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라인 동시 교체, 문 대통령에 부담으로
[경향신문]
청와대가 4일 윤석열 검찰총장이 사의를 표명한 지 한 시간여 만에 문재인 대통령이 사의를 수용했다는 한 줄짜리 입장을 내놓은 것은 윤 총장에 대한 청와대의 불쾌한 심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최근 윤 총장이 보여준 거침없는 발언과 행보에 대해 청와대 내에 격앙된 반응이 적지 않았다. 다만 지난해 ‘추·윤 사태’로 홍역을 앓은 만큼 윤 총장 사퇴가 미칠 정치적 파장을 주시하며 공개 언급은 자제하는 분위기다. 문 대통령이 윤 총장과 신현수 민정수석의 거취를 함께 정리한 것도 갈등 국면을 최대한 빨리 수습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윤 총장 사퇴에 대해 한 청와대 관계자는 “언론에 나섰을 때 예상됐던 일”이라며 “정치인으로서 이젠 평가받아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여권 관계자는 “나가라고 할 때는 버티더니 선거 앞두고 나가는 이유가 뭐냐”면서 “이미 정치인의 행보를 보이는 이상, 추·윤 갈등 때만큼 파장이 크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윤 총장 사퇴에 큰 의미를 두지 않으며 무시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며 감쌌던 윤 총장이 끝내 정권과 등을 돌리게 됐다는 점에서, 민생·경제에 역점을 두려던 문 대통령에게 적잖은 부담일 수밖에 없게 됐다.
윤 총장이 사퇴의 변으로 “헌법 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고 한 것은 문 대통령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도 비친다. 윤 총장이 정치 행보를 본격화하며 대정부 비판에 나설 경우, 청와대로선 피하고 싶은 ‘문재인 대 윤석열’ 대결 구도가 형성될 수도 있다.
검찰개혁·인사를 둘러싼 갈등으로 민정수석을 두 달여 만에 다시 교체하게 된 것도 뼈아픈 대목이다. 현 정부 들어 첫 검찰 출신 민정수석으로 기용된 신 수석은 윤 총장과도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청와대가 검찰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한다는 신호로 해석됐다. 문 대통령이 사정라인을 동시 교체한 것은 결과적으로 검찰과의 갈등 관리에 실패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이주영 기자 young78@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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