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세지감, FA 이용찬의 '동영상 피칭 시위' [안승호의 PM 6:29]

안승호 기자 siwoo@kyunghyang.com 2021. 3. 5.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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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경향]

지난 2일 유튜브에 올라온 FA 이용찬의 재활 불펜 피칭 모습. 유튜브 캡쳐


영상은 공 던지는 투수를 뒤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투구수가 20구 전후로 늘어나자 카메라는 포수 뒤로 움직인다. 그렇게 포수의 눈으로 투구 궤적을 현실감 있게 잡아내더니 이번에는 투구판 측면으로 자리를 옮겨 피칭 동작을 앵글에 담는다.

영상 속의 투수는 이용찬(32)이다. 이용찬은 아직 자유계약선수(FA) 신분이다. 원소속구단 두산과 협상에서 시각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이용찬과 두산은 오는 3월말 또는 4월초 협상테이블을 다시 차리기로 했다.

협상이 지지부진했던 이유는 이용찬의 몸상태에 대한 선수와 구단의 시각차가 컸기 때문이다. 이용찬은 지난해 6월 오른쪽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을 받았다. 해당 수술을 받은 선수는 대개 실전 마운드에서 제 기량을 발휘하기까지 최소 1년을 보내야 한다. 그보다 회복 속도가 빠른 이용찬의 신념과 달리 두산은 선수 건강에 대한 물음표를 지우지 못했다.

협상 시일을 늦춘 것도, 건강을 입증하려는 이용찬과 조금 더 확신을 갖고 싶었던 구단 입장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이용찬의 피칭 영상은 시리즈로 올라오고 있다. 최근 영상에서는 한 학교 운동장의 불펜에 선 이용찬이 40구를 던진다. ‘꽤 건강해 보인다’는 인상을 받을 만큼 이용찬은 씩씩한 피칭을 했다.

해당 영상은 누구나 검색어만 넣으면 볼 수 있는, 유튜브에 있다. 어느 팀에도 갈 수 있는 FA 신분. 이는 곧 두산뿐 아니라 투수에 목마른 다른 구단에도 보내는 메시지처럼 보였다.

이용찬은 이른바 자체 제작 영상으로 건강을 입증하려 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격세지감이 따로 없다. 지금 시각으로는 전설 같은 실화 한토막이 오버랩 된다.

2005년 삼성이 통합우승을 이룬 뒤 당시 김응용 삼성 사장과 선동열 감독, 그리고 수훈선수 오승환과 진갑용이 우승 인사차 본사를 방문했던 자리. 오승환이 “요즘은 팬레터가 거의 없어졌다”며 “대부분 ‘싸이’(개인홈피)나 이메일이 팬레터를 대신한다”고 그 때의 소통 트렌드를 화두로 던졌다. 이에 진갑용이 “요즘 우리팀에선 오승환과 조동찬이 여성팬들이 가장 많다”고 대화를 조금 더 구체화하자 오승환은 머쓱해 하면서도 “아무래도 요즘은 ‘조회수’가 중요하다”고 받아쳤다.

이때 무덤덤한 표정으로 대화를 듣고 있던 김응용 사장의 말 한마디가 웃음폭탄이 됐다. “그런데 ‘조회수’는 누구야? 어떤 여자인데?”

조회수에 대한 친절한 설명에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민망한듯 웃었던 김응용 사장의 반응은 당시 야구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전해지고 또 전해져 ‘유머의 고전’이 됐다.

지난 2일 유튜브에 올라온 FA 이용찬의 재활 불펜 피칭 모습. 유튜브 캡쳐


야구선수가 나름의 목적을 갖고 유튜브 등 영상을 활용하는 일은 최근 심심찮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지난 겨울 메이저리그에서는 FA 시장 최대어로 통했던 사이영상 투수 트레버 바워가 자신의 협상 조건을 유튜브로 공개하기도 했다. 영상을 통해 “난 사흘만 쉬고 던지는 4일 로테이션이 5일 로테이션보다 더 좋다”며 자기만의 독특한 체질을 내세운 바워는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었다.

사실, 4월이 온다고 하더라도 이용찬이 실전 등판을 하지 않는 이상 자신의 구위 회복을 100% 입증할 길은 없다. 그러나 누구나 볼 수 있는 영상을 통해 자신의 현재 모습을 공개하는 건 일종의 자신감의 표현인 건 분명하다. 지금도 이용찬은 영상 속에서 공을 던지고 있다. 피칭 영상 ‘조회수’도 올라가고 있다.

안승호 기자 siwo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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