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착한 글로벌 공급망' 구상, 가능할까

정유진 기자 2021. 3. 4.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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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국 기업들 해외 하청까지 인권·환경 기준 준수 법안 통과 유력..반발도 거세

[경향신문]

앞으로 독일 기업들은 자국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하청업체나 원자재 납품업체가 인권·환경 기준을 준수하지 않으면 이에 따른 법적 책임을 지고 막대한 벌금을 물게 될 것으로 보인다. 개발도상국 노동자와 자연환경에 대한 착취가 가격 경쟁력의 핵심 동력으로 작용해 온 글로벌 공급망에 패러다임의 변화를 일으킬지 주목된다.

파이낸셜타임스는 4일(현지시간) 독일 정부가 이 같은 내용의 ‘독일실사법’을 최종 승인했다고 보도했다. 연립정권을 구성하고 있는 기독민주당과 사회민주당이 과반수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법안은 오늘 9월 총선 실시 전에 의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높다.

법안이 통과되면 2023년부터 3000명 이상의 직원을 고용한 독일 기업은 하청·납품 계약을 맺은 해외 업체에 대해 인권·환경 기준 실사 평가를 진행하고, 위반 방지 및 불만 신고 절차를 마련하는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매출액이 4억유로(약 5425억원) 이상인 기업은 연 매출액의 2%까지 벌금으로 내야 한다.

게르트 뮐러 경제협력개발부 장관은 “모든 인간은 존엄하게 살 권리를 가진다”면서 “이는 독일뿐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된다”고 밝혔다. 반면 업계는 경쟁력 저하의 원인이 될 것이라며 반발했다. 독일 고용인협회는 성명을 내고 “이 법은 유럽은 물론 전 세계 시장에서 독일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시민단체들은 권장사항에 불과했던 해외 공급업체에 대한 기업의 윤리적 책임이 법적 의무 사항으로 전환된다는 점은 일단 환영했다. 하지만 법이 대기업에만 적용되는 데다 직접 계약을 맺지 않은 해외 업체에 대해서는 의무가 면제된다는 점에 우려를 표했다.

지난해 독일 환경단체인 ‘어스사이트’는 파라과이의 보호구역에서 불법 벌채된 원자재가 독일 자동차업체인 BMW의 제조 과정에 쓰였다는 사실을 고발한 바 있다. 하지만 법안이 의회에서 통과돼도 BMW는 벌채 업체와 직접 계약을 맺지 않았기 때문에 처벌을 받지 않을 수 있다. 이 단체의 샘 로손 국장은 “독일 기업의 해외 환경파괴를 바로잡을 수단이 없다”며 “법에 구멍이 너무 많다”고 비판했다.

정유진 기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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