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리뷰] '파우스트 엔딩', 눈길 끈 '女파우스트' 몰입은 글쎄

이향휘 2021. 3. 5.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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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결혼 등 공감여부 엇갈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느니라."

독일 문학의 거장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평생에 걸쳐 고쳐 쓴 역작 '파우스트'의 주제의식이다. 인간은 욕망을 이루고자 노력하는 존재이자 이로 인해 방황과 고통을 수반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만족할 줄 모르는 인간의 본성을 통렬하게 꿰뚫은 문장이기도 하다.

연출가 조광화는 19세기 괴테의 작품에 21세기 옷을 입혔다. 제목 '파우스트 엔딩'에서 느껴지듯 신의 구원을 뿌리치고 파우스트는 지옥으로 스스로 걸어들어간다. 자신의 선택,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주체적인 현대인의 표상을 제시한 것이다. 의학박사에 수학과 천문학, 마술에까지 두루 능통한 노학자 파우스트의 몫은 여배우 김성녀에게 돌아갔다.

지난달 말 명동예술극장에서 개막한 국립극단 작품을 보면 원작을 재해석했다기 보다 재창조했다는 말이 정확하다. 방대한 원작의 무게감을 덜어내고 110분짜리 작품으로 압축한데다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현실감 있는 대사는 자주 웃음을 자아낸다. 12명의 배우가 직접 조종해 걷고 뛰는 들개 퍼펫, 인조인간 '호문쿨루스' 등은 무대에 역동성을 더한다.

가장 관건은 여자 파우스트가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낼 것인가다. 메피스토에게 영혼까지 바쳐가며 근원을 탐구하려는 욕망덩어리 노학자가 여성이라는 설정은 아무래도 개연성이 떨어져 보인다. 그가 왜 영혼까지 저당잡히면서 젊은날의 열정과 호기심을 되찾고 싶은지가 석연치 않다. 여기에 젊은 아가씨로 변해 그레첸과 사랑에 빠져 동성결혼하는 전개는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여성간의 공감과 연대를 굳이 사랑과 결혼으로 엮을 필요가 있을까 싶다. 게다가 젊은 여성으로 바뀐 파우스트를 그레첸의 오빠가 연모하며 갈구하는 설정은 마치 나이 많은 여자가 젊은 남자를 탐하는 것 같아 불편한 감정을 자아낸다. 젠더 감수성은 남녀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돼야 한다.

주인공의 사랑과 갈등의 서사가 몰입을 얻지 못하면서 메피스토 역할에 더욱 눈길이 간다. 신을 조롱하고 만족할 줄 모르는 인간을 지옥 밑바닥까지 끌고 가는 메피스토 역을 배우 박완규는 능수능란하게 악당 역을 소화한다. 김성녀의 고뇌어린 연기는 좋지만 파우스트의 무게감이 너무 크게 느껴진다.

단순히 성 역할만 바꾼 젠더프리(gender-free) 연극은 한계가 명확하다. 시류에 편승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받을 수 있다. 반드시 여자여야 하는 합당한 개연성과 깊이가 부여될 때 실험적인 시도가 빛을 발한다. 공연은 3월 28일까지.

[이향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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