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에서 화려한 볼거리보다 중요한 것[플랫]

플랫팀 twitter.com/flatflat38 2021. 3. 4.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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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올해 초, 영화주간지 씨네21은 ‘2021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망’에 대한 특집 기사를 내놨다. 기사에서 봉준호·최동훈 감독 등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 키플레이어 55인이 답변한 2021년 주요 장르 및 소재 1위는 SF였다. “드라마, 스릴러, 액션 장르가 전통적으로 우세한 한국 상업영화 시장에서 SF의 미래가 이토록 밝게 예측된 적은 없었다”는 말로 시작한 기사는 ‘SF 시대’ 도래의 배경에 “<신과 함께> 시리즈라는 국내 IP의 신기원, 그리고 소재 고갈의 위기 속에서 과학·기술 영역을 소재로 한 서사물의 전 세계적 증가 추세”가 있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전망은 TV에도 적용된다. SF는 영화보다 규모와 자본의 제약이 많은 TV 드라마에서 더 찾아보기 힘든 장르였지만, 최근 들어 인상적인 작품들이 잇달아 등장해 눈길을 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하반기 공개된 SF 옴니버스 드라마 <SF8>이다. MBC, 한국영화감독조합, 그리고 토종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업체 웨이브가 협업한 <SF8>은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던 SF를 로맨스, 액션, 코미디 등 주류 장르와 결합하고 동시대적 이슈를 반영한 이야기로 친숙하게 풀어냈다. 이 협업 프로젝트를 이끈 민규동 감독이 강조했듯, ‘크고 어렵고 서양의 독점 장르로 인식되는 SF 장르를 우리가 만든다’는 의의 이상으로 탄탄한 완성도를 지닌 작품이었다.

JTBC 드라마 <시지프스> JTBC제공

비슷한 시기에는 시간여행 시스템을 둘러싼 갈등을 그린 SF드라마 <앨리스>(SBS)가 방영됐다. “SF장르는 복잡하고 지루하다는 편견을 깨기 위해 가족애에 초점을 맞춘 휴먼SF”를 표방했지만, 그동안 주로 판타지로 소비되어온 시간여행 소재에 과학적으로 접근한 새로운 시도가 돋보였다. 다음달 두 번째 시즌이 공개될 예정인 넷플릭스 시리즈 <좋아하면 울리는>도 SF에 대중적인 멜로를 결합한 드라마다. 흔한 삼각관계를 소재로 한 이 작품은,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앱으로 알려주는 시대라는 SF적 세계관으로 참신하게 풀어내면서 초연결 시대의 새로운 사랑법을 성찰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17일, 또 한 편의 SF드라마가 안방극장을 찾아왔다. 조승우·박신혜 주연의 <시지프스>(JTBC)는 미래를 뒤바꾸게 될 기술을 개발한 천재공학자(조승우)와 그를 위해 먼 길을 거슬러온 구원자(박신혜)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동안 안방극장의 규모에 맞춰 아이디어에 더 집중한 기존의 SF 드라마와 달리 스펙터클한 볼거리를 전면에 내세운 대작이라는 점에서 화제를 모았다. “드라마에서는 처음 시도하는 방식”이라는 첫 회의 비행기 재난신처럼 다양한 특수 기술을 통해 흥미진진한 관전포인트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SF 옴니버스 드라마 <SF8>, SF드라마 <앨리스> MBC,SBS제공

SF 드라마의 증가는 안방극장에 색다른 볼거리를 선사하고 이야기의 다양성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무엇보다 보수적인 현실을 배경으로 한 작품 안에서는 말하기 어려운 소재를 ‘다른 세계’에 대한 상상력으로 풀어간다는 데 가장 중요한 의의가 있다. 가령 <SF8>은 재난이 보편화된 미래에서 삶에 최선을 다하는 성소수자의 사랑을 아름답게 그려냈고(‘우주인 조안’), 안드로이드와 인간이 공존하는 세계에서 모든 존재의 존엄한 기본권에 대한 사유를 담아냈다(‘인간증명’ ‘간호중’). 요컨대 SF의 성패는 대안적 미래를 제시하는 그 상상력에서 갈린다.

📌 [김선영의 드라마토피아]‘SF8’의 야심찬 콘텐츠 실험

그런 측면에서 2회의 시대착오적 대사로 비판을 받은 <시지프스>는 스펙터클에 신경 쓰는 만큼 진보한 이야기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시대의 흐름에 맞춰 강한 여성 캐릭터를 투톱으로 내세웠음에도 불구하고 ‘미투’ 운동을 폄하한 대사로 성인지 감수성의 한계를 드러낸 지점에서, 또 한 편의 SF 판타지 대작 <더 킹: 영원의 군주>(SBS)가 실패한 사례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더 킹> 역시 주로 남성들이 맡아왔던 역할을 강인한 여성 캐릭터로 설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와이어 없는 속옷은 가슴을 못 받쳐준다”는 구시대적 대사로 비판에 휩싸인 바 있다. 두 작품의 사례는 SF에서 중요한 것은 화려한 볼거리보다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인식과 상상력이라는 점을 확인시켜준다. 아직 초반인 만큼 <시지프스>가 <더 킹>의 전철을 밟지 않길 바란다.


김선영 TV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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