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의 미술소환] 기술복제 시대의 복제 불가능성

김지연 전시기획자·d/p 디렉터 2021. 3. 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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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비플, Everydays: The First 5000Days, 2021, 21,069×21,069pixels(319,168,313bytes)

세상이 내가 모르는 방식으로 바뀌는 것은 흥미진진한 만큼 두렵다. 현재 안에서 많은 것을 누리는 사람이라면, 그런 변화를 부정하고 저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최근, 작가 비플의 작품 ‘매일: 첫 5000일’의 결제 수단으로 이더리움 NFT를 채택한 세계적인 경매회사 ‘크리스티스’의 노아 데이비스가 하는 말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이 순간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기관이든 불가피함에 저항하려고 할 때마다 일은 잘 풀리지 않았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무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2020년 10월, 온라인에서 무료로 볼 수 있었던 10초짜리 영상 작품을 6만7000달러에 구입했던 한 컬렉터가 내놓은 비플의 작품이, 지난달 25일부터 3월11일까지 진행 중인 크리스티스 경매에서 660만달러에 판매되었다.

비플은 2007년 5월1일부터 13년 넘도록 매일같이 드로잉·사진·콜라주·3D그래픽·영상 작품을 온라인에 게시했다. 세상과 연결된 그가 포착한 하루하루에는 기술을 향한 사회의 집념과 두려움, 부에 대한 욕망과 원한, 미국의 정치적 혼란이 집적되었다.

무한 복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거래가 쉽지 않던 디지털아트가 메이저 경매시장에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대체 불가능한 토큰’ NFT 덕분이다. 디지털 자산에 고유한 인식값을 부여하는 NFT를 사용한 디지털 작품은 예술가의 서명과 함께 암호화 기술이 적용되어 복제 불가능한 유일한 작품으로 인증받는다. 데이터값의 손실 없이 무한 복제가 가능한 디지털아트가 기술이 보장하는 유일성, 희소성의 힘으로 복제 가능성을 차단당하는 대신, 강력한 환금성을 얻었다.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계에서 자본은 여전히 힘이 세다.

김지연 전시기획자·d/p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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