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 땅투기' 유체이탈 화법 변창흠..사과 회견에서도 고개는 안숙여

세종=박정엽 기자 2021. 3. 4.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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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 과도한 의존’ 지적에도
"공공주택사업 차질 없이 추진"
LH 사장 때 책임론 인정했지만
‘비위 방치’ 지적 등엔 함구

자신이 사장으로 재직하던 시기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광명·시흥 신도시 예정지 땅투기 의혹이 제기됐던 지난 2일 산하 공기업 기관장을 불러놓고 "청렴도를 높여라"고 말해 ‘유체이탈 화법’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이틀만인 4일 사과 표명을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일 3기 신도시 후보지에 대한 국토부, LH 등 관계기관 직원들의 토지거래를 전수조사를 지시한 데 이어, 정세균 국무총리가 이날 "공공기관 직원들이 부적절한 행위로 국민의 신뢰를 저버리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 큰 심려를 끼쳤다"면서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한 뒤에 마지못해 사과를 하는 모양새가 연출된 것이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4일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변 장관은 이날 오후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에서 "소관 업무의 주무부처 장관이자 직전에 해당기관을 경영했던 기관장으로서 책임을 통감하며 국민 여러분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나 변 장관은 뒤늦은 사과에 나섰으면서도, 브리핑에 앞서 처음과 마지막 인사 때를 제외하고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소관 업무의 주무부처 장관이자 직전에 해당기관을 경영했던 기관장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책임이 있는지 밝히지 않았다.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기자회견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변 장관은 이날 브리핑 후 이어진 질의응답에도 무성의하게 대응해 논란을 샀다. 전체 9분 30초 동안 진행된 기자회견 중 2분 50초 동안 준비된 발표문을 읽은 뒤, 약 6분 동안 국토부 출입기자들이 사전에 전달한 질문에 답변했다. 총 다섯가지 질문에 대해서 답을 한 뒤 자리를 떴는데, ‘LH 사장 재임 기간의 징계가 없었다는데 관리 감독 책임을 통감하나’, ‘LH 재임 시절 청렴도가 떨어진데 대한 입장은 무엇인가’ 등 일부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기자들 사이에서 "장관이 너무 급하게 브리핑 장소를 떠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왔다.

변 장관은 사장 재임기 LH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직무 수행 중 알게 된 정보를 이용해 부동산 등 재산상 거래·투자를 금지하는 ‘직무별 행동윤리수칙’를 만들었지만, 비위 사실 적발 노력은 거의 하지 않았다. 이에 각 직무별로 발생할 수 있는 비위 행위 유형에 대해 알면서도 이를 방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일각에서는 변 장관이 현정부 공공주도 주택공급정책의 추진동력을 지키기 위해 마지못해 카메라 앞에 섰다는 지적이 나왔다. 땅투기 정국이 계속돼 LH에 대한 신뢰도가 본격 추락하면 ‘LH’라는 사업주체를 중심으로 짜여진 변창흠표 2.4 공급대책이 무용지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4 대책은 크게 신도시 등 공공택지를 조성하는 방식과 도심 지역의 밀도를 높이는 공공주도 재개발·재건축 방식으로 나뉘는데, 둘 다 핵심적인 집행 담당기관이 LH다. 특히 공급목표 47만3000호에 이르는 공공주도 재개발·재건축 사업은 전적으로 LH의 역할에 기대고 있다. LH는 ‘우선입주권’ 등의 당근을 써서 기존 토지주의 3분의 2 이상에게 소유권을 넘겨받고, 이를 통해 사업 속도를 높이는 핵심적인 역할을 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2.4 대책 집행을 위해 3월중으로 LH 등 공기업이 주요 사업의 시행 주체가 될 수 있도록 개정을 추진 중인 관련 법안들의 국회 처리를 위해서도 변 장관의 빠른 사과가 필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4월 재보선을 앞둔 정치권이 국회 상임위 법안 논의 과정에서 LH의 권한 확대 문제를 곱게 볼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법적 근거가 마련돼 공포된 뒤에야 후보지를 선정하고 본격적인 사업을 추진할 수 있어, 국회 논의가 밀릴 경우 애초 예정된 ‘6월 후보지 선정’이라는 시간표도 늦어질 수 있다.

변 장관은 과도한 LH 중심 공급정책에 대한 변경 요구에 대해서도 외면했다. 변 장관은 사과문 마지막에 "이번 일을 계기로 국토교통부와 유관 공공기관 종사들이 더욱 엄정한 자세로 국민의 주거안정을 위한 공공주택사업을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LH중심 사업이라는 기조를 계속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셈이다.

전문가들은 LH 등 공기업 중심으로만 짜여진 2.4 공급대책에 문제가 있으며, LH 중심의 공급 대책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LH 리스크에 국가 전체의 주택공급계획이 너무 큰 영향을 받는다는 이야기다. ‘83만호’ 분량의 공급을 약속한 2.4대책은 민간에 대한 불리한 제약은 유지하면서 LH 등 공기업을 통한 사업에는 인센티브를 주고 있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물량이 LH라는 조직이 없으면 실현되기 힘든 상황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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