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한 말로 통하는 '새집'..소통의 '새 방'이 거기 있을까 [이광석의 디지털 이후 (27)]

이광석 교수 2021. 3. 4.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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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하우스' 열풍

[경향신문]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클럽하우스’ 열풍이 거세다. 클럽하우스는 음성 기반형 소셜미디어 플랫폼이다. 트위터나 페이스북과 달리 글이나 이미지, 영상을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음성’만으로 이용자들이 낯선 이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플랫폼이다.

아직은 범용 앱이 아니어서 아이폰에서만 쓸 수 있다. 또한 초대장을 받아야만 가입할 수 있는 제한적 ‘베타’ 서비스다.

2020년 4월, 구글 출신 폴 데이비슨과 로언 세스는 알파 익스플로레이션이란 스타트업을 설립한 후 클럽하우스를 처음 출시했다. 그들은 왜 ‘음성’ 기반 소셜미디어에 주목했을까? 하나는 팟캐스트, 인터넷 라디오, 인공지능 챗봇 서비스 등 디지털 음성 시장의 성장에서 그 미래 확장성을 찾는다. 다른 하나는 인간 음성이 글·이미지·영상에 비해 인류에게 가장 오래되고 친숙하게 구사할 수 있는 보편의 소통 수단이란 점에 착안한다.

하나 음성 기반 소셜미디어란 기발한 출발에 비해 대중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서비스 개시 후 미국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창업자, 벤처 투자자들이 비공식적으로 업계 소식을 공유하는 용도로 쓸 정도로 존재감이 미미했다. 올 들어 2월 초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가 클럽하우스에 출현하면서 이용자가 급증했다. 벤처 투자도 동반 상승했다. 클럽하우스는 지난 2월 말 전 세계 가입자 수 600만명을 상회했다. 우리는 20만명을 넘긴 상태다.

■클럽하우스 사용법

클럽하우스
글·이미지·영상 없이 ‘음성’만으로 낯선 이들과 대화하는 플랫폼
가장 오래되고 친숙한 소통수단, 정서적 친밀도 높아 주목
셀럽과 전문가 상담 등 대화 주제 넓어지고 논의거리도 풍성해져

클럽하우스의 사용법은 간단하다. 초대장을 가진 누군가 아이폰 이용자를 초대하면 입장 가능하다. 트위터와 흡사하게 누군가를 팔로잉하면 그들과 주위에 연결된 사람들이 개설한 주제의 방들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 방 인원 수, 팔로잉 관계, 관심 주제 설정 등을 계산한 알고리즘 값에 의해, 개설 대화방들이 맞춤형으로 제시된다. 클럽하우스의 실시간 음성 대화는 공식적으로 녹음이나 외부 유출이 불가하다. 이용자에게 프라이버시 친화적이란 인상을 준다.

대화의 역할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우선 방장(모더레이터)이 있다. 모든 가입자는 대화방 개설을 할 수 있고, 방을 열어 대화를 주도하는 사람이 방장의 자격을 갖는다. 방장은 함께 얘기 나눌 이들을 단상 위 발언자(스피커)로 초대하거나 공동 진행자 역할을 부여할 수 있다. 일반 이용자는 기본적으로 본인 관심사에 따라 일종의 관객(리스너)으로 방에 입장해 편하게 듣는다. 누군가 발언을 하고 싶다면, 의사를 표시해서 방장의 허락을 얻은 후 단상 위 발언을 할 수 있다.

클럽하우스는 소셜미디어가 지닌 관계 맺기를 지향하면서도 음성 대화란 고유의 매력을 선사한다. 가장 큰 변화는, 내가 이제껏 몰랐던 성향의 집단이나 사람과 말을 통해 맺는 새로운 횡적 연결과 구체적 대화를 통해 친밀감을 쌓는다는 것이다. 말이 지닌 특유의 뛰어난 정서적 친밀도로 보다 돈독한 관계 형성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또 대화방에서 진상을 부리는 사람, 엘리트 의식을 지닌 사람, 노골적 홍보와 마이크 독점의 ‘꼰대’를 자정하려는 민주적 소통문화도 생기고 있다. 클럽하우스는 그렇게 자율적 소통과 상호 예의를 갖춘 발언 문화의 기초 문법을 세우는 데 크게 기여할 듯싶다.

방 주제도 점차 다채로워지고 있다. 가령 성대모사, 정치 홍보, 셀럽과의 대화, 전문가 상담(진로·교육·취업·방귀 고민 등), 상호 위로, 직장 갑질 하소연, 스타트업 컨설팅과 강의 등은 물론이고 난민, 기후위기, 동물권, 가사노동, 여성문제, 장애인 운동 등 여러 주제의 방들로 분화되며 논의거리들이 점점 풍성해지고 깊어지고 있다.

우려 또한 제기된다. 클럽하우스에는 10·20대는 아예 관심조차 없고, 30·40대 직장인 등 여유 시간이 있는 특정 세대군이 몰린다. 세대별, 소득별 소셜미디어 플랫폼 이용의 분화와 단절이 커지는 징후로 보인다. 클럽하우스 대화방에서 주고받는 혐오나 차별 발언 등을 공식 증거로 남기기 어려워 이를 제재하기도 어려운 형국이다. 음성 위주라 시청각 장애인의 서비스 이용 보조 장치가 부재한 것도 문제다. 외부 녹음 방지 등 앱 보안이 철저하다고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외부 중계 등 대화 노출이 쉽다. 클럽하우스 운영자가 대화방 내용을 어느 규모로 어디까지 저장해 보관하는지에 대한 프라이버시 정책 또한 불투명하다.

■소셜미디어의 미래, ‘인플루언서 경제’

세대·소득별 쏠림…세련된 인플루언서의 ‘구독형 말’로 짜일 공산 커
혐오·차별 발언, 제재 어렵고 프라이버시 정책도 불투명
닫힌 설계·미분된 방…방장 권위에 도전하는 수평적 재설계 중요

더 큰 본질적 문제는, 우리 언론이 ‘클럽하우스 열풍’을 직접 주조하거나 함께 편승하는 분위기라는 점이다. 이제는 신생 소셜미디어 앱 출현에 대해, 그것이 미칠 사회 효과나 관계 변화에 대해 좀 더 차분하게 바라볼 때가 아닌가 싶다. 스마트 기술의 도입과 더불어 소셜미디어 문화가 정착된 지 벌써 한 세대가 흘렀기 때문이다. 이미 소셜미디어에도 나름 나이테가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잠시 기억을 더듬어보자.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트위터는 ‘아랍의 봄’ 등 정치혁명의 무기로 쓰였다. 우리에게 초창기 트위터는 사회적 연대의 끈이자 최근까지 미투 운동 등 약자 정서의 거대한 감각 흐름을 이끌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소셜미디어는 오히려 불통을 만들고 있고, 정보 피로와 정보 과잉을 생산해왔다. 소통의 즉각성은 상호 오해를 낳고, 맞춤형 알고리즘 추천은 편향이 된 지 오래다. 감성의 연대는 쉽게 빠르게 전파되어 특정 사회 정서 흐름을 만들어냈지만, 그만큼 조루하고 급격히 휘발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문화는 정치권 알바와 우익이 만들어낸 가짜의 거짓말 전쟁터가 되었다. 소셜미디어는 더 이상 열광과 변혁의 테크놀로지만은 아닌 지점에 이르렀다.

냉정히 보자면, 이제 점점 닫히는 소셜미디어의 사회문화사적 흐름 안에서 클럽하우스의 등장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더 두고 봐야겠지만, 클럽하우스 모델은 소셜미디어의 정치사회적 소통 혁명성과 개방성이 크게 둔화된 바로 그 지점에서 탄생했다.

클럽하우스는 아직까지 수익 모델이 없으나 어떤 서비스보다 시장 논리에 민감한, 이른바 ‘인플루언서 경제’ 공식을 갖고 태어났다. 클럽하우스는 처음부터 미국 벤처 투자자들이 주목해왔던, 크리에이터 혹은 인플루언서 중심의 온라인 비즈니스 수익 공식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미 회사는 인플루언서를 중심으로 작동하는 내부 ‘크리에이터 보조금 프로그램’이란 금전 보상 방식 또한 구상 중이다. ‘인플루언서 경제’는 우리가 알던 기존 셀러브리티, 기업가, 정치가 등은 물론이고 온라인에 특화된 인플루언서 후보군을 문화 생산과 유통의 주력부대로 삼는 신경제 문화산업 부흥론을 일컫는다. 기존 유튜버 모델처럼, 음성 시장에서도 인플루언서들이 구축하는 명성을 시장 가치화하는 ‘소셜’ 문화산업을 구상하고 있다. 지금의 평평하고 자유로운 말의 향연과 달리, 세련된 인플루언서들의 구독형 ‘말’들로 새롭게 판이 짜일 공산이 크다.

■‘목소리’ 채굴의 신경제

생생한 ‘말’과 대화의 각축장은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곧 ‘목소리 채굴 경제’를 개척한다. 대중이 매번 글을 올리고 사진을 올리고 영상을 편집해 올리는 행위가 이제까지 소셜 플랫폼 비즈니스를 떠받쳐왔다는 것쯤은 상식에 속한다. 당연히 클럽하우스 방들에서 와글거리는 음성과 대화는 그 자체로 닷컴 공장의 땔감이 된다. 트위터나 페이스북도 이와 유사한 음성 서비스를 곧 개시한다고 할 정도다. 글·이미지·영상에 이어, 이제 인간 음성과 대화가 자본주의의 부를 불리는 신흥 자원이 되었다는 점에서 실리콘밸리 혁신가들은 명민하다. 이들 ‘소셜’ 닷컴들이 앞으로 어떤 수익 모델을 구상하고 이를 위해 어떤 종류의 인플루언서를 양성해 적소에 배치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대화방 설계나 대화의 질도 급격히 달라질 것이다.

낙관의 징후일까? 중국과 태국 등 권위주의 국가들에서는, 클럽하우스가 정치 민주화 논쟁을 위한 공론장으로 암약한다고 한다. 그들 정부에 의해 서비스가 차단되기도 했으나, 우회 접속을 돕는 가상사설망(VPN)이나 인근 국가를 통해 재접속을 시도하는 모양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우리네 트위터가 정치사회적 연대 감각을 키웠던 정황과 꽤 닮아 있다. 그렇다고 마냥 낙관적으로 볼 수만도 없다. 소셜미디어 도입 초기에 중앙 통제력이 약화된 틈을 탄 ‘상대적 자율성’ 효과 덕분일 수도 있다.

근본적으로는, 클럽하우스의 분화된 방 설계 방식이 지니는 한계 또한 인정해야 한다. 처음부터 작은 주제의 방들로 쪼개진 클럽하우스 구조는 완전히 열려 있는 개방적 네트워크 구조의 트위터와도 쉽게 대별된다. 분화된 방 구조는 말의 깊이와 다양성 대신 말의 활력과 연결에 제약이 될 수 있다.

클럽하우스에서는 말이 무한히 복제돼 빠르게 전파되는 ‘바이럴’ 파장과 외부 확장이 일어나기 어렵다. 즉 누군가의 말이 방을 빠져나오는 순간 세력을 잃고 단절돼 끊기는 단속성이 크다. 오히려 클럽하우스는 공통의 정치사회적 의제 확산보다는 특정 취향과 세부 토픽에 따라 대화방들로 나뉘어 밀도 있게 정주행하는 대화형 모델에 적합하다. 공통의 사회 의제와 감각 확장에 취약해서, 외부로 나가려는 들끓는 ‘떼’ 정서가 존재하더라도 이를 좁은 방 안에 가둘 공산이 크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말의 파괴력과 외부 확장성을 무기로 삼아 평평하고 외부에 개방적이었던 초기 트위터 소셜미디어 모델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그래서일까, 클럽하우스 이용자들은 방장 중심의 위계적 설계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기도 한다. 방 안에서 평등한 듯 보이는 대화 형식에 비해 현실에서 권위를 쥔 이들이 방장이 되고, 그들의 위력이 아주 쉽게 각 대화방에 복제되는 경향이 감지된다. 관객들은 방장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교체하거나 내쫓기 어렵다. 방이 싫으면 나갈 권리를 누리는 것 외에 대부분 듣는 위치에 있다.

■소셜미디어 재설계하기

클럽하우스의 외부로 닫힌 설계와 끊임없이 미분된 방의 내적 위계 구조로 인해, 소셜미디어 연구자 다나 보이드(Danah Boyd)의 말대로라면 이 신생 미디어에서는 ‘맥락붕괴(context collapse)’의 파장이 미칠 확률이 낮다. 맥락붕괴는 나와 동일 가정을 공유하는 집단과 달리 내 말을 매우 다르게 해석하는 전혀 다른 사람들과 평등한 관계 속에서 조우할 때 일어나는 기성 관계의 파괴 효과를 지칭한다.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고 대화방 상대에게 반말하고 ‘~님’을 붙인다 하더라도, 대체로 기성의 권위·권력 의존도가 높은 클럽하우스 현실에서는 사실상 맥락붕괴를 마주하긴 어렵다.

민주적 기술소통이 사라진 빈자리를 비집고, 인플루언서 중심의 문화노동자 양성과 그들의 명성에 연결된 팬덤 관계가 하나의 대세처럼 군림할 듯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 실리콘밸리의 자유주의 혁신가들이 무엇을 의도하든 기술의 또 다른 ‘용도 변경’은 늘 잠재한다. 어제 혁명의 소셜미디어로 여겨졌던 것이 오늘 가짜뉴스의 온상이 되지 않았던가. 똑같이 정반대 진화 경로도 가능하다. 언제든 기술은 애초 의도와 달리 그것을 벗어나려는 반역과 이탈의 계기를 지니고 있다.

클럽하우스 방장의 권위에 도전하는 이용자 중심의 재설계는 중요하다. 저 멀리 실리콘밸리의 기술 설계 변화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우리 사회 기술 현실을 만드는 일은 더 중요하다. 즉 그것이 말이건 글이건 영상이건, 관계적 감각과 수평적 소통을 이끌어낼 수 있는 우리의 민주적 ‘소셜’ 플랫폼의 창안은 늘 어렵지만 중요한 시나리오이다.

▶이광석 교수



테크놀로지, 사회, 문화가 서로 교차하는 접점에 비판적 관심을 갖고 연구와 집필 활동을 해오고 있다. 현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IT정책대학원 디지털문화정책 전공 교수로 일한다.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공동 편집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테크노문화, 인류세, 포스트휴먼, 플랫폼과 커먼즈, 비판적 제작문화에 걸쳐 있다. 대표 저서로 <디지털의 배신> <데이터 사회 비판> <데이터 사회 미학> <뉴아트행동주의> <사이방가르드> <디지털 야만> 등이 있다.

이광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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