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의인문정원] 이주노동자로 산다는 것

남상훈 2021. 3. 5.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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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 이사를 하는데, 이삿짐을 나른 노동자 여섯 명 중 두 명이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청년이었다.

우리 곁에는 베트남, 중국, 네팔, 캄보디아, 필리핀, 방글라데시, 우즈베키스탄 등지에서 들어온 이주노동자들의 숫자가 적지 않다.

우리에게 외국인이나 이주노동자를 차별할 한 점의 권리도 없다.

우리가 저 국경 너머 외국에서 들어온, 여기 사람이 아니고 다른 곳에서 온 이주노동자를 차별하는 것은 정치적 올바름에서 벗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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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비인간적인 대우에 방치
반윤리적 태도 비난받아 마땅

작년 10월 이사를 하는데, 이삿짐을 나른 노동자 여섯 명 중 두 명이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청년이었다. 우리 곁에는 베트남, 중국, 네팔, 캄보디아, 필리핀, 방글라데시, 우즈베키스탄 등지에서 들어온 이주노동자들의 숫자가 적지 않다. 코리안 드림을 안고 국경을 넘은 이주노동자들은 영토도 주권도 없는 외국인으로 그 존재를 드러낸다. 누구도 처음부터 외국인으로 태어나지는 않는다. 우리 안에 동화되지 못한 채 바깥으로 미끄러져나가는 이들은 먼 데서 자기 몫이 없는 장소로 들어온 타자들이다.

한국은 농어업 분야에 일손이 태부족해 해마다 4만에서 5만명의 이주노동자 수급이 필요하다. 이주노동자들은 잉여의 신체로 국내인이 기피하는 험한 노동을 떠맡는다. 이것의 본질은 위험의 외주화다. 이들은 자주 차별이나 임금 체불을 겪을 뿐만 아니라 각종 사고 피해로 팔이나 다리를 잃고, 한 해 100명쯤은 목숨을 잃는다고 한다. 불법체류 노동자의 사정은 이보다 더 나쁘다. 이들은 합법 체류자 임금의 70퍼센트 남짓을 받는데, 이마저 악덕 업주에게 떼먹히고 추방되는 사례가 많다. 울산 미나리농장에서 임금 7000만원을 못 받아 노동부에 신고한 이주노동자들은 체불 임금을 받기는커녕 농장주가 불법체류자로 신고하는 바람에 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되어 추방될 위기에 처했다.
장석주 시인
외국인은 자기 안에 국경을 갖고 있다. 프랑스 철학자 기욤 르블랑은 외국인으로 사는 것이 “아무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일정한 거처 없이 머무는 것”이며, 따라서 “국가에의 소속과 참여의 결핍에서 산출된, 거의 지각되지 않는 일종의 중간지대 즉 이차적인 영역의 정체성”만을 갖는다고 말한다. 이들은 보이지 않는 “집단의 내적 국경”을 품고 아무도 아닌 자로 살며, 늘 추방의 위협에 떨며 겨우 불확실한 지위만을 누릴 수 있다.

이주노동자가 받는 나쁜 대우와 차별은 이들이 ‘외국인’ 신분이라는 데서 발생한다. 국가적 장소와 시간이 지워진 상태로 들어온 외국인들은 국지적인 토박이로 사는 동일자들이 태생적으로 공유하는 종족적·언어적 친밀성 바깥으로 내쳐진다. 동일자 질서의 재생산에서 배제되고, 동일자의 영토에서 자기 몫이 없다는 점에서 외국인들은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존재이고, 이들의 목소리는 메아리가 없는 부재의 목소리다. 그런 연유로 외국인들의 실존은 불안하고, 아무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차별과 비인간적 대우에 방치된다.

우리에게 외국인이나 이주노동자를 차별할 한 점의 권리도 없다. 우리는 타자의 타자다. 그것은 우리 신분과 처지가 언제라도 바뀔 가능성을 말한다. 한 세대 전 얼마나 많은 한국인들이 미국과 일본, 서독과 베트남, 중동 국가 등지로 나가 이주노동자로 일했는가를 생각해보자. 달러벌이를 하러 해외로 나간 다수의 한국인들은 안과 밖 사이에 놓인 중간지대에서 타자의 삶으로 발명되고 호명되는 한에서 명백한 외국인이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우리가 저 국경 너머 외국에서 들어온, 여기 사람이 아니고 다른 곳에서 온 이주노동자를 차별하는 것은 정치적 올바름에서 벗어난다. 우리 안에는 숱한 타자가 우글거리고, 저마다 ‘내적 국경’을 갖고 산다. 서로 섞인 채 유동하는 세계화 시대에 누구도 외국인의 조건을 내적 가능성으로 품고 사는 것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이국에서 들어와 자기 몫이 없는 자로 사는 외국인을 악의 근원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문화와 풍습이 다른 곳에서 온 사람이라고 다 범죄자가 아니다. 우리의 안녕을 해치지 않는 외국인이나 이주노동자를 우리끼리 짬짜미해서 따돌리고 차별하는 행위는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고 부정하는 반윤리적인 태도라고 비난받아 마땅하다.

장석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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