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와우리] 일본이라는 '터부'

남상훈 2021. 3. 4.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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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내 '日 연구' 갈수록 쇠퇴
민감 사항 언급 부정여론 영향
양국 '완충제' 지식인 역할 중요
대화·소통의 메커니즘 구축해야

박사학위를 받고 사회에 나왔을 때, 가장 처음 들은 말은 “왜 하필이면 일본을 연구했어요?”라는 말이었다. 희망찬 포부를 갖고 이제 막 사회에 나온 신진연구자에게 적지 않게 충격적인 말이었지만, 과거보다 일본연구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줄어 취업하기도 쉽지 않고, 민감한 한·일관계와 녹록지 않은 연구환경에서 어려운 길을 택한 후배연구자에 대한 애정 어린 우려와 격려였을 것이다.

실제로 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에서 발간한 ‘2019 한국 일본학의 현황과 과제’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현재 한국에서의 일본연구는 ‘정체기’ 혹은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정치/경제/역사/문학/어학 등 분야를 망라하고 연구자의 고령화와 연구능력의 저하가 관찰되고, 대학 내 일본관련 학과가 통폐합되는 등 제도적 환경의 변화가 국내 일본연구자 재생산 메커니즘의 붕괴와 연구역량의 축소로 이어지고 있다. 비단 이러한 현상이 일본연구에서만 나타나는 특징은 아니겠지만, 일본연구의 붐이 일었던 1990년대와 비교하였을 때, 유독 두드러진다. 특히, 신진연구자의 유입감소와 연구자의 고령화는 많은 연구들에서 지적되는 사항이다. 구체적으로, ‘정치·외교’ 분야에 한정해 보았을 때, 2019년도 기준 국내 현직에 있는 한국인 일본연구자 중 30대는 5%, 40대는 22.6%, 50대 53.8%, 60대 18.6%로 나타났다. 이 중, 남성이 74.4%, 여성이 25.6%이다. 현재의 50, 60대가 지난 20, 30년의 한국에서의 일본연구를 이끌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들이 은퇴한 이후인 앞으로의 20, 30년 후가 걱정되는 이유이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그러나 사실 일본연구의 축소 혹은 쇠퇴보다 더 걱정되는 것은, 한·일관계 발전을 위해 올바른 이해를 제공할 수 있는 창구가 줄어든다는 데에 있다. 여기에 민감한 한·일관계를 언급하기 어려운 부정적인 사회적 분위기도 영향을 미친다. 소위 ‘토착왜구’ 등과 같은 정치적 표현들은 잘못된 인식을 심어 정책결정자들의 운신의 폭을 좁히고, 사회적 낙인이 찍힐 것이 두려운 지식인들은 침묵하고 만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국내 지일파(知日派)들이 한·일관계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것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해졌고, 양국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사태의 심각성에도 그나마 이루어지던 논의들은 진부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러한 상황은 일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일본 내 한국연구자의 감소뿐 아니라, 부정적인 여론 속 한국의 입장을 이해하는 일본 내 지한파(知韓派)들의 입지가 줄어들고, 자극적이고, 편향된 뉴스들이 주목받으며, 부정적 여론이 확대재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한·일 간의 대화가 줄어들고 있는 것도 우려가 깊다. 한·일이 새로운 시대를 함께 열어가고자 광범위하게 실시했던 ‘한일공동연구포럼’(1995-2008), ‘한일신시대공동연구’(1기: 2009-2010, 2기: 2011-2013) 등과 같은 한·일공동 민관협력 장기프로젝트들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고, 한·일정책네트워크는 그 존재조차 희미하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현지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체감하는 일도 줄어들었다. 비록 온라인회의를 통해 미미하게나마 대화는 이어가지만, 온라인회의의 특성상 피상적인 논의가 많아 진정 소통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결국 상대국 연구의 양적·질적 감소와 사회적 환경 및 여건 악화, 관계개선을 위한 구조 및 제도적 노력이 수반되지 않으며, 서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지게 되고, 한·일갈등의 해결과 관계개선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더 이상 늦기 전에 한·일관계를 관리하고, 완충제적 역할을 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구축해야 한다. 일회성·이벤트성의 보여주기 행사가 아니라, 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한국과 일본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을 수 있는 대화와 소통의 플랫폼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달라진 국제환경과 사회적 변화 속에서 한·일관계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재고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지식인들의 역할과 용기가 다시 한 번 중요해졌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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