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화가가 그린 어머니 얼굴

신문선 축구해설가·와우갤러리 명예관장 2021. 3. 5.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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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거실에는 권순철 화가의 그림이 걸려 있다. 어느 노파의 주름진 얼굴이 담긴 200호 가까운 대작(大作)이다.

우리 집 거실에는 권순철 화가의 그림이 걸려 있다. 어느 노파의 주름진 얼굴이 담긴 200호 가까운 대작(大作)이다. 캔버스 위에 겹겹이 쌓인 짙은 색의 물감이 그 질량적 무거움 탓에 인물의 고뇌처럼 침중한 무게로 다가온다.

화가는 한국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한국인의 얼굴을 수십년간 그려내왔다. 얼굴의 주인공들은 언젠가는 존재를 상실하며, 그 생애를 망각하지 않기 위해 작가는 이들을 화폭에 담는다. 그의 얼굴 연작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대상이 바로 ‘할머니’다. 시장 좌판에서 물건을 팔거나, 밭을 매거나, 폐지를 줍는 할머니들의 얼굴…. 화가와 20년 가까이 사귀어 온 지인으로서, 나는 그가 할머니의 얼굴을 통해 그의 어머니를 표현해 왔다고 감히 확신한다.

화가는 전쟁이 터진 1950년 8월 아버지를 잃는 아픔을 겪었다. 당시 여섯 살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갖은 고초를 겪으며 아들들을 키웠으나, 이번에는 장남인 화가의 바로 아래 동생이 세 살 되던 해에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젊은 어머니는 남편과 아들을 가슴에 묻은 채 집안을 건사했다. 화가를 서울대로 진학시켰고 프랑스 파리 유학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삯바느질도 마다하지 않았다.

새해를 맞아 권 화가와 그의 모친 김재호 여사를 집에 모셔 떡국을 대접했다. 1924년생, 모친의 연세가 올해로 아흔일곱이다. 벽에 걸린 그림을 가리키며 농으로 “여사님과 닮았다”고 하니 “내 얼굴이 저렇게 못났나”하며 아들을 다정히 바라보셨다. 그 사랑 가득한 눈길을 나는 오래 잊지 못할 것 같다. 화가에게 “모친의 얼굴을 한번 그림으로 남기는 게 어떠냐”고 부탁을 했다. 한국인의 얼굴을 수없이 그렸으나 정작 어머니의 얼굴은 단 한 번도 그리지 못한 화가. 30년 넘게 외국서 사느라 동생에게 어머님을 모시게 한 자신을 불효자라 말하는 화가 권순철…. 그가 그린 어머니 얼굴을 보고 싶다.

와우갤러리 명예관장 신문선의 집 거실에는 권순철 화가의 그림이 걸려있다. 그 작품은 어느 노파의 주름진 얼굴이 담긴 200호 가까운 대작(大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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