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야당 사람' 윤석열
[경향신문]
야인(野人). 정가에서는 이 말이 두 가지 뜻으로 통한다. ‘야당 정치인’과 ‘아무 곳에도 소속되지 않은 인사’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전두환 정권의 언론통제가 극심했던 1980년대 신문·방송에서 ‘한 재야인사’로 표현됐다. 건달 김두한이 종로 골목에서 활약하던 시기는 ‘야인시대’로 지칭됐다. 모두 한자 야(野)를 썼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5일 사직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두고 “야당, 야권의 인물이 될 수밖에 없다”고 일찌감치 칸막이를 쳤다. 지난달 12일 “지금 ‘별의 순간’이 보일 것”이라며 윤 전 총장의 결단을 주문한 그였다. 야당 사람이면서 소속이 없는 사람, 당분간 윤 전 총장은 야인의 두 정체성을 품게 됐다.
‘야당 사람’은 윤 전 총장의 살아온 궤적과 관성이 투영된 말이기도 하다. 검찰에서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적폐 수사를 하다 ‘조국 수사’를 고비로 현 정권에 칼을 겨누며 갈등이 쌓였고, 사퇴 명분도 여당에서 논의 중인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반대”로 삼았다. 3일 새 언론 인터뷰→대구검찰청 방문→사퇴 수순까지 속전속결한 것도 ‘결단의 때’를 고민하고 기다린 걸로 읽힌다. 그는 사퇴하면서 “자유민주주의와 국민 보호를 위해 온 힘을 다하겠다”고 했다. 여권 인사는 “(보수에서 많이 쓰는)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이 정체성을 예고한 것 아니냐”고 짚었다. 여론조사에 비친 그의 지지기반도 50대 이상과 영남이 양대 축이다.
‘정치인 윤석열’의 계획은 알려지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4월 보궐선거가 지나고 난 다음에 판단을 할 것”이라고 봤다. 윤 전 총장이 국정농단 수사의 악연이 있는 국민의힘에 합류할지는 불투명하다.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나 안대희 전 대법관 등과 제3지대에서 세력 규합부터 할 거라는 관측도 있다.
분명한 건 넘을 고비가 많다는 점이다. 검찰수장 시절에 쌓은 ‘반문 에너지’로만 살아남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권주자로서 국정 청사진을 제시하고, 세력도 모아야 한다. ‘검찰’ 성안에 있을 때는 사람을 골라 만나고 말을 가려 할 수 있었지만, 여의도 벌판에 서면 지금까지와 비교할 수 없는 질문과 공격과 검증에 맞닥뜨린다. 정치인 윤석열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모든 것이 물음표다.
이용욱 논설위원 wood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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