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권일의 다이내믹 도넛] '토건정치' 너머

한겨레 2021. 3. 4.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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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권일의 다이내믹 도넛]
관건은 목소리 큰 소수가 아닌 다수를 가급적 많이 참여하게 만드는 규칙을 고안하는 것이다. 만약 목소리 큰 소수를 제어하지 못하면 소위 ‘과두제의 철칙’이 작동해 그들 이익에 봉사하는 사업만 추진되기 때문이다.

박권일ㅣ사회비평가

부산에 살던 청소년 시절에는 늘 콩나물시루 같은 만원버스에 매달린 채 등교했다. 그래서 요즘 이 도시의 스산한 풍경은 볼 때마다 낯설다. 한때 “한국 최대 직할시”의 시청이 있었고 국제영화제의 심장부였던 중구 인근 골목들은 밤이 되면 유령도시처럼 으스스해진다. “아시아 최대” 규모가 된 영화제의 주요 행사도 더 이상 남포동에서 열리지 않는다. 지금은 북동부 지역, 해운대와 기장이 부산의 중심이자 ‘강남’이다. 문제는 도심의 이동이 아니라 도시 전체가 비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얼마 전 부산 어느 대학교는 경영난을 이유로 학교 청소용역 노동자들을 해고했다. 대신에 총장, 교수, 교직원들이 학교 청소를 한다고 한다. 지방의 다른 대학들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거나 더 나쁘다. 학기가 시작되었지만 학생이 없다. 숱한 대학들이 정원 미달이다. 광주의 어느 대학은 신입생에게 아이폰과 에어팟을 준다고 했음에도 올해 정시 경쟁률이 0.8 대 1에 그쳤다고 한다.

시설 좋은 병원들도 대부분 서울과 경기도에 다 몰려 있다. 청년들만 서울로 가는 게 아니라 몸이 아픈 노인들도 수도권으로 간다. 문화 인프라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니 형편만 되면 서울로 가고 지방엔 사람이 남아나지 않는다(25년 전 상경한 나도 예외는 아니다). 수도권 일부와 세종시를 제외하고 모든 지역들이 비슷한 상황이다. 그 와중에 서울 인구 폭증을 막는 건 성층권을 뚫어버린 집값 정도다.

‘균형발전’ ‘지방소멸’ ‘압축도시’ 등 그간 수도권과 지방 격차에 대한 수많은 담론과 정책들이 나왔지만 눈에 보이는 성과는 별로 없었다. 공허한 말의 성찬들 속에서 정부는 ‘도시재생’이란 명목으로 다시 개발중심·공급중심 정책을 펴거나 가덕도 신공항처럼 정치공학적 토건사업을 반복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가덕도 신공항은 문재인 정부의 ‘4대강’ 사업”이라고 비판한 것은 큰 틀에서 옳은 이야기였다. 신공항 건설이 야기할 생태 환경 파괴 또한 무시할 수 없는 문제다.

그러나 이런 생각도 든다. 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이 똑같은 토건세력이고 그들의 정책이 틀렸다고 얘기하려면, 적어도 그들과 차별화된 대안을 내놓아야 하지 않을까. 신공항 추진 과정 자체가 문제임은 말할 것 없지만, 그럼에도 그런 정치공학적 술수를 가능하게 한 ‘사회적 조건’에 대한 대응은 필요하다. 수도권과 지방 격차, 그 격차에서 비롯한 지방민의 울분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정의당을 포함한 ‘진보정치’ 세력이 민주당과 국민의힘이라는 양대 ‘토건정치’ 세력의 대안이 되려면 “토건 반대”만으로는 부족하다. 현실적으로도 일체의 토건사업 없는 지방 활성화는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니 토건 일변도가 아닌 종합적인 대책을 꺼내 보여야 한다. 실현 여부야 차치하더라도, 대중의 언어로 작성된 비전과 로드맵 정도는 제공을 해야 시민들도 지지할 명분이 생길 게 아닌가.

2019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바네르지와 뒤플로는 오랜 현장연구를 통해 가난한 사람이 우둔하기는커녕 매우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 2012). 또한 이들은 빈곤을 줄이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가난한 사람들’이 직접 지역공동체 운영에 참여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관건은 목소리 큰 소수가 아닌 다수를 가급적 많이 참여하게 만드는 규칙을 고안하는 것이다. 만약 목소리 큰 소수를 제어하지 못하면 소위 ‘과두제의 철칙’이 작동해 그들 이익에 봉사하는 사업만 추진되기 때문이다.

바네르지와 뒤플로는 인도네시아 크차마탄 개발 프로젝트를 사례로 든다. 프로젝트 초기에 마을총회에 참석하고 발언한 사람들은 전부 마을의 유지였다. 그러나 규칙을 조금 바꿔 무작위 선발된 주민들을 참석하게 하자 회의가 활발해졌음은 물론, 비판적이며 공익적인 의견이 나와서 마을 발전에 더 도움이 될 수 있었다.

수도권과 지방 격차 문제에서도 이런 관점은 필수적이다. 소수의 지역 토호, 관료, 학자, 거대정당 소속 정치인들이 지역 발전 논의를 주도하면, 역시 과두제의 철칙에 따라 지방 내부의 양극화만 심화시키고 가장 힘든 지역 주민의 삶은 그대로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토건정치’를 넘어서는 진보적 대안에는 무엇보다 지역 격차의 계급성, 그리고 지방자치-민주주의를 가장한 과두제에 대한 치밀한 고려가 담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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