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에 과학 한 스푼] 때론 채움보단 비움

임두원 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 2021. 3. 5. 03: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아내가 낙지볶음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까다롭게 고르고 골랐겠지만 아무래도 해산물이다 보니 스멀스멀 퍼지는 비린내는 어쩔 수 없습니다. 낙지를 다듬던 아내가 밀가루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합니다. 밀가루를 뿌리고 낙지를 다듬자 신기하게도 비린내가 사라집니다. 밀가루에는 눈에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구멍이 많이 존재합니다. 과학자들은 이를 다공질(多孔質) 구조라 하는데, 밀을 제분하고 건조하는 과정에서 수분이 빠져나가며 생긴 작은 구멍들입니다.

임두원 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

이 다공질 구조는 낙지 표면의 수분을 흡수하고, 이때 트리메틸아민(TMA)과 같은 비린내의 원인 성분들 또한 함께 제거됩니다. 마치 깊은 함정에 빠진 것처럼 작은 구멍 안으로 들어간 해로운 성분들은 그 안에 갇혀 버립니다.

미세한 구멍들의 존재와 그 역할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된 것은 16세기 현미경이 발명된 이후입니다. 과거에는 이 다공질 구조가 만들어내는 일들이 마치 신기한 마법과도 같았습니다. 약 2400년 전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음과 같은 이상한 현상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밀가루나 재와 같은 가루에 물을 부어도 전체 부피에는 변화가 없다. 부은 물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지금은 쉽게 답할 수 있지만, 미세한 구멍의 존재를 몰랐던 당시에는 매우 당혹스러운 문제였습니다.

이 구멍들이 냄새 제거에만 쓰이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다공질 구조는 요리의 식감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입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요리인 튀김의 핵심은 바삭함인데, 이 바삭함은 튀김옷에 형성되는 구멍들 때문입니다. 튀김옷 반죽에 포함된 수분이 고온의 조리 과정에서 증발하면 빈 공간들이 남는데, 이로 인해 튀김 표면은 마치 스펀지처럼 구멍이 숭숭 뚫린 구조가 됩니다. 튀김을 한입 베어 물었을 때의 바삭함은 이 다공질 구조가 붕괴되면서 느껴지는 청각과 촉각의 자극인 것입니다.

우리가 즐겨 먹는 빵에도 이 다공질 구조가 있습니다. 빵을 만들기 위해서는 미생물이 작용하는 발효과정이 필수적이고, 이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만들어지며 빵 반죽은 부풀어 오릅니다. 이산화탄소와 반죽에 포함되어 있던 약간의 수분이 가열과정에서 증발하면 미세한 구멍들이 생겨납니다. 다만 튀김과는 달리 수분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기 때문에 빵의 다공질 구조는 바삭함보다는 스펀지와 같은 부드러운 식감의 원인이 됩니다.

튀김에서처럼 수분이 증발하면서 만들어지는 구멍들을 ‘물리적 다공질’, 빵에서처럼 미생물이 관여하면 ‘생물학적 다공질’이라 합니다. 최근에는 더 빠르고 간편하게 다공질 구조를 만들고 구멍의 크기나 수를 정확하게 조절하기 위한 새로운 화학물질들이 개발되었습니다. 대표적으로 베이킹소다, 베이킹파우더 등이 있는데 물을 넣고 온도를 높이면 화학반응을 통해 이산화탄소가 배출되도록 고안된 물질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은 ‘화학적 다공질’이라 불립니다.

대부분 요리는 원하는 풍미와 식감을 얻기 위해 새로운 무언가를 추가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비움을 통해 훌륭한 요리가 완성되기도 합니다. 잘 비움도 요리의 기술이자 과학인 셈입니다.

임두원 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

식생활 정보 뉴스레터 🍉 ‘끼니로그’를 매주 금요일 아침 메일함으로 받아보세요. 음식에 대한 요긴한 정보와 잘 지은 밥 같은 글을 보내드립니다. 링크가 클릭되지 않는다면 주소창에 다음 주소를 입력해 구독을 신청하시면 됩니다.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22110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