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직원 "우린 투자 말란 법 있나" 적반하장식 글 '공분'

나기천 2021. 3. 4.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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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 지분 쪼개 논·밭 등
매입 구매한 밭에 빽빽이 묘목 심어
토지보상 노린 전형적 투기수법
전문지식·노하우로 사익 편취
일부는 경매 '일타강사' 활동도
4일 오전 경남 진주시 충무공동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 입구. 연합뉴스
“LH 직원들이라고 부동산 투자하지 마란 법 있나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으로 추정되는 이가 직장인 온라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올린 글이 4일 공개돼 국민에게 다시 한 번 허탈감을 안겼다.

LH 일부 직원의 광명·시흥 신도시 사전 투기 의혹이 제기되 공분이 인 상황인데 이 게시물의 작성자는 “내부 정보를 활용해 부정하게 투기한 것인지, 본인이 공부한 것을 토대로 부동산 투자한 건지”를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기 때문이다.

부동산 업계의 생각은 완전히 다르다. 광명·시흥 사전 투기 의심 직원들이 지탄받는 이유가 치밀하게 진행된 그 방식 때문이라는 것이다.

4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이 연루된 투기 의혹을 옹호하는 취지의 댓글이 올라와 있다. 블라인드 캡처
지난 2일 참여연대가 공개한 LH 직원 구매 의심 토지 현황 자료를 보면, 시흥시 과림동의 한 논은 2019년 6월 3일 2개로 나뉘어 5명의 LH 임직원에게 팔렸다. 논 중 3996㎡는 직원 4명이 15억1000만원에 공동으로 매입했고 2793㎡는 직원 1명이 다른 지인과 함께 10억3000만원에 사들였다. 3996㎡ 논을 산 직원 2명은 33.3%씩, 나머지 2명은 절반인 16.6%씩 지분을 나눠 보유 중이다.

3996㎡ 논을 사는 데 동참한 한 직원은 지난해 2월 27일에는 과림동의 밭에도 투자했다. 다른 직원을 포함한 6명과 함께 22억5000만원에 5025㎡를 사들였다. 이후 이 필지는 1407㎡, 1288㎡, 1163㎡, 1167㎡ 등 네 필지로 나뉘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지분 쪼개기와 필지 나누기가 토지 보상을 노린 전형적인 투기방식이라고 입을 모은다. 5025㎡의 밭을 LH의 대토보상 기준이 되는 1000㎡ 이상으로 쪼갠 것을 보면 더 명확해진다. 1000㎡까지의 땅은 신도시가 들어서면 입주권이 나오지만 이를 넘긴 나머지는 현금청산 대상이 된다. 따라서 이 땅을 그대로 뒀으면 집 1채에 감정가에 기반한 현금을 받는 게 전부이지만, 4필지로 쪼개면 집 4채와 현금보상을 받을 수 있다.
지분을 쪼갠 것도 비슷한 목적이다. 단순히 투자한 금액대로 지분을 나눈 것일 수 있지만, 이는 보상과정에서 보상액을 올릴 수 있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 LH는 추후 보상과정에서 4명이 지주가 모두 동의할 수 있는 금액으로 협상해야 하고, 1명이라도 이에 동의하지 않으면 ‘알박기’가 돼 개발이 더뎌진다.

밭을 산 뒤 빽빽하게 심은 묘목도 결국은 돈이다. 이들은 지장물로 분류돼 이전비와 나무 1그루당 보상금이 책정된다. 나무는 다른 작물과 달리 심어만 놓으면 알아서 크기 때문에 평소에 관리할 필요도 없다. LH 직원들이 매입한 필지에는 묘목 2000여그루가 급하게 심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밖에도 LH 직원들은 부족한 매입대금을 금융기관에서 대출받으면서 금리가 낮고 다양한 혜택이 있는 농지대출을 이용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일부 LH 직원은 사실상 시장에서 가치를 쳐주지 않는 맹지까지 사들였다. 장차 신도시로 개발될 것이라는 확신이 없으면 단행하기 어려운 투자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LH 직원의 광명시흥 신도시 땅 사전 투기 의혹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4일 경기 시흥시 과림동 일대에 묘목이 식재되어 있다. 시흥=남정탁 기자
한 부동산 시행사 관계자는 “지금까지 알려진 내용을 보면 아파트나 대규모 개발 현장에서 통용되던 대표적인 투기 방식이 거의 다 포함됐다”며 “우리나라에서 토지보상 업무는 거의 LH가 다한다고 보면 되는데, 이들이 전문가적인 지식과 노하우를 활용해 사익을 편취하려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LH 직원이 무단으로 토지경매 분야의 이른바 ‘일타강사’로 활동해 문제가 된 사례도 있다. LH에 따르면 직원 A씨가 한 유료 사이트를 통해 토지 경·공매 강의를 해서 지난 1월 말부터 감사를 받고 있다. LH는 사규에 업무 외 다른 영리활동 등의 겸직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LH 관계자는 “겸직 금지 의무를 위반하고 거짓말로 회사의 명예를 실추한 사실이 확인돼 인사 조처와 함께 중징계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나기천 기자 n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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