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거나 시간 쫓기거나..여성노동자 59%, '화장실 문제' 마음고생

박준용 2021. 3. 4.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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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노동자 일터 내 화장실 이용 실태 및 건강영향 연구 결과
화장실 이용 어려운 경우 91%가 우울감·자존감 저하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화장품 노조연대 노동자 등이 2019년 “판매노동자 고객 화장실 사용 제한으로 노동자들이 건강권을 침해받고 있다”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철도운전직 여성노동자 ㄱ씨는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 늘 전력질주를 해야한다. 기차가 정차한 1∼4분 사이에 왕복 최대 140미터를 뛰어 역내에 있는 화장실에 다녀와야 하기 때문이다. 분초 단위의 업무스케줄이 짜여져 있어, 그 시간 외에는 짬을 내기가 어렵다. ㄱ씨에게 화장실을 언제 갈지는 늘 큰 고민거리다. ㄱ씨처럼 업무 중 화장실에 가는 문제로 여성노동자 열명 중 여섯명이 우울감·자존감 저하 등 심리적인 문제를 경험한 적이 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4일 오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여성노동자 일터 내 화장실 이용 실태 및 건강영향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토론회를 열었다. 지난해 민주노총 여성 조합원 889명을 상대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58.9%가 화장실과 관련된 심리적인 문제가 발생한다고 답했다. 세부적인 심리문제의 종류를 보면, 불안감을 느낀다고 답한 이가 64.5%, 자신감·자존감 저하가 26.5%, 우울감 20.8% 등이었다. 연구 과정에서 전체 대상자 중 화장실 이용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것으로 분류된 189명의 경우엔 91%가 심리적 문제를 느낀다고 답했다. 또 화장실 이용이 어렵다는 이들을 상대로 추가조사를 진행해보니, 화장실 이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83.1%가 수분섭취를, 74.5% 음식물 섭취를 제한한 적이 있었다.

여성노동자 40명을 대상으로 이뤄진 심층 조사 결과에서는 이들이 처한 어려움이 구체적인 사례로 확인됐다. 방진의류 등 여성노동자가 회사가 규정한 복장으로 갈아입어야하는 ㄴ씨는 10분간 주어지는 휴게시간에 화장실을 갈 시간이 나지 않았다고 답했다. 고객의 집을 방문해야 하는 여성 노동자 ㄷ씨는 고객에게 화장실 이용 요청을 하기가 꺼려져서 참고 있다가 결국 해당 집에 앉아있는 방석에 생리혈을 쏟은 경험을 털어놓기도 했다. 여성 타워크레인 기사 ㄹ씨는 “운전하는 타워크레인 아래에 남성용 간이 소변기를 설치돼 있는데, 이동할 때마다 신경 쓰였다”고 말했다.

심층조사에 응한 이들은 여성에 대한 성차별적 인식과 업무 압박이 심한 현실도 여성이 화장실 이용을 참게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입을 모았다. “현장에서 일하다 ‘저 화장실 갔다 올게요’ 하면 다른 사람한테 피해를 준다고 할 수 있어서 무작정 참는 식”(ㅂ씨)이라는 것이다.

철도운전직 여성노동자가 심층조사에서 자신이 겪고 있는 화장실 문제를 표현한 그림. 민주노총 제공

이처럼 화장실 이용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여성노동자들은 비뇨생식기계 질환을 호소하기도 했다. 지난 1년 사이 화장실을 자주 가지 못하는 경우 발생하는 방광염을 앓은 적이 있다고 답한 이는 전체의 18%나 됐다. 연구에 나선 이나래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 활동가는 “화장실 문제도 ‘건강권’에 해당한다는 인식이 확대돼야 한다”면서 “일터의 화장실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현정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국장은 “화장실과 관련된 산업안전보건기준 규칙은 사무실 청결 관리 중 하나로만 화장실 문제를 다루고 있다”며, “노동자의 건강을 위해 화장실 문제에 대한 법제도(산업안전보건법 등) 차원의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방문서비스노동자의 경우 동선을 고려해 화장실을 갖춘 이동형 쉼터를 제공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한편 이날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직장 내 성 평등 조직문화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에 응한 남성·여성 조합원 618명(여성 360명·남성258명)을 분석한 결과, 여성 70%가 코로나19로 인한 긴급한 가족돌봄이 지속될 때 직장 내 불이익을 우려한다고 답했다. 반면 남성은 53.8%로, 여성보다 16.2%포인트 낮았다. 또한 자녀를 둔 여성의 진급이 더딘 현실도 조사를 통해 드러났다. 자녀가 있는 여성은 자녀가 없는 여성에 견줘 대리급에선 4.2년, 과장급에선 4.2년 등 4년 이상 진급이 더딘 것으로 조사됐다.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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