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목 심고, 지분 쪼개고, 맹지 사들여..LH 직원들, "전형적인 투기꾼 솜씨"
'업무 연관성' 입증하기 어려워 처벌 여부는 미지수
[경향신문]
정부가 3기 신도시 전체를 대상으로 땅 투기 의혹에 대한 합동조사에 나서는 상황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전·현직 직원들의 노골적인 투기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의혹을 받는 직원 다수가 토지보상 업무와 직접적 관련이 있거나, 보상받기 위한 기준에 맞춰 ‘토지 쪼개기’에 나선 것으로 나타났다. 묘목을 심고 ‘맹지’를 사들인 정황 등을 두고 “전형적인 투기꾼 솜씨”라는 반응이 나온다.
4일 경향신문이 LH 직원들의 토지현황 자료와 등기부등본을 대조해본 결과 최소 6명이 토지보상과 관련된 업무를 맡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2019년 6월 시흥시 과림동 2739㎡ 토지를 산 A씨는 당시 과천의왕 신도시 사업단장이었다. A씨는 6억원 대출을 받아 10억3000만원에 땅을 사들였다. 그는 2013년 광명·시흥, 2017년 하남 신도시 사업본부에서도 토지보상 업무를 담당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그 밖에 경기지역본부에서 보상1·2부 직원들이 나란히 3억5000만원씩 대출을 받아 지인들과 함께 3996㎡(1210평) 규모의 땅을 15억원에 사들이고, 보상민원 대응 등 보상 업무를 주로 하는 B씨도 배우자 등과 함께 시흥시 무지내동에 5905㎡짜리 땅을 샀다.
지난 3일 시흥시 현장에서 만난 공인중개사 등은 이들이 매입한 토지를 두고 “전문가들 솜씨”라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이들이 사들인 필지 곳곳에는 한 뼘 단위로 빽빽하게 묘목이 심겨 있었다. 관리가 간편한 버드나무, 측백나무 등을 급히 심은 것으로 보였다. 과림동 한 공인중개사는 “나무를 심어두면 의심을 피하기 쉽고, 묘목 수에 따라 나중에 값도 더 받을 수 있다”며 “보상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해놓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토보상 기준이 되는 1000㎡에 맞춰 ‘지분 쪼개기’를 하거나, 보상이 아니라면 투자가치가 떨어지는 ‘맹지’를 사들인 경우도 다수였다. 과림동의 5025㎡짜리 밭은 1407㎡, 1288㎡ 등 1000㎡ 넘게 네 필지로 쪼개 LH 직원 5명을 비롯한 7명이 지난해 2월 매입해 지분을 나눠 갖고 있었다. 이 땅과 B씨가 매입한 땅은 대로변과 먼 구석에 있다. 또 다른 공인중개사는 “대로변과 뚝 떨어져 있거나 진입로가 없는 맹지는 활용도가 떨어진다”며 “개발 기대 없인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 곳이라 투기 목적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대토보상의 ‘순위’를 높이기 위한 위장전입 정황과 구매한 농지를 일명 ‘대리경작’을 통해 관리해온 정황도 포착됐다. LH 직원 외 2인이 공동 소유한 토지의 경우 서울에 거주하던 소유주 한 명이 지난해 시흥시로 주소지를 옮긴 것으로 확인됐다. 대토보상에선 토지보유와 동시에 현지에 거주하고 있어야 1순위를 받을 수 있다. LH 직원 등 4명이 소유 중인 한 토지의 경우 현지에서 만난 한 주민이 “이 땅은 대대로 내가 경작해온 땅”이라며 소유권을 주장했다. 통상 투기목적의 농지를 보유할 때 현지 주민을 통해 대리경작하는 방법으로 각종 규제를 피하는 사례가 있다.
투기가 의심되는 정황들이 드러나고 있지만, 실제 처벌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택지 개발 업무를 수행하는 공직자 및 공공기관 임직원의 투기행위를 금지하고 처벌하는 법은 부패방지법과 공공주택특별법이다. 이때 ‘업무 연관성’이 유무죄 판단을 가르는데, 신도시 지정 업무를 담당하면서 토지를 취득하면 위법행위가 된다. 하지만 보상업무를 담당하는 경우 뚜렷한 ‘업무 연관성’을 입증하기 어려워 처벌 여부가 불확실한 상황이다. 국토부와 LH는 최초 사안이 불거진 뒤 “신규 후보지 관련 부서 및 광명·시흥 사업본부 근무자들은 아니다”라고 밝혔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자 “더 조사한 뒤 공개하겠다”고 물러섰다.
국토부는 이날 전수조사가 진행 중인 3기 신도시의 6개 택지지구 외에도 공공택지로 개발 중인 과천지구와 안산장상을 조사 대상에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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