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지프스', 바보야 문제는 떡밥이 아니야

TV삼분지계 2021. 3. 5.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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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프스', 6화가 되도록 쌓이기만 하는 물음표
'시지프스', 해소되지 않는 떡밥의 바다 속에서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남지우·이승한·정석희 세 명의 TV평론가가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TV삼분지계]를 통해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JTBC <시지프스>는 이렇다 할 평가를 내리기를 주저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기껏 이야기가 어느 정도 쌓인 것 같다는 생각으로 이야기를 꺼내고 나면, 다음 회차에서 다시 새로운 떡밥이 풀려서 앞선 논의들이 흐려지는 일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시간 여행과 미래를 바꾸기 위해 과거를 바꾸고자 하는 시간 전쟁이라는 소재 때문에 생기는 문제인가 싶겠지만,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시간 전쟁을 묘사하는 <시지프스>의 디테일들은 군데군데 비어 있고, 스토리텔링 방식은 6회가 지난 지금까지도 맥락을 짐작하기 어렵게 불친절하다. 좋게 말하면 도전적이다. 좋게 말하자면.

[TV삼분지계]의 세 평론가는 어떻게 보았을까? 정석희 평론가는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소시켜준 후 또 다른 궁금증을 유발해야 하는데 이 드라마는 그저 물음표만 늘어놓는다"며, "시간 여행 드라마가 완성도를 인정받으려면 정교한 톱니바퀴 모양 디테일이 딱 딱 들어맞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승한 평론가는 떡밥만 반복해서 제시하는 드라마가 시청자들을 계속 사로잡으려면 "떡밥을 제외한 나머지 세계가 답답함을 참아가며 볼 만큼 흥미롭고 매력적이어야" 하는데, 인물들의 평면적인 성격과 같은 작품 내적인 결함들이 그를 방해한다고 지적했다. 남지우 평론가는 "6회차에 들어 완전히 새롭게 시작한 이 드라마를 두고 지금 할 수 있는 말이 많지 않다"면서도, 작품을 비슷한 소재를 다룬 영화 <테넷>(2020)과 비교하며 부디 <시지프스>는 운명론에서 벗어난 진보된 미래를 그리는데 성공하기를 기원했다.

◆ 물음표 뒤에 또 물음표

최근 몇 년 사이에 타임 슬립, 타임 워프, 시간 여행을 다루는 드라마들이 쏟아져 나왔다. 지금도 동시에 여러 편이 방송 중이다. 당연히 시청자들의 눈높이는 다락 같이 높아졌다. '폐허가 된 미래에서 지구를 구하기 위해 누군가가 왔다', 정도에 혹할 시청자가 아닌 것이다. 미래와 현재, 과거가 혼재하는 JTBC <시지프스>. 시점이 뒤죽박죽 얽혀 있을 뿐 아니라 의문의 인물도 수두룩하다. 주인공들은 또 왜 그리 꿈을 자주 꾸는지. 꿈인지 현실인지조차 헷갈리는 상황이다.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소시켜준 후 또 다른 궁금증을 유발해야 하는데 이 드라마는 그저 물음표만 늘어놓는다. 5회에 안개가 어느 정도 걷혔다 싶었는데 6회에 다시 오리무중이 되었지 않나. 우여곡절 끝에 공조하기로 의기투합한 두 주인공 한태산(조승우)과 강서해(박신혜)가 태술의 형 태산(허준석)을 찾고자 파티장에 잠입했는데 서해와 마주친 태산은 태술이 곁에서 떨어지라며 다시 만나면 죽여 버리겠다고 경고한다. 심지어 서해의 환영이 나타나 태술에게 시간의 진실을 알려주기도 한다. 그리고 모든 걸 아는 미지의 인물이 있다. 뭐지?

명색이 방송 칼럼을 쓰다 보니 주변에서 자꾸 묻는다. 그래서 10년 전 죽은 형이 살아 돌아온 거야? 한태술 집에 침입해 그림을 떼고 경고문을 남긴 게 누구야? 설마 미래에서 온 또 다른 강서해가 있는 건 아니지? 몇 차례 다시보기를 해가며 성의껏 답하곤 했는데 석 주가 지난 오늘 어설픈 해설자 노릇을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어째 내가 끝없이 바윗돌을 굴려야 하는 시지프스가 된 꼴이라서. 시간 여행 드라마가 완성도를 인정받으려면 정교한 톱니바퀴 모양 디테일이 딱 딱 들어맞아야 한다. 아, 그래서 그랬군! 무릎을 치며 감탄하게 만들어야 한다. 16회 마지막 장면을 보며 박수 칠 수 있기를.

정석희 TV 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 이야기꾼의 욕망이 통제가 안 될 때

이야기꾼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는 건 좋은 일이다. 문제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넘치는데 그 이야기를 가늠할 여력이 부족할 때 생긴다. JTBC <시지프스>가 겪고 있는 문제도 그와 같다. 크게 요약하면 과거와 현재, 미래를 오가며 포스트 아포칼립스에서 살아남고 미래를 바꾸기 위해 과거로 넘어오는 시간난민들과, 그들을 단속해 타임라인을 유지하려는 단속국의 대립을 그리는 이 작품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서 6회가 될 때까지 끊임없이 떡밥을 흘린다.

차곡차곡 떡밥을 쌓았다가 마지막에 능숙하게 낚시줄을 채어 물고기들을 줄줄 건지는 장르적 쾌감을 노리는 건 나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시지프스>가 노출되는 미디엄은, 좋으나 싫으나 끝까지 영화관에 갇혀 있어야 하는 영화가 아니라, 따라가기 버겁다 싶으면 언제든 시청을 포기할 수 있는 TV다. 6회가 되도록 떡밥을 흘리는 일만 반복하던 <시지프스>는, 막판엔 전체 서사를 드라마 감상하듯 내려다보는 '시그마'(김병철)를 등장시키며 6회 동안 쌓아왔던 이야기의 이면이 있다는 암시를 또 한번 건다.

물론 TV 장르에서도 해소되지 않는 설정들을 끊임없이 제시하며 시청자들을 조련했던 전례들이 없었던 게 아니다. 떡밥의 제왕 J.J.에이브럼스의 대표작 <로스트> 이후로, TV에서도 불친절한 스토리텔링과 풀리지 않는 의혹들을 나열하며 시청자들을 붙잡고 놔주지 않는 작품들의 계보는 제법 길다. 그런데 그러려면 떡밥을 제외한 나머지 세계가 답답함을 참아가며 볼 만큼 흥미롭고 매력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시지프스>는 그 지점에서 그다지 유능하지 못하다. 이미 많은 이들이 반복적으로 지적한 CG의 문제나 돋움체, 굴림체 애호와 같은 디테일의 부재도 그렇지만, 극의 중심부에서 주인공과 대적하는 안타고니스트들이 입체적으로 구현되지 못한 채 다분히 평면적인 성격으로 그려진다는 점 또한 열의를 꺾는 지점이다.

다시, 이야기꾼이 의욕이 넘치는 건 좋은 일이다. 문제는 그 넘치는 의욕을 잘 통제할 여력이 안 될 때 터진다. "나는 이 부분이 제일 좋더라. 로맨틱하잖아." 그 감정, 시청자들도 좀 함께 느낄 수 있어야 할텐데 말이다.

이승한 칼럼니스트 tintin@iamtintin.net

◆ 일어날 일이 일어나지 않게

<시지프스>는 어제 시작한 것과 다름없다. 첫 방송으로부터 3주가 흘렀으나, 6회차에 들어 완전히 새롭게 시작한 이 드라마를 두고 지금 할 수 있는 말이 많지 않다. 무려 5회 분량을 빌드업 하는 데에만 투자하기로 한 작가의 모험심이 대단하다는 정도? 이런 와중에 지난여름, 내가 <테넷>이라는 영화를 미리 봐두었다는 사실이 참 다행이다. 두 작품이 시간이라던가 운명에 대해 믿고 있는 사실이 너무 닮아있기 때문이다.

과거·현재·미래를 넘나들며 시간성을 탐구하는 이 드라마와 영화는 신기할 정도로 똑같은 대사를 내뱉고 있다. 미래를 모두 알고 작전을 수행하는 단속국은(그래서 지금까지 그렇게 허술했던) "될 일은 되고 안 될 일은 안된다"라고, 미래에서 과거로 동료를 도우러 오는 조력자 닐(로버트 패틴슨)은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라고 말한다. 미래를 이미 겪은 이들의 태도는 다 이렇게 풀이 죽고 순응적인 걸까? 사전 제작해 방영 중인 <시지프스>가 지난해 봄에 촬영을 시작했으니, 그보다 나중에 개봉한 영화가 작가의 작업에 영향을 끼칠 수는 없었을 터. 그 둘 사이에 어떤 시간 왜곡, 인버전이나 업로더 같은 게 있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미래는 이미 정해져 있다고 말하는 시간의 SF에서, 우리는 그 어떤 변화나 진보도 목격할 수 없다. 역사의 폐쇄성과 진보의 불가능성을 옹호하는 <테넷>이라는 영화가 정말 그랬다. 그 반면 <시지프스>는 이제 시작이다. 두 주인공이 시지프스의 세계에서는 일어날 일(핵전쟁)이 일어나 않게, 시간을 만지고 세상을 바꾸면 좋겠다.

남지우 칼럼니스트 jeewoo1119@gmail.com

[사진·영상=JTBC. 그래픽=이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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