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권불법 수사 尹 축출에 성공한 文, 법치와 정의는 패배했다

조선일보 2021. 3. 5.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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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검찰총장이 기자들과 만나 입장을 밝히고 있다. /장련성 기자

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사퇴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다렸다는 듯이 수용했다. 윤 총장은 “저는 이 사회가 어렵게 쌓아올린 정의와 상식이 무너지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윤 총장은 “이 나라를 지탱해온 헌법 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며 “자유 민주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다”고 했다. 윤 총장이 임기를 4달여 남기고 사퇴한 것은 문 정권의 집요한 검찰 총장 몰아내기의 결과다. 그동안 네 차례의 인사 학살, 세 차례 지휘권 발동, 총장 징계 청구 등이 있었다. 급기야는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 추진으로 전체 검사들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윤 총장도 더는 버틸 수 없었다. 문 대통령이 정권 불법과 비리를 수사해온 눈엣가시 윤 총장 축출에 성공한 것이다.

윤 총장에 대해 보여온 문 대통령의 태도는 표변이란 말로도 부족하다. 문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그를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승진시켜 전 정권 수사·재판의 책임을 맡겼다. 전직 대통령 두 명과 전 대법원장을 비롯해 기소된 사람이 100명을 훨씬 넘었다. 이를 정권 제1의 국정 과제라고 공표할 정도였다. 이를 수행한 윤 총장을 향해 대통령은 “우리 윤 총장님”이라고 했다. 여권 인사들 입에서 ‘정의로운 검사'란 칭송이 쏟아졌다.

찬사와 격려가 일순 비난과 공격으로 바뀐 것은 법무장관에 기용된 조국 일가에 대한 검찰 수사 때문이었다. 파렴치와 비리, 내로남불의 백과사전과 같은 조씨 일가에 대한 검찰 수사로 결국 조씨 아내와 동생이 유죄 판결을 받고 감옥에 갔다. 조국도 낙마했다. 그러자 정권 내에서 ‘검찰 개혁'이란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말이 개혁이지 검찰을 다시 충견으로 만들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검찰 수사는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공작, 라임·옵티머스 펀드 사기, 월성 1호 경제성 조작 등 정권의 심각한 불법 혐의에 대한 수사로 이어졌다. 선거 공작은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질 수 있는 사건이다. 정권은 ‘윤석열 찍어내기’에 돌입했다. 문 대통령은 먼저 정권 불법을 수사하는 검찰 수사팀을 인사권을 이용해 공중분해시켰다. 피의자가 수사관을 몰아내는 초유의 직권 남용이었다. 사기꾼들의 일방적 폭로를 근거로 검찰총장에 대한 수사 지휘권을 행사했다. 위법 감찰을 하고 엉터리 징계를 했다. 급해지자 마지막엔 대통령이 직접 윤 총장에 대한 정직 징계 의결서에 서명했다. 하지만 법원에서 제동이 걸리며 검찰 총장 찍어내기가 실패하자 마지막 카드로 들고 나온 것이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었다. 윤 총장에게 ‘그 전에 나가라'는 압박이었다. 윤 총장으로선 자신 때문에 검찰 전체가 허수아비 껍데기가 되는 사태를 감당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의 작전은 결국 성공해 이날 윤 총장은 물러났다.

이 사태로 우리나라 검찰 개혁의 핵심은 대통령과 검찰을 실질적으로 분리시켜 대통령이 더 이상 검찰을 사냥개 충견으로 부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란 사실이 다시 한번 명백해졌다. 세상의 가장 크고 심각한 비리는 집권 중인 권력이 저지르는 것이다. 그 비리 불법을 감시하고 수사할 기관은 검찰밖에 없다. 그런데 검찰이 살아 있는 권력의 비리는 눈감고 지나간 권력 죽이기만 몰두하면 나라가 제대로 설 수 없다. 문 대통령이 윤 총장을 축출하고 만들려는 검찰이 바로 이런 충견 검찰이다.

윤 총장 축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검찰총장 자리에 정권 불법 수사를 원천 봉쇄해온 수족 검사를 임명할 것이다. 권력형 비리 수사는 전부 흐지부지될 것이고, 검찰 수사권 박탈 협박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없어질 수 있다. 이렇게 법치와 정의가 무너지면 결국 나라와 사회가 무너지게 된다. 국민이 돈과 지역 이익의 유혹에서 벗어나 바로 설 때만이 이 사태를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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