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음"으로 싸운 성소수자들..'없음'으로 내몬 차별과 혐오
성소수자 통계조차 없고 '차별금지법'은 10년째 국회에
[경향신문]
성소수자 혐오에 공개적으로 맞서 싸워온 트랜스젠더들이 연이어 스러졌다. 지난달 24일 세상을 등진 제주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 김기홍씨(38)에 이어 이달 3일 첫 트랜스젠더 직업군인 변희수 전 육군 하사(23)가 숨진 채 발견됐다. 두 사람은 스스로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공개한 뒤 각자의 자리에서 꿋꿋이 성소수자 차별 반대 투쟁을 해왔다. 정부가 성소수자 관련 통계조차 집계하지 않는 현실과 10년 동안 국회에서 공전 중인 차별금지법 제정 불발이 두 사람의 안타까운 죽음의 배경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변 전 하사는 성별 재지정 수술을 했다는 이유로 지난해 1월23일자로 강제전역을 당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성별 정체성을 떠나 이 나라를 지키는 훌륭한 군인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제게 그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인사소청과 행정소송을 제기하며 다시 군에서 복무하기 위한 싸움을 계속했다. 군 당국은 국가인권위원회의 전역처분 취소 권고와 유엔의 국제법 위반 지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적법 절차였다”는 답변만 반복했다.
김씨는 성소수자 운동의 불모지인 제주에서 퀴어문화축제를 처음 열었다. 성소수자 혐오 세력이 지속적으로 축제를 방해했지만 2017년 ‘퀴어옵서예’, 2018년 ‘탐나는퀴어’, 2019년 ‘퀴어자유도시’라는 이름으로 축제를 계속했다. 그는 현실정치를 바꾸기 위해 2018년 지방선거와 2020년 총선 때 녹색당 후보로 출사표를 내기도 했다.
이들이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낼수록 더 큰 혐오가 쏟아졌다. 변 전 하사와 김씨의 등장에 “더럽다” “싫어할 권리도 있다” “너네끼리 위로하고 조용히 지내라”는 반응이 쏟아졌다. 심지어 부고 기사에까지 “퀴어축제는 역겹다”거나 “애통한 일이지만 성전환 군인은 이해를 못하겠다”는 댓글이 달렸다.
차별과 혐오는 성소수자의 생명까지 위협한다. 지난달 9일 인권위가 발표한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590명 중 57.1%인 337명은 2019년 한 해 동안 우울증을 경험했으며, 24.4%인 143명이 공황장애 진단이나 치료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소수자 건강 연구 프로젝트인 고려대 레인보우커넥션프로젝트가 2017년 진행한 ‘한국 성인 트랜스젠더 건강 연구’에 응답한 트랜스젠더 207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지난 1년간 자살 생각을 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정치권은 성소수자 인권 문제를 등한시하는 데서 한 걸음 나아가 혐오를 조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대선 당시 TV토론회에서 ‘동성애가 문제다. 반대하는가’라는 질문에 “반대한다”고 답변했다. 21대 총선을 앞둔 지난해 3월18일 윤호중 당시 더불어민주당 사무총장은 “성소수자 문제는 불필요한 소모적 논쟁”이라고 했다. 지난달 18일 안철수 국민의당 서울시장 예비후보는 서울퀴어문화축제 개최에 대해 “거부할 권리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했다.
성소수자를 상대로 한 차별과 혐오를 방지하는 차별금지법은 2011년 처음 국회에 발의된 지 10년이 다 되도록 입법에 이르지 못했다. 국가인권위는 4일 최영애 위원장 명의로 성명을 내고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혐오·차별로부터 보호받아 평등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국회에서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가 착수되기를 재차 촉구한다”고 밝혔다. 차별금지법안을 공동 발의한 권인숙 민주당 의원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정말 국회는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적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소수자 자살예방 프로젝트 ‘마음연결’ 02-745-9191과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카카오톡 친구 ‘띵동119’)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오경민 기자 5k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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