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꺽정 - 홍명희 [이형목의 내 인생의 책 ⑤]

이형목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2021. 3. 4.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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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깔나는 우리말의 보고

[경향신문]

일제시대 때 신문에 연재됐던 소설 <임꺽정>은 작가 홍명희가 해방 직후 북한으로 넘어가 부수상 자리에 있었기 때문인지 오랫동안 잊혀 있다가 1991년에야 비로소 10권 전체가 출판됐다. 홍명희가 <임꺽정>을 쓰게 된 이유는 잊힐 수 있는 우리 말과 얼을 살리려는 것이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사전지식이 없던 나에게도 이 책이 주는 맛깔나는 우리말의 마력은 엄청난 것이었다.

소설은 홍문관 교리 이장곤이 연산군 시절 유배지인 거제도를 탈출해 북쪽으로 향하다가 함경도에서 백정의 딸과 결혼했다는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흥미롭고 기묘한 이야기이지만 이는 역사적 사실이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 홍명희는 교묘하게 이장곤의 처삼촌 갖바치를 등장시키고 그를 조광조와 교유(交遊)하게 만든다. 조광조가 실제로 밤마다 갖바치를 만나 정사를 논했다는 설화가 살아난 것이다. <임꺽정>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이렇게 여러 지방에 전해지는 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 많다고 한다.

<임꺽정>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궁금했던 곳인 ‘죽산 칠장사’는 소설 전체에서 꽤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공간이다. 이 절은 임꺽정의 정신적인 스승이었던 병해 대사가 말년을 보내고 입적한 곳이다. 책을 읽을 때만 하더라도 죽산이 어디에 있는지, 칠장사는 실제로 존재하는 절인지도 몰랐으나 어느 해인가 청주서 서울로 국도를 통해 올라오다 경기도에 막 접어들었을 때 ‘칠장사 입구’라는 팻말을 보게 돼 궁금증이 풀렸다. 다시 몇 년이 지난 후 주말만이라도 서울을 떠나 전원 생활을 하려고 장소를 물색하다 우연히 발견해 정착한 곳이 죽산면의 한 마을이고, 칠장사와는 불과 20리 정도 떨어져 있다. 지금은 칠장사 주지 스님과도 가끔 만나 차도 얻어 마시곤 한다.

이형목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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