사람이 곧 나의 스승

예전 스님들은 겨울 동안거 공부 기간을 마치면 철새들처럼 여름 하안거 때 살 곳을 찾아 이동을 합니다.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마을사람들을 만나 여러 근심걱정도 들어주고, 가족들이나 마을의 크고 작은 일들을 상담하고 지혜를 전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눈에 띄는 특출한 아이를 만나면 다음 세대의 스승을 만들기 위해 부모의 허락을 받고 산으로 데려가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금강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어릴 적 시골집에 한 스님이 찾아와 탁발하고 가면서 제 부모님께 한마디 툭 던지고는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몇 해 전 큰스님이 돌아가셨는데 이 아이 하는 행동이 똑같습니다.” 귓등으로 들은 한마디가 내 삶을 고귀하게 생각하는 오랫동안의 울림이었습니다. 절집에 와서 보니 나와 같이 탁발승들에게 세속수명이 짧다거나 하는 말을 듣고 어린 나이에 입산한 스님이 몇 분 있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하늘길이 끊어지기 전에는 매년 인도의 다람살라를 찾아갔습니다. 달라이라마의 법문을 듣기 위해서입니다. “나도 공부합니다. 반야심경의 공(空)을 공부하기 위해 40년을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이 경전은 스승으로부터 배웠습니다.” 바로 옆에는 공교롭게도 환생한 마흔살의 링린포체가 나와 함께 법문을 듣고 있었습니다. 전생의 링린포체는 14대 달라이라마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스승입니다. 35년 전 다섯살이던 환생 링린포체를 한국에서 만난 적이 있었는데 이제 의젓한 스승의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서로 번갈아가면서 한생의 스승을 이어받고 있는 장면에서 묘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티베트 스님들이 환생한 달라이라마를 찾거나 린포체(라마의 전생)를 찾는 행위와 우리네 눈 밝은 스님들이 마을에서 탁발하며 인재를 찾는 모습이 닮았습니다. 다음 세대를 맡길 훌륭한 스승들을 찾는 행위입니다.

나에게도 나를 떠나서 나를 볼 수 있는 계기가 있었습니다. 스님들과 함께 선원에서 참선할 때의 일입니다. 내가 내 안에 갇혀 있을 때는 20명 가운데 부러움의 대상도 있고, 닮고 싶은 대상도, 싫어하는 대상도, 눈에 들어오지 않은 대상도 있었습니다. 문득 내가 만든 나의 관념을 떠나니 하나하나의 사람과 사물이 있는 그대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관념에 의지하는 것이 떨어지고, 서로의 연관성을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가까이 있는 사람이 스승임을 알아차렸습니다.

10년 전 틱낫한 스님으로부터 특별한 당부를 받았습니다. “일주일에 하루는 게으른 날을 만드세요. 그리고 함께 일을 나눌 수 있는 스승들을 찾는 일도 중요합니다.” 누군가 부탁하면 거절 못하는 성격과 약속을 생명처럼 여기는 마음에 혼자서 동분서주하던 때였습니다.

입산출가를 하면 개인의 삶에서 벗어나 세상 사람들에게 자비행을 해야 하는 공적인 삶으로 바뀝니다. 개인의 삶에서 공적인 삶으로 폭이 넓어질수록 그 사회는 사려 깊고 건강한 사회가 됩니다. 나의 부지런한 행동이 세상을 좀 더 밝게 하는 노력이라고 자조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점점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들보다 고통스럽게 삶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삶의 가치를 올바르게 인도하는 사회적 스승의 부재에서 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스승을 찾고 만드는 사회적 시스템이 갖추어진다면 인간의 존엄도, 행복하고 활발한 삶도 회복될 것입니다.

격동하는 21세기, 변화도 많고 정보도 많고 욕망을 유혹하는 것도 많습니다. 동경 대상이 없어진, 스승이 없는 시대는 암흑과도 같습니다. 지금까지 인류 역사는 지혜로운 선각자들에 의해 향상된 길을 걸었습니다. 스승을 만드는 그룹들이 생겨나고, 서로가 서로의 스승이 되도록 보살피면 좋겠습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스승 아닌 사람이 없고, 우리는 서로의 스승입니다.

금강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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