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N사피엔스] 프로야구에서 4할 타자는 왜 사라졌을까

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 교수 2021. 3. 5.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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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제이 굴드는. ‘단속평형설’을 주장한 것으로 유명하다. 진화가 점진적이지만은 않으며 갑작스럽게 일어날 수 있다는 내용으로, 전통 다윈주의에 큰 파문을 일으키는 주장이다. 위키피디아 제공

현대 진화론을 정립한 찰스 다윈에게도 진화와 관련해 해결하지 못한 여러 문제들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진화의 직접적인 증거라고 할 수 있는 화석기록에 관한 것이다. 다윈은《종의 기원》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이를테면 연속된 암석층들에서 지금 존재하거나 과거에 존재했던 수많은 종들 사이의 무한히 많은 과도기적 연결 고리들을 찾아내지 못하는 것, 우리 유럽의 지층에서 한 무리의 종 전체가 급작스레 출현하는 것, 현재 알려진 바로는 실루리아 지층 아리에는 화석을 포함한 지층이 전혀 없다는 것과 같은 사실들은 모두 의심할 바 없이 심각한 문제이다.”

다윈은 지질학적인 기록이 불완전하다고 여겼다. 만약 화석기록이 진화의 매 단계마다 충실하게 남아 있다면 이를 연대별로 배열했을 때 급격한 변화보다 완만한 변화를 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현실의 화석은 그렇지 않다. 생명체가 화석화된다는 사실 자체가 대단히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해야 하고 이를 온전하게 발견하는 것 또한 아주 낮은 확률의 관문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시각은 다윈 이래 20세기 내내 대체로 생물학계의 주된 흐름이었다. 그러다가 1972년 학계의 이단아였던 미국의 스티븐 제이 굴드는 닐스 엘드리지와 함께 전혀 다른 해석의 논문을 발표했다. 굴드와 엘드리지에 따르면 화석상의 기록이 불연속적인 이유는 실제로 불연속적인 변화들이 진화를 주동했기 때문이다. 이를 ‘단속평형설(punctuated equilibrium)’이라 부른다. 단속평형설에 따르면 진화는 점진적으로 일어나지 않고 일정한 정체기를 지나 한순간 폭발적으로 일어난다. 단속평형설은 진화의 속도가 시기에 따라 극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강조한다.

점진론은 형태의 변화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일어난다고 주장하는데 비해, 단속평형론은 긴 정체기와 갑작스런 변화가 반복된다고 주장한다. 과학동아DB

리처드 도킨스는 《눈먼 시계공》에서 한 장을 할애해 단속평형설을 비판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굴드가 비판하는 대상은 다윈이 선호했던 이른바 점진설이 아니다. 도킨스가 보기에 굴드는 한 세대 안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는 도약진화설이나, 진화의 속도가 언제나 일정한 속도로만 진행되는 진화등속설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 있으나 실제 다윈과 그 후예들은 이런 주장을 한 바가 없다는 것이다. 도킨스의 입장에서는 단속평형설 또한 점진설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단속평형설에서 강조하는 긴 정체기도 그렇다. 화석상에 보이는 급진적인 변화는 기나긴 정체기의 짧은 에피소드로 단속될 뿐이다.

비유적으로 말해 지구 표면에 부분적으로 평평하거나 오목한 지역이 있다고 해서 전체적으로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못한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도킨스가 굴드를 비판하면서 소개한 성경 출애굽기의 비유이다. 도킨스가 성경에 적힌 대로 계산한 바에 따르면 이스라엘 민족은 40년 동안 평균시속 2.7미터의 속도로 이동해 하루에 약 22미터를 움직였다. 실제로 모세가 자신의 무리를 이끌고 매일 정확하게 22미터씩만 움직였을 리는 없다. 상식적으로 출애굽기를 읽으면서 그렇게 해석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도킨스가 단속평형설을 비판한 핵심은 바로 이런 내용이다. 진화의 점진설이라고 해서 진화가 항상 매일 22미터씩 이동하는 식으로 일어나지는 않는다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도킨스가 보기에는 굴드가 자신이 원하는 선택지(단속평형설)와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선택지(등속설)을 제시하고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것과도 같다. 

리처드 도킨스(1941~현재)

우리의 현실에서도 이런 식의 논리구조로 토론을 하거나 글을 쓰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논리적으로 가능한 선택지는 A와 B, 둘밖에 없다고 제시하고 그중 하나를 고르라는 식이다. 말하자면 ‘양자택일 강요론’ 정도로 말할 수 있겠다. 여기서 예컨대 A가 자신이 원하는 선택지라면 B는 누가 봐도 형편없는 선택지일수록 승산이 높다. 디자이너가 클라이언트에게 시안을 몇 개 보낼 때에도 가끔 그런 경우가 있다고 한다. 시안들 중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은 상위 세 개를 보내기보다 디자이너가 원하는 시안과 함께 가장 완성도가 떨어지는 시안을 한두 개 같이 보내는 것이다. 클라이언트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디자인을 결정하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고 느낄 것이다. 대학에서 사람을 뽑을 때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해당 학과에서 원하는 사람을 1순위로 올리고 자체 평가에서 최하 수준의 평가를 받은 사람을 2순위로 올리면 그 학과가 원하지 않는 사람이 최종적으로 선택될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물론 현실의 모든 일이 예상대로 진행되지는 않아 클라이언트나 대학본부가 엉뚱한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단속평형설이 진화의 속도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킨 주장이다. 그렇다면 진화의 방향은 어떨까? 생명체의 진화에는 어떤 방향이 있는 것일까? 우리가 ‘진화(進化, evolution)’라는 말을 접할 때 가장 흔히 떠올리는 심상은 진보이다. 즉, 진화는 뭔가 더 좋아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하필 우리말로는 모두 나아길 진(進)자를 쓰고 있다. 진보라는 좀 추상적인 말보다 더 구체적인 개념으로 복잡성을 도입하기도 한다. 즉 진화란 복잡성이 증가하는 과정이라는 말이다. 다윈의 진화론은 수없이 많은 가지치기 과정이 끝없이 일어나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현재에 가까운 가지일수록 생체구조가 대체로 복잡해진다는 말이다. 물론 여기서는 생물학적 복잡성이란 무엇인가를 정의해야 하는 문제가 있지만, 대략 그 생물체를 이해하는 데에 필요한 정보량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굴드는 이 주제에서도 대단히 ‘신박한’ 해설을 내놓았다. 굴드는 그의 역작 《풀하우스》에서 진화의 본질은 진보가 아니라 다양성의 증가라고 주장했다.

스티븐 제이 굴드(1941~2002). 위키피디아 제공

예컨대, 큰 냄비에다가 설탕을 붓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빈 냄비의 한가운데에 설탕을 쏟아 부으면 설탕은 가운데에 가장 많이 모여 우뚝 솟은 봉우리를 형성할 것이고 가장자리로 갈수록 방사형으로 점차 높이가 낮아지는 모양일 것이다. 만약 설탕을 냄비의 한쪽 옆면에 바짝 붙여서 쏟아 부으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그 벽면에 가장 많은 설탕이 쌓일 것이고 그로부터 멀어질수록 설탕의 양은 줄어들 것이다.

굴드에 따르면 진화의 현실은 후자에 가깝다. 지구라는 행성에서 생명은 매우 단순한 구조에서 시작해 오랜 세월 진화의 기간을 겪었다. 진화라는 메커니즘은, 그저 무심하게 위에서 냄비바닥으로 더 많은 설탕을 쏟아 붓듯, 더 많은 종류의 생명체를 지구에 풀어놓을 뿐이다. 그런데 하필 그 출발점이 매우 단순한 구조의 생명체였기 때문에 다양성이 증가하더라도 그 구조가 더 이상 단순해질 수 있는 여지는 없는 (마치 냄비의 벽면처럼) 반면 복잡해질 여지(냄비의 가운데처럼)는 무한히 열려 있는 셈이었다.  그 결과, 단세포 생물들보다 훨씬 복잡한 공룡이나 인간 같은 생명체도 지구에 출현하게 되었다. 

불행히도 인간은 세상만물을 자기중심적으로만 이해하고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향은 생물종의 진화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누구나 한 번 품었을 법한 생각, 즉 결국 진화란 모든 생명체가 하등동물에서 고등동물, 그 중에서도 인간이 되기 위한 여정이라는 오해로 연결되기 십상이다. 복잡한 신체구조를 가진 영장류는 전체 생태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극히 일부일 뿐이다. 아주 오래 전의 선캄브리아기나 지금이나 가장 많은 개체수를 차지하는 것은 박테리아이다. 따라서 이렇게 과잉대표된 몇몇 개체를 중심으로 놓고 진화의 본질이 진보라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 굴드의 요지이다.

굴드의 이 기막힌 ‘넘사벽’ 논증은 진화생물학과는 전혀 엉뚱한 주제, 즉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4할 타자가 사라진 이유와 연결된다. 성당의 스팬드럴을 이용해 적응주의를 논파했던 굴드에게 이런 식의 크로스오버가 너무 쉬운 일이었나 보다. 메이저리그의 마지막 4할 타자는 1941년의 테드 윌리엄스로, 그의 시즌 타율은 4할6리였다. 한국 프로야구에도 4할 타자가 한 명 있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원년 선수 겸 감독으로 활동했던 백인천이 4할1푼2리의 타율을 기록했다. 이 기록은 지금까지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타율로 남아 있다.

테드 윌리엄스(1918~2002). 베이브 루스 이후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 타자로 꼽히는 강타자다. 게티이미지/연합뉴스 제공

언뜻 생각하기에 4할 타자가 사라진 이유는 투수들이 더 잘 던지게 돼서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누군가는 즉각적으로 타자들은 그동안 놀았나라고 반문할 수 있다. 굴드가 《풀하우스》에서 펼친 논증의 핵심은 이렇다.

스포츠 경기에서는 인간의 한계라는 ‘넘사벽’이 있다. 백 년 전이든 지금이든 아무리 선수들의 기량이 출중해졌다고 해도 예컨대 투수의 구속이 시속 200킬로미터를 넘거나 100미터를 7초에 뛸 수는 없다. 이 한계는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만 메이저리그 초기에는 선수들의 평균 능력이 신체의 한계보다 크게 못 미치는 곳에 형성돼 있었고 그를 중심으로 좌우로 넓게 종모양의 정규분포를 이루고 있었을 것이다. 그때 메이저리그 타자들의 평균타율이 2할6푼 정도였다고 하는데 워낙 분포가 넓게 형성돼 있기 때문에 좀 드문 확률이긴 하지만 평균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뛰어난 기량을 보이는 선수들이 간혹 출현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20세기 후반 선수들의 전반적인 기량은 (투수든 타자든 모두) 크게 향상되어 그 평균점이 인간의 한계에 훨씬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되었다. 그런데 인간의 한계라는 넘사벽에 막혀 있기 때문에 선수들의 기량의 분포는 20세기 초반보다 훨씬 더 평균에 몰려 있는 종모양을 형성하게 된다. 그 결과 변이가 감소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타자들의 평균타율을 2할6푼에서 3할6푼으로 올라간 것은 아니다. 그런 리그의 야구는 분명 아무런 재미도 없을 것이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여러 가지 미세한 조정을 통해 항상 타자들의 평균타율을 2할6푼 정도에서 유지해 왔다. 한국 프로야구에서도 고질적인 타고투저를 해결하기 위해 스트라이크 존을 넓힌다든가 공인구의 반발력을 줄이는 식으로 보정을 해 왔다. 

따라서 선수들의 기량이 월등이 향상돼 인간의 한계에 가까이 상항평준화하는 분포를 이룸으로써 변이가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야구라는 경기의 재미를 위해 평균타율을 2할6푼으로 조정하다보니 이 평균에서 훨씬 벗어나 뛰어난 기록을 갖는 선수가 나올 확률이 극히 줄었다는 것이 굴드의 해석이다. 요컨대, ‘상향평준화에 의한 변이의 감소’이다. 

훨씬 더 단순한 예를 들 수도 있다. 초등학교 1학년생들에게는 구구단 암기왕을 뽑는 것이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이제 막 구구단을 외우기 시작하는 학생들의 분포는 평균을 중심으로 넓게 퍼져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3 수험생 중에서 구구단 암기왕을 뽑는 것은 의미가 있을까? 다들 너무나 잘하기 때문에 평균보다 훨씬 더 잘하는 사람을 뽑는 것 자체가 별 의미가 없다. 고3 수험생 정도면 적어도 구구단에 관해서는 모두 상향평준화돼 있어 변이가 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들 집단에서 ‘구구단의 4할 타자’가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

※참고자료

-찰스 다윈, 《종의 기원》(장대익 옮김), 사이언스북스.
-리처드 도킨스, 《눈먼 시계공》(이용철 옮김), 사이언스북스.

-스티븐 제이 굴드, 《풀하우스》(이명희 옮김), 사이언스북스.

※필자소개 

이종필 입자이론 물리학자. 건국대 상허교양대학에서 교양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신의 입자를 찾아서》,《대통령을 위한 과학에세이》,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아주 특별한 상대성이론 강의》, 《사이언스 브런치》,《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을 썼고 《최종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물리의 정석》 을 옮겼다. 한국일보에 《이종필의 제5원소》를 연재하고 있다.

[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 교수 jongphil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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