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너의 입학식과 나의 졸업식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2021. 3. 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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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며칠 전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식이 있었다. 지방의 작은 초등학교는 1학년 전체 인원이 13명이라고 했다. 내가 초등학생이 된, 정확히는 국민학생이 되었던 1990년대 초만 해도 서울 마포의 모 초등학교에는 수백명이 입학했다. 한 반에 40명이 넘게 배정하고도 모두 수용할 수 없어 오전 반과 오후 반을 나눴다. 그런 풍경을 기억하고 있는 나에게 2021년의 이 작은 입학식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교장은 아이들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인사를 건넸다. 그는 코로나19만 아니면 모두 안아주려 했다고 말했다. 그러곤 <틀려도 괜찮아>라는 그림책을 펴고 아이들 앞에서 낭독을 시작했다. “틀린 답도 괜찮아. 하늘의 신령님도 틀릴 때가 있단다”라며 몇 페이지를 읽던 그는, “남은 부분은 여러분이 글을 잘 읽을 수 있게 되면 그때 꼭 읽어보세요” 하곤 모두에게 그 책을 선물해줬다. 나에게 교장이란 조회 시간에 높은 구령대에 올라 훈화를 하고, 상을 주거나 벌을 주는, 그런 모습으로만 주로 기억된다. 그래야 할 그가 틀린 답도 괜찮다고 아이들에게 눈높이를 맞추어 말해 주었다. 그래서 초등학생처럼 작아졌던 나의 마음 크기도 그때부터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입학식 내내 여덟 살 아이는 무척 경직된 모습이었다. 첫날부터 친구가 된 아이들도 보였으나, 그는 시선 둘 데를 잘 찾지 못했다. 그는 나를 많이 닮았다. 누군가에게 먼저 말을 잘 건네지 못하고 사람이 많은 데서는 쭈뼛댄다. 집을 벗어나 학교로 간 아이가 그로 인해 손해 보는 일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괜찮다. 내가 그랬듯 그는 깨어져 나가며 자신의 세계 바깥으로 나와 어떻게든 어른이 될 것이다.

나는 초등학생 학부모가 되었다. 어떤 마음이 될지 궁금했는데, 입학식장에서 나올 때까지도 그다지 큰 감흥이 없었다. 그래서 표정 없는 아이 곁에서 나도 비슷한 표정으로 함께 걸었다. 며칠 전 이 도시에는 폭설이 내렸다. 그래서 입학식이 하루 연기되기까지 했다. 운동장에는 아직도 발목이 빠질 만큼 눈이 쌓여 있었다. 아마도 전교생이라고 해도 될 만한 수십 명의 아이들이 거기에서 눈싸움하며 노는 중이었다. 1학년이 된 아이들도 적당한 데 자리를 잡았다. 아이에게 “저기 가서 친구들하고 함께 놀래?” 하고 물으니 싫다고 말하고는 나에게 눈을 집어 던졌다. 그래서 나는 그와 눈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친구를 사귀고 그들과 함께 운동장에서 어울렸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잘 어울리지 못하는 그가 안쓰럽기도 하고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됐다. 그러나 동시에 아이가 곧 운동장으로 가버릴 것만 같아 두려워졌다. 어느 순간부터 그는 나의 가장 좋은 친구였다. 함께 이런저런 놀이를 하는 동안 나도 비슷한 또래로 돌아간 것처럼 그와 진심을 다해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실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초등학생이 된 그는 이제 곧 “아빠, 놀아줘” 하고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아빠, 나 친구들하고 놀고 올게”라든가, 집에 누군가를 초대해서 “얘가 나랑 제일 친한 친구야” 하고 말하게 될 것이다. 나도 나의 아버지에게 그랬으니까.

아이의 입학식은 어쩌면 나와의 졸업을 고하는 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운동장으로 가는 대신 마지막으로 나와 함께, 그러니까 이제는 멀어져야 할 자신의 친한 친구와 함께 놀아준 게 아닐까. 그의 학교에서 나오면서 나는 결심했다. 이제 그와 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허락된 시간 동안 몸과 마음을 다해 함께해야겠다고. 물론 지금 작별한다고 해도 너의 친구여서, 김대흔이라는 사람의 친구여서 참 좋았다고 평생 기억될 것이다.

그와 나뿐 아니라 지금 나의 곁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 관계는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무르지 않는다. 쉼 없이 입학과 졸업을 반복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작별하게 된다. 그 시간들을 소중히 추억하고 그것으로 내일을 살아갈 수 있게, 내가 마음을 다해 그들을 대하고 있는지 주변을 돌아보아야겠다. 그래야 언제 작별한다고 해도 함께여서 좋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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