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세상] 아무나 부모가 돼선 안 된다

유지혜 2021. 3. 5.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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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판사님, 한 번만 살려주세요."

양부모의 첫 재판이 열린 지난 1월13일, 16대 1에 달하는 경쟁률을 뚫고 방청권 추첨에 당첨된 한 시민은 "정인이에게 부모가 있었다면 절대 나서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인이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과 양부모에 대한 분노가 온전히 전해지는 비명이었다.

2년 전 피고인의 어머니는 아들 한 사람을 위해 눈물을 흘렸지만, 정인이 부모를 자처하는 시민들의 눈물은 정인이만을 향한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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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판사님, 한 번만 살려주세요.”

2019년 5월, 서울중앙지법의 어느 법정 안. 녹색 수의를 입은 피고인에게 재판장이 실형을 선고하자 방청석에 있던 한 중년 여성이 벌떡 일어나 외쳤다. 그는 이내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비비며 오열했다. 법정 경위가 말릴 틈도 없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유지혜 사회부 기자
사연은 이랬다. 여성의 아들인 피고인은 아파트에 불을 지른 혐의(현주건조물방화죄)로 재판에 넘겨졌고, 이미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피고인은 자신에게 내려진 형이 부당하다며 항소했지만, 이날 항소심에서도 동일한 결론이 났다. 잠시나마 아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었을 어머니가 무너지는 모습에 법정 안 공기가 무거워졌다.

항소를 기각한 재판장은 왜 실형이 선고될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하며 여성을 달랬고, 그런 어머니를 바라보는 피고인도 눈물을 흘렸다. 법원을 담당하게 된 기자로서 출근한 첫날, ‘재판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분위기나 봐야겠다’며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갔던 법정에서 본 장면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양부모의 학대를 받다 두 돌도 되기 전에 숨진 ‘16개월 아동학대 사건(정인이 사건)’ 재판을 취재하면서 그날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정인이는 2년 전 피고인과 달리 자신을 위해 오열해줄 부모도 없다. 그래서 많은 시민이 정인이의 엄마·아빠를 자처하며 법원을 찾았다. 양부모의 첫 재판이 열린 지난 1월13일, 16대 1에 달하는 경쟁률을 뚫고 방청권 추첨에 당첨된 한 시민은 “정인이에게 부모가 있었다면 절대 나서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재판이 열린 서울남부지법 청사에 정인이 양모가 탄 것으로 보이는 호송차가 들어서자 시민들은 울부짖었다. 정인이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과 양부모에 대한 분노가 온전히 전해지는 비명이었다. 급기야 ‘사형’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던 이들은 호송차가 법원으로 들어간 후 자리에 주저앉아 정인이를 살려내라며 엉엉 울었다.

2년 전 피고인의 어머니는 아들 한 사람을 위해 눈물을 흘렸지만, 정인이 부모를 자처하는 시민들의 눈물은 정인이만을 향한 게 아니었다. 그동안 학대로 숨지거나 지금도 어딘가에서 고통받고 있을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눈물 속에 담겼다. 아울러 더 이상 같은 비극이 생겨선 안 된다는 간절함과 주변의 아동학대를 보면 가만 있지 않겠다는 책임감도 녹아 있었다.

그런데 지난 2일에도 인천에서는 8살 아이가 온몸에 멍이 든 채 숨졌다. 온 국민을 분노케 한 정인이 사건 이후 관계 당국의 사과와 책임자 징계, 재발 방지책과 제도 개선이 잇따랐지만 또 하나의 어린 생명이 학대로 의심되는 죽음을 맞았다. 이 순간에도 어떤 아이가 폭력에 시달리면 신음하고 있을지 모른다. 당연히 학대 가해자에게는 엄벌이 내려져야 한다. 하지만 그들을 법정 최고형에 처한다고 해도 죽은 아이는 돌아오지 못한다.

정인이 부모들의 눈물이 마를 날이 오려면 반복되는 비극을 막아야 한다. 아동학대 문제는 무엇보다 사전 예방이 중요하다. 폭력이나 폭언이 아닌 올바른 훈육방법을 알게 하는 부모 교육이 그 예다. 누구나 부모가 될 순 있지만, 아무나 부모가 되어선 안 된다.

유지혜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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