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병원, 한국 의료의 민낯
신재규 지음
생각의힘
만성질환 하나 없이 건강하던 어머니가 어느 날 갑자기 췌장암 4기 진단을 받는다. 미국에서 약대 교수로 일하는 아들,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다급히 귀국해 어머니의 곁을 지킨다. 그런데 한국의 종합병원은 이상하다. 미국에서 체험한 ‘선진’ 의료제도와 비교하면 불합리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국내에서 손꼽힌다는 A 대학병원을 찾았건만 X 교수의 약 처방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어머니의 증상 완화를 위해서라면 동네병원 처방 약보다 위산 분비 억제 효과가 강력한 약을 처방했어야 하는데 오히려 반대로 간다.
여기까지였다면 황당한 에피소드 정도였을 게다. 어머니의 체중이 급격히 줄고 등 통증까지 호소해 추가 검사를 요청하자 그제서야 담당의사는 복부초음파 검사를 하자고 했고 결국 간까지 전이된 췌장암 확진 판정이 내려진다. 아들은 X 교수의 잘못된 판단으로 암 판정이 한 달이나 지연됐다고 의심한다.
정작 아들의 분노가 폭발한 건 그 다음. 어머니가 항암치료를 못 견디겠다고 하자 췌담도암 담당의사, 항암을 중단하면 급격히 나빠질 거라고 했단다. “급격히”가 “얼마나 빨리”인지 옆에 있던 아들이 묻자 돌아온 의사의 단답식 대답. “한 3개월?” 환자의 면전에서 말이다. 환자와 가족의 마음에 대한 최소한의 고려도 없는, 말꼬리 자른 시한부 선고. 아들은 ‘이봐요’라고 따져 묻고 싶었다고 한다.
X 교수와 췌담도암 담당의사는 왜 그랬던 걸까. ‘3분 진료’라는 기형적인 한국의 의료현실이 주범으로 꼽힌다. 그렇다면 최고의 병원에서 일하는 최고의 의사라는 사람들이 마치 공산품 찍어내듯 환자당 평균 3분 진료하는 딱한 현상은 왜 발생하는 걸까. 낮은 의료보험 수가가 원인이다. 돌아오는 수익이 적다 보니 병원들은 적정한 수보다 훨씬 많은 환자를 받아들인다. 의료비가 싸다 보니 사람들은 다른 나라 같으면 굳이 병원에 가지 않을 가벼운 질환에 걸려도 당연하다는 듯 병원을 찾는다. 그 결과는 환자의 소외다. 환자보다 의료 서비스 공급자인 병원이나 의사가 주가 되는 전도된 의료현실 말이다. 책을 읽다 보면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받아들였던 동네병원 진료 행위, 건강검진 같은 일들이 꽤나 문제적으로 느껴진다. 그저 처분대로 이 한 몸 내맡겨야 정신건강에 이로운 종합병원의 추억도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렇다고 미국의 의료 시스템이 정답은 아닐 것이다. 치료차 고국을 찾는 미국 교포 이야기는 더이상 뉴스도 아니다. 미국 병원과 한국 병원의 중간 어디쯤이 정답 아닐까.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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